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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에 위치한 한 비건 식당 벽에 붙어있던 문구
 해방촌에 위치한 한 비건 식당 벽에 붙어있던 문구
ⓒ 송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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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과 함께 비건(Vegan 완전 채식주의)으로 산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우린 7년째 연애 중인 커플이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채식인들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바로 "강요하지 마"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보다는 온라인 세상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 이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나와 M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면인 누군가라면, 우리가 대뜸 채식을 한다고 밝히는 순간 아마 속으로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방어기제가 채식에 대한 강요는커녕 권유조차 하지 않을 때에도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 채식인 또는 비건에 대한 선입견을 꼽을 수 있다. 채식인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마야 안젤루(Maya Angelou)는 "사람들은 누군가와 나눴던 이야기와 함께 한 일은 잊어버리지만, 그 사람이 느끼게 만든 감정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무리 탄탄한 논리와 근거를 갖춘다고 해도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로만 의견을 표출한다면 상대방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식점 방해 시위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단란하게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식당에 난데없이 들어와서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외치는 무리를 직접 봤거나 미디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은 채식인들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될 확률이 높다.

방해 시위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온갖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며 채식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주장하는 채식인들에 대해서 저항 심리를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인다. 그 결과 사람들은 누군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과거 경험으로부터 각인된 부정적인 감정이 무의식적 차원에서부터 올라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듯, 채식하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 다양하다. 모든 채식인들이 자신의 식단을 남에게 권유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듣는 이의 죄책감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이유 없이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주의, 특정 성별이나 국적 또는 지역 등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단지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채식을 시작하는 목적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동물을 생각해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건강이나 다이어트 때문에, 혹은 환경을 생각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채식에 대해서 알리는 방식도 개인마다 다르다. 앞에 나서서 급진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M처럼 조용히 제 몫(?)을 다 하며 기껏해야 이렇게 글로써 생각을 표현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채식을 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저마다 자신의 채식에 대해 언급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배우 임수정은 비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그러나 그는 개인 SNS에 자신이 비건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반면에 배우 임세미는 자신이 비건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비건과 관련하여 인상 깊게 읽은 책과 영화를 개인 SNS에 공유하고 알리기도 한다.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그의 SNS에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다회용기나 텀블러를 쓰는 그의 일상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다양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주저 없이 표현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하는 사람, 옳다고 믿는 것, 좋다고 느낀 것을 모두 혼자만 조용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를 '채식주의자'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기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런 태도는 채식인이 비채식인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 혹은 내가 속한 집단에는 관대하지만 타인 혹은 외집단에는 엄격한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비판하는 한편, 우리가 속하지 않은 흑인, 중동, 동남아인, 심지어 때로는 같은 동양인인 중국인에게까지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남성은 여성에 대해, 여성은 남성에 대해 그리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에게, 동성애자는 이성애자에게 편견을 갖고 혐오를 드러낸다.

사회가 갈수록 둘로 나뉘어 싸우는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셜 딜레마>에는 SNS로 인해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를 배척하고 비난하는 작금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오죽하면 그 옛날 황희 정승이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했겠는가.

그렇게 싸워서 얻어지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논쟁을 벌여 상대를 괴롭히고 반박해서 승리를 거두는 방식은 결코 상대에게서 호의를 얻을 수 없는 무의미한 승리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는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더 이해하고 포용하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이지 않을까.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배경에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세상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이 먼저 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세상이 바뀌기만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조금씩 가슴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다 보면 평화로운 세상이 더 빠르게 도래할지도.

태그:#비건, #비건커플,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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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화랑 단남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으로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이따금씩 글을 쓰고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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