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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시절의 나는 '아빠 역할, 엄마 역할'은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친근하고 살갑게 아기를 보살핀다면 아빠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소 무뚝뚝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 나 역시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한때는…

하지만!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다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였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빠와 엄마 사이에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은 맞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애정을 나누고 교감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실감 중이다.

아빠가 되다 보니 과거에는 신경도 안 쓰던 각종 육아프로그램 시청은 물론 예능에서 아기에 대한 얘기만 나와도,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거리게 된다. 며칠 전 한 고민해결 예능 프로에서 의붓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사연을 봤다. 의붓아버지는 새롭게 꾸린 가정에서 어린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마음이 안 열려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가 그저 너무 어렵다고만 했다.

의붓아버지는 아들에게 이것저것 훈육을 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친아들이라 생각하고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대로 아들은 만날 때마다 지적과 야단을 반복하는 의붓아버지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못 받아들이냐?"며 의붓아버지 편을 들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던 중 프로그램 진행자가 해당 부부에게 팩트 사이다를 날렸다. "친부모 간에도 애착관계가 쌓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갑자기 만들어진 가족관계에서 훈육부터 하려고 하면 아이의 마음이 열릴까요? 애정과 신뢰의 시간이 삭제되었습니다." 뭔가 답답한 마음으로 보고 있던 우리 부부도 무릎을 탁 쳤다. 정말 명쾌했다.

주변만 살짝 둘러보자. 자녀들이 속을 썩이거나 답답하게 할 때 엄마들은 이른바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아야, 아야' 하면서도 거기에 크게 기분 나빠하는 자녀들은 많지 않다. 엄마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쌓여진 애착관계가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신뢰하게 해준다.

초보 아빠인 나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부모와 자식은 세상에서 가장 친밀해야 될 관계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아이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잘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서로 간 마음의 문이 가까워야 될 필요가 있다. 거기에 필요한 열쇠는 여러 개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1번은 바로 '사랑'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들을 안아주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다.
 아들을 안아주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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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힘들어서…' 최소한의 시간 조차 없었을까?
 
주변을 보면 사이가 소원한 부자 관계가 종종 눈에 띈다. 격의 없이 지내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와는 영 어색하기만 하고, 어쩌다 한번 만나더라도 서로 짧은 안부만 물은 채 어색한 정적만이 흐른다. 물론 아버지도 아들이 반갑고, 아들도 아버지가 본인한테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관계 회복이 쉽지 않다.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아버지가 평생 가족들 부양하느라 늙어버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치게 되면 서로 표현을 잘못한다. 아버지가 반가운 마음에 내뱉는 말은 어느새 잔소리가 되고 괜스레 티격태격하는 상황까지 종종 일어난다.

점점 친구처럼 되어가는 엄마라는 존재와는 많이 다르다. 물론 안 그런 집도 있겠지만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아버지는 돈을 벌고 어머니는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챙기는 포지션을 주로 맡으셨다. 대체적으로 그랬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서로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장성해서도 그러한 어색함이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맞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어깨는 무겁다. 어머니가 되면 자신의 인생이 상당 부분 없어지는 것처럼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흥청망청 본인 삶을 사느라 자식들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닌 가장으로서 열심히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그러한 생활이 익숙해져 버리는…

물론 시간의 제약은 있을 수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어머니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는 아버지들도 많으셨을 것이다.

최근 나는 낮 시간 대에는 주로 아내의 빵집을 도와주고 있다. 둘이 하는 작은 수제빵집인지라 빵 포장부터 설거지까지 할 일이 제법 많다. 단순한 패턴의 연속인지라 언제부터인가 휴대전화로 각종 동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할 때가 늘었다. 덕분에 예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정보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잘 안 보던 예능프로에도 맛을 들였다.

최근 과거에 유명했던 이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프로를 종종 보고 있다. 과거에 잘나갔다가 나이를 먹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생활이 소개될 때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치고 가족과 단절된 듯한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들의 근황은 '아,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남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아내는 그렇다쳐도 어찌하여 자식들까지 외면할까. 최근에 본 과거 영화제작자의 현재 삶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씁쓸했다.

아이들이 다 커서 관심을 가지면 늦는 듯 싶다.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괜스레 원하지도 않는 고독함을 감수해야 될지도 모른다. 영상 속 그 제작자도 그랬다. "자식들이 40살이 넘어가도록 함께한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안되는 것 같다"는 말속에서 깊은 회한이 느껴졌다.

나이를 먹게 되니 자녀들이 너무 보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마저도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다는 것. 한창 좋은 시절에는 가족보다 지인들과 시간을 주로 보냈으나 나이를 먹은 후 느끼는 것은 '역시 가족밖에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세탁기조차 제대로 못 돌리는 모습에서 그분의 젊은 시절이 일정 부분 짐작이 됐다.

문득 생각해본다. 바쁘면 바쁜 데로 아주 작은 시간만이라도 가족에게 신경 쓰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시간은 적지 않았을 것인데, 하루에 5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아빠가 일 때문에 바쁘기는 하지만 너희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표현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습관은 무섭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뒤로 미루기 일쑤다. 그냥 자연스럽게 늘 하던 데로 이어지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우리 OO이랑 실컷 놀아야지'라고 생각했다가도 다음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년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평생 어린 시절의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도 잊히지 않을 자녀의 어린 시절에 '아빠와의 추억 도장'을 최대한 많이 찍는 것은 아버지 입장에서도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은 미루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또 느껴 본다. 가족과 많은 것을 함께 해봐야겠다. 먼 훗날 나이 먹은 나에게 칭찬받을 수 있도록.

태그:#초보아빠적응기, #육아일기, #22개월아들, #아빠와 아들, #진짜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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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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