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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기.
 전화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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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내 생일만 되면 딱 한 번 전화하는 지인이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잊지 않고 내 생일만 되면 전화를 한다. 신기하게도 다른 날은 전화하는 일이 한 번도 없다. 두 사람 다 서로 잘 살고 있으려니 하면서 안부도 묻지 않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참 별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거리의 관계일까, 내가 생각해도 의아하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건 셋째딸이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예전에는 자모 모임이 학교마다 성행했다. 우리는 딸들의 자모로 학교에서 만났다. 학교에서 매월 자모회를 하면서 서로 얼굴을 익혔다. 둘이 자모회 임원을 하고서는 더 자주 만났다. 아이들 진로 문제로 많은 정보를 나누고, 선생님들 간식과 식사도 챙기며 자모 활동을 열심히 했다.

우리는 자모 모임을 하는 동안 가까워졌다. 일 년 정도 모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딸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후에는 자연히 멀어졌다. 같은 시내에 살면서도 우리는 자주 만나는 관계는 아니었다. 가끔가다 서로 안부를 묻고 전화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집안 행사, 딸들 결혼식 때는 서로 오고 가는 인연이었다.

어쩌면 적당한 거리의 관계라서 서로의 생활을 구속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라도 전화를 하면 마음으로 포근히 안아주는 따뜻한 사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생활에 집중하며 잊고 산다. 그러나 생일이면 절대 잊지 않고 전화를 해 주고 있다. 무려 30년 정도의 세월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변함이 없는 관계다. 생일이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일 년이 다 가도록 전화 한번 안 하고 살면서도 어찌 내 생일은 잊지를 않는지 참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녀는 마음이 넉넉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말씨도 따뜻하다.

세상이 변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주변을 돌아보기 어려운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는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고 전화해 주는 사람도 아니다. 생일을 한번 알려 주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또 물어본다는 것이 민망해서 못 물어보겠다. 자기만 내 생일을 알고 전화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전화를 안 한다. 참 염치없는 일이다. 오늘 아침을 먹은 후 나는 출근하는 사람처럼 내 서재로 건너온다. 나만의 세계인 서재에서 나 하고 싶은 걸 하고 논다. 갑자기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받아보니 그녀였다. 나이가 들면 전화오는 곳도 줄어든다.

"형님, 내가 형님 생일 잊어버린 줄 알았지?" 하고 말을 걸어온다. 사실 어제 생일이었는데 이제는 잊어버렸나 보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나는 전화를 받고 호들갑을 좀 떨며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해서 그랬다.

"이제는 내 생일 그만 잊어버려도 돼, 나는 자기 생일도 잊어버렸고만." 

"형님 그런 소리 마세요, 내가 전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데, 나는 잊으려 해도 내 가슴에 탁 박혀 있어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들으니 울컥하고 만다. 민망하고 감사한 일이라서 그랬다.

나는 그녀에게 특별하게 잘해 준 일도 없다. 일 년이 다 지나가도록 전화는커녕 밥 한 번도 사 준 일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편 세상을 살면서 누구의 가슴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부자인 듯 따뜻해져 온다. "형님 내년에도 제가 전화하면 웃으며 받으시도록 건강관리 잘하고 계세요" 하고서 전화를 끊는다.

어제 내 생일이었는데, 어제가 지나도 항상 오던 전화가 안 오기에 이제는 잊었나 생각하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잊지를 않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관계에도 정성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도 식물을 키우듯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면서 잘 자라도록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많은 생각을 해 본다.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날마다 내 생활에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코로나가 오면서 딸네 가족과 일 년 넘게 정신없이 살아왔다. 갑자기 가족이 불어나고 어떻게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딸네 가족이 떠나고 이제야 좀 한가해지고 살고 있는 내 주변을 돌아본다. 세상을 그저 생각 없이 살아선 안 된다. 과연 내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야겠다.

그동안 살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파했다. 사람과 너무 가까이 가지내지 않으려고 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가까우면 화상을 입고 너무 멀면 춥다고 했다. 적당한 온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생일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나.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제까지 나는 나와 내 자녀의 굴레 안에서만 살아온 것 같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를 둘러싼 인연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낀다. 

갑자기 안도현의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주는 것,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한 장의 연탄이 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하면서 다시금 내 삶을 뒤돌아본다.

나이 들어가는 내 삶이 바빠서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가능한 일이다. 이제 나머지 시간은 내 주변을 두루 살피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어야겠다. 

사람과의 관계도 식물을 키우듯 물을 주고 관심과 애정으로 잘 자라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생일,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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