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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살수가 없어."

최근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비는 적게 오고 햇빛은 따갑게 내리쬐는 탓에 말 그대로 푹푹 찐다는 표현이 딱인 듯싶다. 목욕을 해도 그때뿐,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잠을 잘 때도 에어컨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선풍기는 그야말로 풀가동이다.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아내도,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요새 덥지?"가 아예 인사말이 된 것 같다. 정말이지 제대로 무더위가 실감 나는 올여름이다.
 
요즘 날씨는 정말 덥다.
 요즘 날씨는 정말 덥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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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이 더욱 무덥게 느껴지는 배경에는 코로나도 영향이 있는 듯싶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되는 상황상 체감온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마스크까지 끼게 되니 숨쉴 때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서 도는 것 같고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번 여름 무더위가 더욱 강세를 보이면서 회자 되는 년도가 있다. 다름 아닌 1994년과 2018년이다. 높은 평균 기온을 기록하는 가운데 폭염일수, 열대야일수는 길고 장마기간, 강수량 등은 짧았다는 점에서 얼마나 체감 더위가 높았을지 짐작하게 한다. 올여름은 바로 그때 여름과 비교되고 있는데 아직 8월이 한참 남았다는 점을 감안 했을 때 그 위엄이 새삼 실감난다.

개인적으로 1994년, 2018년 그리고 올여름은 내게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만들어졌으며 현재형으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첫 방황 1994년 여름

수학능력시험 첫 세대가 대학에 입학한 해이며, 김일성의 사망 소식 등으로 한동안 나라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던 1994년, 이러한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여름은 정말 더웠다. 다들 물과 음료수를 입에 달고 살았으며 여기저기서 '올 여름은 유달리 덥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여름이 더욱 덥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방학때 했던 아르바이트와도 연관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은 숯불갈비집이었으며 거기에서 나는 숯불을 나르고 관리했다. 시간이 빌 때는 서빙과 뒷정리 등도 도왔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상황에서 하루 종일 숯불과 함께 하다보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몸에는 하얀 소금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다녔다. 사람 몸에서 그렇게 많은 소금 덩어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후 당시 항상 붙어다니던 동네 친구와 의기투합해 부모님 몰래 서울로 올라갔다. 열심히 해서 돌아올 때 많은 돈을 벌어 올 거라 생각했다. 물론 서울에 대한 환상은 금방 깨졌다. 현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져온 돈도 교통비, 식비 등으로 야금야금 까먹은 뒤였다.

따로 숙소가 없던지라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친구와 아파트 정자에서 잤다. 식비도 아껴야 했고 밤에는 더위는 물론 모기와도 싸워야 했다. 얼굴로 몰려드는 모기떼를 피해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친구와 잠을 청하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인연을 만났던 2018년 여름

이대로 영영 결혼같은 것은 못할 줄 알았던 2018년, 거짓말처럼 인연이 찾아왔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거기다 늦가을쯤에는 지금의 아들까지 임신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살다보면 다 자기만의 인연은 있다'는 말처럼 정말 우연하게 아내를 만났는데 처음부터 편했다. 이성을 만날 때 흔히 겪는 특유의 어색함과 의욕이 앞서 일을 그르치는 등의 행동이 아내에게는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 차분하게 다했고 나름 자신감 있게 내 자신을 표현했다.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색함이 없었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해도 '인연은 인연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노총각 냄새 풀풀 풍기고 다니던 아저씨의 접근을 편견 없이 받아준 아내가 지금도 고맙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더위 때문이었다. 아내와 막 만남을 시작하던 당시 동물원에서 데이트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헤매다가 시간이 늦어졌다. 먼저 도착한 아내는 땡볕에서 기다리다가 화가 났고 나를 보기 무섭게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처음으로 본 아내의 화난 모습이었다.

당시에 대해 아내는 "일부러 늦은 것도 아니고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뜨거운 날씨에 서 있다 보니 컨디션도 엉망이 되고 온몸은 땀으로 젖고 너무 화가 났었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불볕더위가 원수였다.

아들과 우당탕탕, 한여름 육아전쟁 2021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써야하는지라, 어린 아들에게도 혹독한 여름이 되어가는듯 싶다.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써야하는지라, 어린 아들에게도 혹독한 여름이 되어가는듯 싶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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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우는 대부분 집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부부 역시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아들을 데리고 밖에 나간다. 24개월 된 아들 녀석은 에너지가 넘치는지라 조금만 시간이 나면 한손에 축구공을 든 채 "나가, 나가아~"를 연발하면서 엄마 아빠를 재촉한다. "더워서 그러는데 이따 조금 선선해지면 나갈까?" 소용없다. 이 녀석도 더울텐데도 깔깔거리며 신나게 공을 차고 뛰어다닌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녀석을 따라다니기 바쁘다. 집에서 쉬는 시간에도 하루에 한두시간씩 무조건 땀을 빼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기가 활동적이고 건강한 것은 좋지만 더위와의 싸움은 정말 녹록지 않은 것 같다. 비슷한 또래를 가진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정말 고생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올여름은 역대급 더위에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까지 써야 되는지라 곱절로 더운 것 같다. 개인적으로 1994년, 2018년보다 올해가 더 덥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못 견디겠다 싶으면 더위라도 피해서 쉴 수 있었지만 지금은 퇴근 후에도 마스크까지 쓰고 매일같이 체력이 성장중인 아들 녀석과 놀아줘야 한다.

물론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평생 효도할 것 저 때 다해'라는 말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뒤만 쫓아다녀도 하루 중 녀석과 노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우울한 일이 있었다가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는 아들을 보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자식이 이런 존재인 줄은 결혼 전에는 진짜 몰랐다.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다. 하필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에서 맞이한 첫여름에 코로나가 유행해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써야 된다는 사실이.

누군가 그랬다. 남자의 인생은 자식이 생기기 전과 생긴 후로 갈린다고. 확실히 실감한다. 예전에는 어떤 쪽이든 강렬한 인상이 새겨져야만 추억이 되었지만, 아들이 태어난 후에는 매 순간이 곧 추억이다. 특히 우당탕탕 육아 전쟁을 벌이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여름은 덥기는 정말 덥다.

태그:#불볕더위, #1994년 여름, #2018년 여름, #2021년 여름, #더위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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