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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5.18민주화운동의 고통을 이용해 정부 비판 만평을 실었다가 비판에 직면한 <매일신문>.
 5.18민주화운동의 고통을 이용해 정부 비판 만평을 실었다가 비판에 직면한 <매일신문>.
ⓒ 5.18기념재단,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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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한 청년을 죽인 계엄군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만나 머리 숙여 사죄했다. 유족도 뜨거운 눈물과 포옹으로 그를 용서했다. 지난 18일 광주서 들려온 이 소식에 많은 이들이 공감의 마음을 보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대구경북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신문사에서 5.18 희생자와 광주시민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만평을 내놨기 때문이다.

<매일신문>은 19일 만평을 통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5.18 당시 신군부의 잔혹성을 대표하는 사진을 차용했다. 만평을 그린 김경수씨는 곤봉을 세차게 휘두르고 있는 계엄군을 정부에, 그 아래에 쓰러져 있는 시민을 '9억 초과 1주택자'에 비유했다. 

비판이 쏟아졌다. 끔찍한 국가폭력과 세금 부과를 같은 위치에 놓고 볼 수 있냐는 지적이었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요구했단 이유로 세상을 떠난 사망자 ▲죽음은 면했지만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여전히 괴로움 속에 사는 피해자 ▲이러한 고난을 함께 짊어진 희생자 가족 ▲'빨갱이 낙인'으로 여전히 모욕의 일상을 사는 광주시민들이 비판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매일신문>은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이들의 뻥 뚫린 가슴을 다시 한 번 할퀴고 말았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매일신문>은 지난 2020년 8월 23일에도 비슷한 만평을 실었다. '친문' 완장을 찬 이가 코로나19 확산세 중 이른바 '광복절집회'를 허용한 판사를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이었다. 이 역시 잔혹한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5.18 당시 사진을 차용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매일신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반체제 가요"(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5.18의 심각한 양면성"(도태우 변호사, 21대 총산 대구 동을 출마) 등 왜곡된 시선의 칼럼도 여러 차례 실었다. 칼럼엔 그동안 5.18 연구진 및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날조한 것으로 판단한 '교도소 습격 사건'도 사실인양 적혀 있다.

그건 성역화가 아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게엄군 A씨가 자신이 죽인 고 박병현씨의 묘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게엄군 A씨가 자신이 죽인 고 박병현씨의 묘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있다.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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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일자 <매일신문>은 해당 만평을 삭제했다. 그리고 21일 늦은 오후 '입장문'을 내놨다.

변명 일색이었다. 우선 "<매일신문>은 과거에도 지금도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폄훼할 의도를 추호도 갖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인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무게감을 저희들도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향한 비판엔 "얼토당토않는 주장"이라고 항변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 "현 정부에 대해 너무 뼈아픈 비판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괴상한 진단을 내렸다.

특히 입장문 후반엔 '가정법 사과'가 담겨 있었다. "다만 이날 만평이 광주시민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소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했다. (중략) 만평이 저희의 보도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광주시민들의 아픈 생채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들춰낸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석하면 이렇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으나'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겠다. '내 잘못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왜곡·변질한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 내 취지와 다르게 당신이 상처를 '입었다면' 미안하다.

한때 '사과문 작성법'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정치권, 경제계 등 힘 있는 자들의 '저질 사과문'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누리꾼들이 빨간펜을 드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사과문 작성법을 만든 이는 '본인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 누구에게 피해를 끼쳤는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지' 등을 사과문에 꼭 적으라고 한다. 또 '본의 아니게', '그럴 뜻은 없었지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등은 적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매일신문> 입장문 속 '사과'는 적으란 건 적지 않고 적지 말란 것만 적혀 있는 셈이다.

한 청년을 죽인 후 41년 간 부끄러움 속에 살다가 만천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한 5.18 계엄군. 그리고 "5.18 역사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쏟아지는 비판에 변명만 내놓는 신문사. 이러한 모습 또한 5.18의 비극 아닐까. 

마지막으로 <매일신문>에 실렸던 한 칼럼을 떠올려본다. 앞서 거론한 어느 변호사의 칼럼에 "5.18 성역화"란 표현이 있다. 5.18을 비난하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한탄하며 쓴 표현이다.

지금도 북한군 침투설 등 거짓·왜곡이 덕지덕지 나붙은 질곡의 역사에 성역화란 표현이 가당키나 한 지 묻고 싶다. 5.18을 비난하면 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는 지 반추해보길 바란다. 그건 성역화 때문이 아니라 5.18을, 인권을, 민주주의를, 헌정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의미한다.
 
"대구경북 1등 신문"을 자처하는 <매일신문>의 소개글. <매일신문>의 발행인(대표이사)은 1990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이상택 신부이다.
 "대구경북 1등 신문"을 자처하는 <매일신문>의 소개글. <매일신문>의 발행인(대표이사)은 1990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이상택 신부이다.
ⓒ 매일신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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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죄, 이 5.18 계엄군처럼 http://omn.kr/1shpe
되레 당당 "5.18 폄훼? 얼토당토않은 주장" http://omn.kr/1sj4e

태그:#5.18, #민주화운동,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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