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이 6월 2일부로 100일을 넘었다.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어떻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을까? 

신라대 청소노동자가 투쟁하는 방법 또한 여타 노동조합 투쟁사업장과 다르지 않다. 오전 7시 기상하여 학교와 출근하는 교직원과 학생들 대상으로 아침 선전전을 진행한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하교 시간에 맞춰서 똑같이 선전 활동을 한다. 방송차를 이용해 민중가요를 틀고 중간중간에 투쟁 발언이 배치된다. 

패트병으로 총장과 면담을 성사시키다
 
민중가요에 맞춰 패트병을 두드리며 시위를 하는 신라대 청소노동자
▲ 봄날 신라대 청소노동자 패트병 시위  민중가요에 맞춰 패트병을 두드리며 시위를 하는 신라대 청소노동자
ⓒ 조종완

관련사진보기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2리터 생수 패트병이다. 선전전을 진행하는 1시간 내내 민중가요에 맞춰서 패트병을 두드린다. 심지어 패트병을 들고 음악에 맞춰서 출 수 있는 율동도 제작했다. 연대자들이 농성장에 찾아와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패트병 소리 때문에 박자를 놓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패트병을 수십 명이 동시에 치면 소리가 크다.

처음 농성을 시작했을 때는 패트병을 한 봉지에 모아서 공동으로 패트병을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합원들 개개인이 패트병을 개인 지참하고 있었다.

"괜히 불편하게 왜 패트병을 개인이 들고 다니세요?"
"부장님 패트병도 성능이 다 달라요. 내가 선별해서 고른 패트병이 제일 소리가 잘나요. 투쟁할 때 소리 짱짱하게 나려면 관리가 철저히 필요해요."


패트병이 오래되면 찌그러지고 소리도 볼품없게 된다. 공동으로 사용하면 오래된 패트병을 자주 교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악기를 다루듯이 패트병을 개인 관리하고 있다.

패트병의 용도는 다양하다. 농성 한 달이 지나도 학교 측의 반응이 없자 조합원들은 직접 신라대 총장과 면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총장실 앞에 대기를 하고 총장이 나올 때까지 패트병을 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구했다. 총장이 면담을 거부하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끝까지 패트병을 치며 따라가서 면담을 요청했다.

"총장님 집단해고 철회를 위한 면담을 진행해주세요. 아니면 온종일 따라다니면서 패트병 치며 총장님 귀를 따갑게 해줄 겁니다."

패트병 소리에 못 이겨서 총장은 노조 위원장, 지회장과 공식 면담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실제 4월 1일 면담이 이뤄졌다.
  
화장실 투쟁으로 교육부 과장 면담을 성사시키다
 
화장실 투쟁으로 교육부 면담을 성사시킨 사진
▲ 신라대 청소노동자 교육부 앞 집회 화장실 투쟁으로 교육부 면담을 성사시킨 사진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총장 면담을 통해서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5월 27일 세종시 정부청사에 있는 교육부에 찾아갔다. 신라대가 어려워 청소노동자 해고하는데, 총장 업무추진비는 타 학교에 비해 높게 책정되어 교육부에 감사를 청구한 것이다.

1시간 동안 교육부 앞에서 마이크를 들었지만, 교육부는 감사청구 요청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산에서 세종시까지 3시간 넘게 달려온 조합원들은 화장실이 급한 상황이었다. 교육부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2명의 조합원이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이 막았다. 경찰은 지침 때문에 교육부 화장실은 이용할 수 없고 다른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했다. 조합원은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경찰에 항의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부에 국민이 화장실 한 번 이용도 못 합니까. 우리가 교육부 안에 들어가서 화장실 이용 말고 뭘 더 하겠습니까. 정 불안하면 2인 1조로 조합원 1명에 경찰 2명 붙여서 교대로 다녀올 수 있게 해주세요. 3시간 동안 차 타고 와서 화장실 매우 급합니다."

결국 경찰은 지침으로 인해 불가하다고 최종 통보를 하고 10명의 집회 대오보다 많은 경찰 병력을 배치하였다. 교육부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급한 마음에 다른 건물 화장실 이용하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집회를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교육부 과장이 연락을 해오면서 면담이 성사되었다. 면담을 통해 노동자의 뜻을 전했고, 교육부는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 28일 <매일노동뉴스> 보도를 통해서 신라대는 "기관장 업무추진비는 지난해 1억2050만 원에서 8900만 원으로 줄었고, 기타업무추진비를 신설한 이유는 전국 사립대에 적용되는 사학 재무 기관 특례규칙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예산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 "전체 예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청소용역비 등이 부담됐던 상황이었고 학교 규모를 보고 (예산을) 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총장 집 앞 투쟁 통해 교섭 끌어내다
 
신라대 청소노동자 총장 집앞 집회 사진
▲ 총장 집 앞 신라대 청소노동자 집회  신라대 청소노동자 총장 집앞 집회 사진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학내에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자 조합원들은 총장이 사는 아파트 앞에 가서 집회를 진행하였다. 총장 집은 초등학교 앞에 있어서 학교 수업 시간을 피해 주로 주말 오전 시간에 집회를 진행했다. 방식은 똑같았다. 민중가요를 틀고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주말 아침마다 집회를 진행하다 보니 주변 주민들 민원이 많았다. 주말에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에 와서 시끄럽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주민들은 내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에도 민원을 접수했다.

"신라대 총장이 우리 아파트 산다는데 주말 아침마다 와서 아침잠 방해하고 시위자들은 고성방가 가해자입니다. 신라대 학생들과 학습권 문제로 소송 들어간다던데 아파트 주민들과도 소송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아파트 주민들에게 피해 그만 입히세요."

반면 청소노동자를 전원 해고하는 대학이 어디 있냐며 조합원들에게 요구르트를 사주고 응원해주고 가는 주민들도 있었다.

총장 집 투쟁은 학교와 노조의 교섭을 끌어낸 투쟁이 되었다. 총장 집 투쟁이 계속되자 학교 실무팀은 정식 교섭단을 꾸려 노조에 교섭을 제안했다. 그리고 교섭 시작의 조건으로 총장 집 앞에서 집회하지 않는 것으로 제시했다.  노조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 정식 교섭이 시작되었다.

돈 없고 빽도 없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힘

"우리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입니다. 임금 인상도 없이 매년 최저임금 오른 만큼만 임금을 받고 묵묵히 일했던 노동자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뿐입니다."

비정규직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집회 결사의 자유 하나만으로 신라대 거대한 권력에 맞서고 있다. 만약 신라대 투쟁이 승리로 끝이 난다면 역사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패트병을 뚜드리며 거대한 권력에 맞서서 직접고용을 쟁취했다고 기록할 것이다.

농성 100일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은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 쟁취로 결론이 날 수 있을까?
 
신라대 청소노동자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
▲ 신라대 청소노동자 율동 사진 신라대 청소노동자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
ⓒ 이인우

관련사진보기

 

태그:#신라대청소, #신라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