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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철회 농성이 2일 현재 100일이 됐다. 집단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은 2월 23일부터 신라대 대학본부에서 100일간 먹고 자며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노동자는 주로 여성이다. 신라대 또한 1명을 제외하고 50명이 여성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조직되다 보니 활동이 남성중심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조직의 리더도 남성이고 노조의 전략과 사업 집행 모두 남성 활동가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많다. 나 또한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2020년 12월 민주노총 부산일반노조 조직부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이듬해인 2월 23일 신라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농성에 결합하게 되었다. 농성 시작 전에 걱정이 됐다. 노조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부모님뻘되는 노동자들이 내 말에 잘 따라와 줄지, 현장에 모든 실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이 처음이었던 나는 현장의 일을 노조 상근자가 다 감당해야 한다고 착각했다.

"부장님 일에 집중하세요!" 

신라대 농성이 벌어지자 나의 걱정은 편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라대지회 청소노동자는 농성이 처음이 아니었다. 현장 조합원들이 2014년 79일 농성 투쟁 경험이 있어 농성에 대해 누구보다 선수였다. 2월 23일 농성이 시작되자 조합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농성장을 차렸다. 농성장 바닥에는 대형 깔개와 전기장판을 1인에 1개씩 배치를 하고, 두툼한 이불이 농성 시작과 동시에 들어왔다.

대학본부 1층 공간 한 모퉁이를 농성 시작 하루 만에 부엌으로 만들어버렸다. 부엌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모하였다. 냉장고가 생겼고, 대형 물 끓이는 포트기가 등장했고, 아일랜드 식탁을 구해와서 뷔페식 배식을 진행하였다. 내가 함께하려고 하면 조합원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조직부장님 농성장 운영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부장님은 부장님 일에 집중해주세요."
 
평범한 대학본부 1층 공간이 농성을 통해 부엌이 되다
▲ 신라대 농성장 부엌 평범한 대학본부 1층 공간이 농성을 통해 부엌이 되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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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는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우선 신라대 투쟁의 대표는 정현실 지회장이다. 지회장은 조직의 리더로서 신라대 투쟁을 진두 지취한다. 농성 투쟁 전체 기획과 계획을 늘 점검하고 조합원들에게 역할을 배당한다. 외부 언론 인터뷰가 들어오면 지회장 몫이다. 조합원들이 오랜 농성으로 지루해하면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가르칠 정도의 만능 엔터테이너다.

둘째, 지회 총무 조합원이다. 총무는 지회장과 함께 농성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이다. 농성장에 조합원들이 먹는 음식이 끊이지 않도록 늘 재정을 관리한다. 각자 집에서 밥을 먹다가 삼시세끼를 농성장에서 해결하다 보니 식사 반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총무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재정에 맞는 식단 계획을 제출하고 요리사 동지들에게 음식을 부탁한다.

신라대 농성 시작 전에 현장에서 폐지를 팔아 만든 300만 원과 조합원 1인 10만 원씩 참가비를 걷어 농성을 시작하다 보니 재정이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다. 총무는 늘 절약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조합원들은 맛있는 음식을 원해서 충돌할 일이 많았다. 그 부분을 조율하고 농성장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신라대지회 총무이다.
 
휴대폰 이용하여 전자 피켓을 선전 도구로 활용
▲ 신라대지회 조직부장 새로운 선전 기술 휴대폰 이용하여 전자 피켓을 선전 도구로 활용
ⓒ 부산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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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회 조직부장과 쟁의부장이 있다. 조직부장과 쟁의부장은 선전전, 집회 등 투쟁 일정을 챙기고 세세한 투쟁 물품을 챙기는 역할을 한다. 어떻게 선전전을 진행해야 학생들이 우리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전체적인 투쟁 계획은 지회가 아닌 노조에서 짜게 되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계획이 제출될 때는 건의하는 역할도 한다.

"배 부장님 유인물 배포에 대해서 잠시 중단을 했으면 합니다. 이미 많은 학생이 우리 사안을 알고 있고 유인물 배포도 할 만큼 되어서 오히려 학생들 바쁜 아침 등굣길에는 유인물 배포가 역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쟁의부장은 투쟁 소식을 알리기 위해 SNS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개인 계정을 만들어서 투쟁에서 느낀 이야기와 사진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실제 쟁의부장 페이스북을 보고 신라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연대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넷째, 교육부장과 요리사 조합원이 있다. 먼저 교육부장은 교육 시간에 조합원들이 빠지지 않도록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농성장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방명록과 코로나 방역을 위해 온도 체크를 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교육부장은 늘 연대자가 많이 방문하는 날에는 앉아 있지 못하고 서 있으며 연대자들 명단을 꼼꼼히 챙겨나간다.

"교육부장님 다리도 아픈데 연대자 맞이 앉아서 하세요." "아닙니다. 서서 연대자들 반갑게 맞이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그리고 요리사 조합원은 현장 조합원의 식사를 책임진다. 신라대지회 농성 식사는 모두 현장에서 해 먹고 있다. 식사 준비는 준비팀이 돌아가며 하고 있고 요리사 조합원들이 음식을 책임지고 만들어간다.

엄마나 아줌마 아닌 '지회장님'
 
연대자가 제작해준 신라대지회 앞치마
▲ 신라대지회 요리사 앞치마 연대자가 제작해준 신라대지회 앞치마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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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이 있는 간부들뿐만 아니라 개별 조합원들 또한 다양한 역할이 나뉘어있다. 신라대지회 여성 조합원들은 누구누구의 엄마,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지회장님, 총무님, 조직부장님, 이름 등으로 호명된다.

"노조 활동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OO이 엄마' 혹은 '아줌마'라고 불렀어요. 근데 여기서 간부가 되면 직책을 부르게 되고 그렇치 않을 때도 서로 각자의 이름을 불러요. 노조 활동을 통해 저는 누군가 존재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현실이 되었습니다."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50~60대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시대를 살았다. 여자는 집에서 가족 식사를 챙기고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조합원들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집을 나와 농성을 하게 되자 가족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한다고 바빠서 집안일에 소홀해졌는데, 부채감보다 일탈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남편과 자식들 식사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어요. 가족들 위해서 농성 접고 집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가족들이 알아서 밥만 챙겨 먹는다면 남은 인생은 밥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가족에게 지지받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 남편과 많이 싸웠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내가 청소, 빨래, 요리 등 다 책임지고 하고 있다는 걸 깨닫더라고요. 그래서 투쟁 꼭 이겨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오히려 투쟁을 응원하더라고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음식이나 투쟁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어요."

정현실 지회장 남편은 집에서 부인이 투쟁가에 맞춰 팔뚝질을 하는 모습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익숙해지자 농성장 걱정되면 빨리 가보라고 집을 비우는 것을 오히려 부추긴다고 한다.

집단해고에 맞서 싸우는 신라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자 권리 회복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가부장제를 넘어서고 있는 주요한 싸움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이나 노동운동은 잘 몰라요. 노조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을 뿐입니다. 그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들만 집안일 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자가 바쁘면 남자도 집안일 해야 하는 거죠. 노조를 통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알게 되었다면 투쟁을 통해서 성평등한 삶을 살게 되었어요."
 
정현실 지회장 메이데이 집회에서 발언 모습
▲ 정현실 지회장  정현실 지회장 메이데이 집회에서 발언 모습
ⓒ 부산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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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성신문에 투고했습니다.


태그:#신라대청소, #신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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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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