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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늦는 저녁, 우리 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안방 베란다에 상을 폈다. 양쪽 창을 열고 아들과 나란히 앉았다.

"우와앙~"

창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소독차가 주택가 골목에 연기를 뿌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네모 블록 사이를 돌아다니는 게 꼭 옛날 게임(팩맨이나 뭐 그런 거)처럼 보였다. 저 멀리 월명산 뒤로 해가 넘어가고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가로등, 움직이는 자동차의 빨간불, 신호등, 십자가. 대충 차린 저녁밥이지만 풍경을 반찬 삼아 기분 좋게 먹었다. 그때까지는 해거름 바람이면 낮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에어컨을 켠 후로 창은 꽁꽁 닫혔다. 베란다로 나가는 일도 빨래를 널 때 뿐이다. 잠시라도 창을 열고 자연 바람을 맞고 싶지만, 열대야는 밤에도 틈을 주지 않는다. 땀도 많고 열도 많은 아들은 자면서도 여기저기 올라온 땀띠를 긁는다. 수딩젤을 발라주고 손으로 톡톡 두드려주다 속상함이 솟는다.

여름은 더운 게 당연하지 하다가도 뉴스에서 올해는 기록적인 폭염이니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느니 하면 언제쯤 더위가 물러갈까 걱정이 된다. 작년 여름은 어땠나 하는 생각이 들고, 더 예전엔 어땠더라 되짚어 본다. 어릴 때 우리집은 에어컨도 없었는데 어떻게 견뎠더라. 엄마는 어떻게 했더라.

우리는 저녁 먹고 마당으로 나갔다 

고향집은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여름이면 안방의 벽걸이 선풍기 한 대, 거실과 작은방을 오가는 스탠드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갔다. 가릴 것 없이 맑은 시골 하늘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던 날, 어스름할 즈음 엄마는 마당 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딸들을 불렀다. 마당에 아버지 트럭이 들어와 있는 날은 트럭 짐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녁밥을 해먹고 난 열기를 피해 집 밖으로 도망쳐 나갔던 것 같다.

우리는 티비를 마당 쪽으로 돌려놓고 리모컨을 들고 나갔다.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식히며 티비를 보거나 빌려온 만화책을 읽었다.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포도를 먹는 날은 씨를 마당 구석에 '투투투'하고 뱉었다. 별것 아닌 놀이가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뱉어댔는데 한 번도 마당에서 포도나무가 자라난 적은 없었다.
 
"내일은 국수 삶아무까?"
"응. 물국수!"
"비빔국수 해줘."
"한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른기라."
"아! 덥다. 아빠한테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하자."
"부우웅."
"아이. 아빠 벌써 왔네. 좀만 일찍 전화할 걸."


웃고 떠들다 보면 머리 위에 별과 달이 떴다. 가끔은 반딧불이도 깜빡이며 날아다녔다. 엄마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여자 셋이 누웠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한 번씩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면 머쓱해 하며 인사하고 어르신도 "허허" 웃을 뿐이었다.

덜컹덜컹 방충망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온 거실을 훑고 주방 창으로 나갔다. 그래도 열이 식지 않는 밤에는 슬쩍 주방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둠 속에 식탁보가 펄럭거리거나 창문 너머로 허연 뭔가가 느껴지면 순식간에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답답해도 팔다리를 이불속에 숨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더위를 식히는 방법 중에 물에 담그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우리집 위에는 바로 산골짜기가 있고 골짜기를 따라 물이 흘렀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작은 절이 나왔는데 할머니, 엄마를 따라 올라가 약수를 떠먹거나 계곡물 옆 큰 바위에 앉아 한나절 더위를 피해있다 내려오기도 했다. 어떤 날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다슬기를 잡았다. 그때는 돌을 뒤집기만 하면 까맣게 붙어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엄마는 어릴 때 냇가에서 놀던 기억을 살려 색깔돌 찾는 법을 알려줬다. 돌맹이 중에서 알록달록한 색깔이 있고 조금 무른 돌은 마른 바위에 그으면 크레파스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동생이랑 나는 물가에만 가면 색깔돌을 찾고 놀았다.
  
시골의 여름 마을의 풍경은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 시골의 여름 마을의 풍경은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 조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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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엄마랑 동생은 저녁에 꼭 동네 산책을 간다. 이미 덥고 지쳤는데 굳이 몸을 움직이나 싶지만, 막상 따라 나가보면 졸졸 물소리와 사라락 벼를 훑는 바람 소리부터 시원하다. 조금 후끈해진 상태로 돌아와 샤워하고 누으면 다시 더워질 새도 없이 잠든다.

엄마가 만들어 준 여름밤의 추억. 시골의 여름 내음. 청명한 하늘. 내 안에 있는 그것들이 무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여름은 어떨까. 땀띠로 고생스러운 계절로 남을까. 즐겁고 푸르른 계절이 될까.

노을을 바라보는 느긋한 저녁, 소나기 뒤의 무지개 뜬 하늘, 파도 밀려오는 해수욕장을 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것들이 너에게도 힘이 되기를. 엄마가 내게 주었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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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시골 출신. 조상신의 도움을 받아 소소한 행운을 누리며 군산에서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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