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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어 편의점에 가서 불닭볶음면과 피자치즈, 맥주를 사서 먹으며 '시설'이라는 곳으로 처음 자원봉사를 갔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 시간도 채우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1주일 동안의 봉사활동을 떠났다. 중학교 때 부모님과 같이 가봤던 장애인 시설에 혼자 갔다.

안산 터미널에서 충청북도의 한 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점심을 먹을 즈음 터미널에 도착했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학생이 가는 곳은 들어가도 태우고 나갈 손님이 없어서 왕복요금을 내야 돼. 나갈 때도 전화해"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친절 같지 않은 친절을 베풀었다. 열일곱, 난생처음 혼자 타본 택시는 편도로 이용했을 뿐인데 왕복요금을 내야 하는 이상한 택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에 있는 시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가서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 다음,1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될 건물로 갔다. 그곳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도와주는 곳이라고 했다. 병실에는 8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누워 있었고, 병실은 말소리 대신 숨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주로 한 중년 남자를 돕는 일에 배정되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아침 일찍 병실에 가서, 아침 식사를 돕는 일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돕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고, 소변통을 치우고, 대변을 닦고, 누워만 있는 그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누워 있는 자세를 변경하고, 세수와 면도, 목욕, 그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저녁식사가 나오곤 했다. 그러면 내 하루는 끝이 났다.

숙소는 거동이 가능한 장애인들(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들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이 생활하는 다른 건물이었다. 그곳은 참 특이했다. 여러 명이 들어차 있던 작은 방에는 텔레비전 1대가 있었고, 그 방은 개인적인 공간의 구분이 없었다. 화장실은 문 대신 커튼만이 있었다. 

1주일 동안 그곳에서 살면서 내가 담당하던 중년의 남자와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는 20대 때 교통사고가 났고 턱 밑으로 모든 신체가 마비되어, 지금처럼 누워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누워서 음식을 씹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지금의 시설에 있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가족들 역시 그를 찾아오지 않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그는 무연고자였다.

그는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를 밀고 끌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우린 침대 커버를 널어놓는 빨래 건조장 부근을 자주 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아저씨가 다시 걷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어요?" 그러자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꼬마야, 난 걷게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야."

그가 말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는다'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봉사활동을 마치고 바가지요금을 내야 하는 택시를 부르기 전까지 내내 생각했다. 그의 답 덕분인지 난 그곳에 몇 년을 더 갔고, 갈 때마다 그를 만났다. 그가 있는 곳은 분명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만 있을 수 있는 병동이라고 했는데,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꽤 오랜 기간 그 병동에 있었다.

경기도 어느 시에 한 뇌병변장애인이 살고 있다. 그는 몸이 강직되어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식사도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는 내내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혼자 살고 있다.

몇 달 전 그의 집에 그를 만나러 갔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어젯밤에 뭐했어요?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그러자 그가 답했다. "어젯밤에 치킨에 소주 한 병 먹고 잤더니만 엄청 힘드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소원이라던 충청북도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던 그 남자는 결국 소원을 이뤘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한별 님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사회복지,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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