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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자료사진).
 토끼(자료사진).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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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를 다룬 책들을 보면 재산 3분법이란 항목이 반드시 있다. 재산을 은행과 주식, 부동산에 적재적시에 분산 관리하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재산을 한 곳에만 몽땅 투자했을 때 그 손실이 생기면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특히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재산 3분법은 아주 탁월한 보신책일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그런 3분법은 중국인들이 오랜 옛날부터 알고 시행해온 것을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중국 고사에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뚫어 가지고 자신을 보호한다는 뜻으로, 재산문제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처세술이라고 볼 수 있다. 

풍환이 사온 인덕

제나라의 풍환은 몹시 가난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맹상군이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인재를 널리 모은다는 말을 듣고 맹상군을 찾아갔다.

맹상군은 그를 만나자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즐깁니까?"
"별로 즐기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기는 무엇이오?"
"없습니다."


하지만 맹상군은 그를 식객으로 받아 들였다.

맹상군의 아랫사람들은 별 재주도 없는 그를 맹상군이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여기고 하인들과 함께 밥을 주며 아무렇게나 대했다. 그렇다고 풍환은 기가 죽거나 비굴하게 행동하진 않았다.

며칠 후, 풍환은 자기가 가지고 온 검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검이여, 검이여, 떠나가자. 여기서 밥을 먹으니 고기가 없구나!"

누군가 그 노랫소리를 들어보니 심상치 않은지라 얼른 맹상군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맹상군이 말했다.

"그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접하라."

그렇게 며칠이 지나지 않아 풍환은 또 검을 두드리며 노랫가락을 뽑았다.

"검이여, 검이여, 떠나가자. 여기는 외출하려 해도 마차가 없구나!"

맹상군이 그 노랫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그에게 마차를 마련해 주었다.

맹상군은 설(薛) 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자가 잘 걷히지를 않아서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풍환이 자진해서 나섰다.

떠나는 길에 풍환은 맹상군에게 물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올까요?"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


설 지방으로 간 풍환은 백성들을 전부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풍환은 엄숙한 표정으로 차용증을 일일이 체크해 나갔다. 그렇게 엄숙하게 체크를 해나가던 풍환은 마지막에 뜻밖의 말을 했다.

"맹상군께서 명령을 내렸다. 모든 빚을 한 푼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용증을 당장 태워버린다."

백성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풍환은 차용증을 불 속에 처넣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백성들의 근심에 차 있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풍환은 그 길로 제나라로 돌아와 맹상군을 만났다. 맹상군이 물었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그래 빚은 다 받았소?"
"예, 다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물건을 다 사왔죠."
"그래, 무슨 물건을 사왔소?"


맹상군은 빈 수레를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저를 보고 이 집에 부족한 것을 사오라고 하셔서 그것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 있소?"


그러자 풍환은 두 손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이 집에서 지금 부족한 것은 인덕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돈 주고 사기 힘든 은덕과 인의를 사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맹상군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엎질러 놓은 물이라 그 일을 더 따져 묻지를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일 년 후, 맹상군은 제나라 민왕의 미움을 사는 일이 생겨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맹상군은 무거운 심정으로 자기 땅인 설 땅으로 떠나야 했다. 그의 수레가 설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곳에 이르자, 뜻밖에도 많은 백성들이 그곳까지 마중 나와 길에 두 줄로 늘어서서 그를 환영하는 것이었다.

맹상군은 전혀 생각지 못한 환대를 받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돌려 뒤에 앉은 풍환에게 말했다.

"선생이 나를 위해 사들인 인덕을 오늘에야 내 두 눈으로 보았소!"

그러자 풍환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준비해 놓은 첫 번째 굴입니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준비한다.
 
"그럼 두 번째 굴은 무엇이요?"


맹상군은 궁금증을 못 이기고 물었다. 풍환은 자신의 계책을 맹상군에게 말하고, 두 번째 굴을 준비하기 위해 위나라로 가서 혜왕에게 말했다.

"제나라의 민왕은 사소한 일로 맹상군을 정승 자리에서 해임시켰습니다. 지금이 맹상군을 불러들이실 좋은 기회입니다. 맹상군이 위나라의 정승이 된다면, 위나라는 강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맹상군의 명성을 들어오던 위나라의 혜왕은 크게 기뻐하며 맹상군을 등용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고,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맹상군을 불렀다. 그러나 맹상군은 미리 짜여진 계획대로 혜왕의 부름을 세 번씩이나 거절했다.

이 사실은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민왕은 그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맹상군을 재상으로 불러들었다.

이것이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마련한 두 번째 굴이었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맹상군에게 민왕을 설득하게 해서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도록 했다. 왕실의 종묘가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나라 왕의 마음이 변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었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실로 멋진 재산 3분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교토삼굴, #이것이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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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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