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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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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를 통제해야 할 국회, 거꾸로 관료의 '검토'를 받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 27일 국회사무처 인력 37명을 추가로 증원하는 직제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증원에는 법안 발의의 폭발적 증가와 그에 따른 검토보고 업무의 폭주가 주요한 명분으로 내세워졌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대표적인 현상인, 소리만 요란한 '법안 발의'와 '검토보고 제도'가 이제 도리어 국회 공무원 증원의 명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료집단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 중 하나다. 군사독재 시기에는 정치군인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압도했지만, 군사독재 청산 이후 정치군인들이 남기고 간 그 힘은 점차 관료집단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이들 관료집단의 힘을 견제할 집단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은 채, 관료집단의 독주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이들 관료집단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국회라고 본다.

본디 국회야말로 관료들을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주체이다. 하지만 지금 거꾸로 국회의원들은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고 있다. 사실상 하부 구조인 셈이다. 이렇게 하여 세계 입법부 사상 유례 없이 입법부 관료의 득세 현상이 발현되었으며, 이로써 한국 사회 관료의 지배 구조는 총체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무원의 '검토'를 받는 국회의 민낯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한국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반드시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본말전도'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을 공무원에 넘기고 직무를 유기한 채 정쟁에 골몰한다. 실질적인 힘은 관료들이 갖게 되고, 반면 관료를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국회는 거꾸로 공무원의 '검토'를 받고 의존하며 얹혀가는 처지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인식이 아예 없거나, 혹시 인식한다 해도 지금의 시스템에서 본인들이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눈을 감고는 한다. 사실 다른 나라 의원들은 법안 검토를 핵심으로 하는 의원의 직무가 너무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스스로 중도에 그만 두는 경우도 적지 않고 배우자의 불만이 커서 심지어 이혼율도 높은 실정이라고 한다.

본래 '입법권'이라는 직책은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필수 임무다. 국회의원은 바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국회의 존재 이유다. 그것은 의사가 본인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치료를 시키는 것과 같고, 판사가 다른 사람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래서는 의사라고 할 수 없고 판사라 부를 수 없으며, 그야말로 '가짜 병원'이고 '가짜 재판'인 셈이다.

이와 전적으로 동일한 논리로 자기의 일, 즉, 본업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국회의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의회라 칭하기에도 부끄러운 상황이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결코 의회다운 의회, 정치다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이렇듯 본말이 전도된 제도로 인해, 국회, 나아가 한 국가의 모든 일이 왜곡되고 뒤틀리게 된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학생이라 할 수 없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패싸움을 하거나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을 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그 상황은 결코 바꿔낼 수 없다.

이런 국회, 초등학생을 앉혀놔도 문제가 없다?

이 검토보고 시스템에서 국회의원은 아무 부담 없이 그저 법안만 발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법안 검토부터 통과까지 일거수일투족 모든 과정을 의원 본인이 책임지고 수행하는 다른 나라 의원들과 전혀 딴판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누구든지 조금만 유명세가 있으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직무 수행에도 아무런 부담 없는 국회의원 자리를 넘볼 수 있다. 급기야 '국회의원 자리에 초등학생을 앉혀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치인들이 매일 같이 상대 당을 비난하고 매도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싸울 수 있는 것도, 그 배후에는 검토보고 시스템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검토보고 제도가 작동되는 지금의 국회에서는 정작 별로 할 일이 없게 된다. 물론 아무리 무능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진다. 이것이 오늘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는 한국 국회의 민낯이다.
 

태그:#검토보고,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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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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