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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노트'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이 쓴 기사를 소개하고, 편집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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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를 늘려나갔을 뿐인데.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인데. 그가 있던 자리에 가봤을 뿐인데.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슬프지 않았던 것들이 슬퍼지고 기쁘지 않았던 것이 기뻐졌다. 하루가 두 번씩 흐르는 것 같았다. (<부지런한 사랑>, 6~7쪽)

<부지런한 사랑>의 이슬아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10대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쳤지만, 오히려 '어린 스승'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만 같던 시간. 그 소중한 순간들을 엮어낸 에세이집 <부지런한 사랑>의 서두에서,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위와 동일)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사는이야기 등의 분야를 담당하는 라이프플러스팀이 지난 1월 20, 30대 시민기자 네 명과 함께 '청년기획단'을 꾸린 것도,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겨, 조금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동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한 '빈틈'을 포착해내고 싶었습니다. 

첫 글감은 '코로나 1년,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관련 링크)으로 정했습니다. 해를 넘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며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겨났는데요.

우리가 사랑하던 공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 시설들은 운영 중단을 맞았고, 동네 곳곳엔 불 꺼진 가게가 늘어났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그저 물리적 공간이 하나 없어졌다'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과 함께, 때론 우리의 비빌 언덕이 되고 터전이 되었던 공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고 싶었습니다. 공간과 함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추억도 되짚었습니다. 동시에 너무나 익숙해 특별히 돌아보지 않았던 공간의 의미를 '재발견' 하기도 했습니다. 그 세 편의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기사들에 담겨 있는, 글쓰기의 '팁'도 함께 전달합니다. 

독자를 유혹하는 소설 같은 서두 

<흰색 봉투 주고받는 은밀한 거래... 이 광경이 서글픕니다>

정누리 시민기자는 '코로나로 잃어버린 공간'이란 글감을 받고 도서관을 떠올렸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서 공공도서관들은 운영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일부 도서관들은 시설 운영을 멈추는 대신,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을 하면 이용자들에게 따로 책을 빌려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지요. 코로나19 시대의 특별한 광경을, 정누리 시민기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였다. 우산을 들고 아무도 없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도착 시 OOO-OOOO으로 연락 바랍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수화음이 몇 번 울리고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로 오셨나요, 걸어오셨나요?"

글의 첫머리는 일종의 '덫'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제목에 궁금증이 생겨 기사를 클릭했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뒤로 가기'를 클릭하려는 독자를 잡아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정누리 시민기자가 마치 스릴러 소설의 한 장면처럼 써내려간 이 서두 덕분에, 기사를 끝까지 읽게 된 독자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기사의 미덕이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서두 이후에 이어지는데요. 그는 단순히 '도서관이 이렇게 변화했다'라고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 변화로 인해 배제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전 예약 도서를 수령하던 날이었다. 도서관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서성이고 있었다. (중략) 차근차근 온라인 예약 방법을 아주머니에게 알려드렸으나, 그녀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얼굴로 고개만 기계적으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돌아올 대답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아쉬운 얼굴로 다시 한번 사서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들어가서 책을 빌릴 수는 없는 거네요?"

최근 비대면 온라인 소통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가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앞당겼다'는 역설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누리 시민기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 도서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발빠른 발전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하지만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을 섬세하게 짚어낸 것이지요. 이슬아 작가가 <부지런한 사랑>에서 언급한,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는' 글쓰기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뉴스인 듯, 뉴스 아닌 듯 친근한 사는이야기

<걸리면 취직도 끝장... 3평 방에 나를 가뒀다>

그런가 하면, 허지원 시민기자는 아주 익숙하고 사적인 공간인 '내 방'의 변화를 돌아봤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에 지나지 않았던 3평짜리 방이 코로나19를 마주하면서 어떻게 '체육관'과 '도서관'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변화뿐만 아니라 "언제든 시험 볼 수 있는 상태를 유지" 하느라 비좁은 방 안에 자신을 스스로 '격리'해야만 하는, 요즘 취준생의 웃픈 현실도 그려냈습니다. 
 
코로나 이후 3평 남짓한 방의 의미는 달라졌다. 더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게 됐다. 스터디와 모임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바람에 내 방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났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엽서와 포스터 덕지덕지 붙인 벽을 보여줬다. 사생활이 공개된 것 같아 머쓱했다. 방과 나는 한 몸이 됐다.

공감 가는 소재와 재치 넘치는 문장,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묘사 덕분일까요. 이 기사는 발행 이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20대가 많이 본 뉴스' 목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 '작년에 취업준비 하고 국가 고시 준비할 때 혹시나 확진되면 모든 기회가 사라질까봐 친구들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었던 기억이 난다'(닉네임 이XX), '깔끔한 글... 낯익은 소재지만, 신선합니다'(닉네임 JXX) 등 네티즌들의 훈훈한 댓글이 달리기도 했고요. 

허지원 시민기자의 기사는 겉으로 볼 땐 그저 한 개인의 생활상을 담아낸 가벼운 에세이 같습니다. 하지만 속살을 꼼꼼히 뜯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구직이 어려워지는 청년의 현실이 보이지요. '뉴스를 품은 사는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이 같은 뉴스성 사는이야기는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다루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지원 시민기자의 기사는 뉴스성 사는이야기의 특징을 잘 살린, 좋은 예입니다. 

사고의 '확장'과 '재발견'의 기쁨

<새벽 공항버스가 미치도록 그립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빼앗아간 중요한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일 겁니다. 최한슬 시민기자는 '코로나 1년, 잃어버린 공간'이라는 글감을 받았을 때, 기억 속에 남아있던 여행의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졸린 눈으로 탔던 새벽의 공항버스, 어딘가 고요하면서도 어수선했던 공항의 모습... 그야말로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준비한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긴장과 설렘, 기대와 외로움,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그 순간"들을 그렸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코로나 이전의, "자유로운 세상 자체"를 떠올린 것이지요. 

만약 최한슬 시민기자의 글이 그저 과거 모든 게 자유로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데 그쳤다면 그리 기억에 남진 않았을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 그리운 지난날을 떠올리는 글은 꽤 많고, 또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그의 글은 이른바 '추억팔이'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기사가 되는 사는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재미있게도, 모두가 되도록 집에 머물러야 했던 이 시기는 내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우선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사는 곳 주위를 잘 알게 됐다.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집 근처를 산책하는 일이 많아졌고, 더 멀리 걸어 나가곤 했다. 별일 없이 걷다 보니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략) 바이러스는 내게 큰 세상을 앗아가고 작은 세상은 돌려줬다. 낯선 곳을 향해 멀리 떠나는 경험은 어렵게 만들었지만, 내가 사는 작은 세상을 다시 느낄 기회를 주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는 추억으로 서두를 열되,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익숙하고,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동네를 새롭게 탐색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인데요. 

'코로나 1년, 잃어버린 공간'이라는 주제에 갇히지 않고, 생각을 확장해 '코로나로 인해 내가 얻게 된, 새롭게 알게 된 공간'에 대해서 함께 풀어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색다른 점을 발견하기,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기.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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