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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물을 좋아하는 이응이(가명)는 한 달에 한 번 박물관을 찾는다. 이번에 이응이가 노리는 건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따뜻한 주말이었던 지난 11월 7일, 이응이는 엄마와 함께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엄마 진슬(가명)씨는 중증 시각장애인다. 왼쪽 눈은 빛도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은 바로 앞의 큰 물체 정도만 분간할 수 있다. 이들의 지인인 나는 돈독한 두 모자의 박물관 나들이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이응이가 편의점에 가면 말이 많아지는 이유 

"이건 보리 맛이고, 저건 녹차 향! 엄마는 뭐 마실래요?"

이응이는 편의점 쇼호스트다. 커피와 차 종류를 좋아하는 엄마의 입맛을 고려해 진열장을 쓱 둘러본 후, 음료의 맛을 재잘재잘 설명했다. 쇼호스트의 짧은 설명이 끝나고 진슬씨가 음료를 골랐다. 그제야 이응이는 마음껏 편의점을 누볐다. 그러다 멈칫, 엄마에게서 휴대전화를 뺏어 능숙하게 통신사 할인 앱을 찾았다. 진슬씨는 말했다.

"이응이가 저보다 할인과 적립 앱을 찾는 속도가 훨씬 빠르잖아요. 그리고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음료도 아닌데 계속 저한테 제품 묘사를 하죠? 음료 브랜드나 병 모양이 안 보이는 저를 배려해서 설명해 주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래요. 그렇다 보니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걸 봐도 먼저 돌진하지 않고 '뭐 드실래요?'라고 물어보는 게 몸에 밴 거예요. 충분히 본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지만, 그전에 무엇인가를 계속 말해주면서 엄마가 인지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시각장애 엄마 진슬(43, 가명)씨와 그의 아들 이응(10, 가명) 군
 시각장애 엄마 진슬(43, 가명)씨와 그의 아들 이응(10, 가명) 군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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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박물관 ①] 대체 어디를 보지? 난감한 열화상 카메라

박물관 주 출입구에 다다르자,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박물관 직원이 한 명씩 1m 이상의 거리를 두어 입장하길 요청했다. 하지만 진슬씨는 앞사람과의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바닥에는 평평한 안내 스티커가 붙었다.

출입구에서는 안내 직원이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재고 있었다. 카메라의 렌즈를 정확히 응시하기 어려워 그냥 직원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때까지도 안내 직원의 별다른 도움은 없었다. 열화상 카메라 앞에서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뒤쪽의 행렬은 더욱 길게 늘어졌다. 진슬씨는 말했다.

"박물관이나 영화관 등 사람이 많은 곳을 이용할 때, 가장 불편한 것은 시설의 미비가 아닌 뒷사람의 '무언의 다그침'이에요. 우리나라가 워낙 빨리빨리 문화잖아요. 아무래도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행동도 느리고, 키오스크나 열 화상 카메라와 같이 장애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운 기기 앞에서는 버벅거릴 수밖에 없어요. 이럴 때 뒷사람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무언의 압박감은 상당하죠."
 
 열화상 카메라를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지만, 별도의 지시나 도움은 없었다.
 열화상 카메라를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지만, 별도의 지시나 도움은 없었다.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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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박물관 ②] 돈 있어도 살 수가 없네요, 공포의 키오스크

입장권을 끊기 위해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없다. 화면 자체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없을뿐더러 별도의 음성 지원 서비스나 키패드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립박물관인 만큼 키오스크 옆에는 장애인 전용 창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장부터 입장권 발급까지 직원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었다. 이번에는 시각장애 엄마를 둔 아들답게 키오스크 사용에 능숙한 이응이의 도움을 받았다. 진슬씨는 말했다.

"최근 1, 2년 사이 많은 언론에서 키오스크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죠. 그런데 대안이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네요. 코로나로 인해 키오스크 활용은 더욱 가속화될 텐데 장애인, 노인과 같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게 될지 정말 걱정이에요.

외출했다가 김밥 한 줄, 햄버거 하나를 사 먹고 싶어도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키오스크를 스마트폰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고려해서라도 하루빨리 접근성이 개선되었으면 해요."


[불편한 박물관 ③] 복불복 QR코드…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리기도
 
 10살 이응이에게 모바일 입장권 발급은 쉬운 일이다. 전시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모바일 입장권을 QR코드 리더기에 갖다 대야 한다.
 10살 이응이에게 모바일 입장권 발급은 쉬운 일이다. 전시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모바일 입장권을 QR코드 리더기에 갖다 대야 한다.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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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이는 능숙하게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모바일 메신저로 입장권을 받았다. 입장권은 코로나로 인해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로 발급됐다. 입장 대기 줄에서 보이스오버(Voice Over, 스마트폰 화면을 읽어주는 음성지원 프로그램)를 이용해 QR코드 입장권을 휴대전화 화면에 띄웠다. 하지만 혼자서 QR코드 리더기에 이를 정확히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 진슬씨는 말했다.

"요즘은 빵집을 가도 QR코드 인증을 활용하잖아요? 보셨듯이 보이스오버가 있어 QR코드를 생성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를 QR코드 리더기에 정확히 갖다 대는 것은 불편한 경우가 많아요.

또 뒷사람이 기다릴까봐 QR코드를 미리 활성화해 놓는데, QR코드 지속시간이 너무 짧아서 사라져 버리기도 해요. 그러면 다시 띄워야 하는 거죠. 스마트폰 조작이 느릴 수 있는 노년층이나 장애인을 고려해서 QR코드 지속시간을 좀 늘려 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불편한 박물관 ④] 전시물을 볼 수도, 전시 정보를 읽을 수도 없다 

진슬씨와 이응이는 박물관 3층 아시아관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은 전시물을 직접 보기 어려워 오디오 해설 서비스를 선호한다. 해당 서비스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가 이용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해당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앱을 통해 RFID 방식으로 전시 해설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를 직접 이용해본 결과, 모든 전시관의 전시물 정보가 제공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상설전시관에서는 전시 해설을 듣기 위해 전시물별 고유 번호를 휴대전화에 직접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진슬씨는 해당 번호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전시 번호가 손바닥만한 작은 설명 칸에 쓰여있기 때문이다. 설명 칸에는 이를 읽을 수 있는 점자 또한 마련돼있지 않았다. 이응이가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 줘 봐. 내가 할게. 빨리 반가사유상 보러 가자!"

이응이는 익숙한 듯이 오디오 해설 앱을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전시 번호를 입력해 전시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쇠북과 금관 등의 전시물을 보면서 '이건 모조품이고, 저건 진짜야'라며 진위를 가려보기도 했다. 특히, 고대했던 반가사유상을 보자 입을 막고 '와!'하며 감탄사를 뱉기도 했다.
 
 반가사유상 앞 전시 번호. 성인 손바닥만한 크기다. 시각장애인이 해당 번호를 직접 보고 핸드폰에 입력하기는 어렵다.
 반가사유상 앞 전시 번호. 성인 손바닥만한 크기다. 시각장애인이 해당 번호를 직접 보고 핸드폰에 입력하기는 어렵다.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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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립박물관에서 전시 해설을 듣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유물관리시스템에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을 도입했다. 또 모든 작품 옆을 지나갈 때 자동으로 해설을 들려주는 RFID 음성안내 서비스 기술을 갖고 있다. 일부 전시관에서 전시 번호를 관람객이 직접 입력해야 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진슬씨는 말했다.

"아이와 서천 해양생물자원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곳의 음성지원 단말기도 RFID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었어요. 전용 단말기와 헤드셋을 대여하고 목에 걸면 단말기가 RFID리더기를 통해 생태 정보를 송·수신해요. 해당 전시물 앞으로 가면 자동으로 해설이 나오더군요. 조금 뒤처진 방식일수도 있지만, 훨씬 더 안정적이고 좋은 방법 같아요.

국립중앙박물관을 자주 다니지만 전시관에 따라 RFID가 제공되지 않는 곳도 많고, 제공된다 해도 전시물 간 밀도가 높으면 제대로 데이터 송·수신이 안 돼요. 그럴 때면 아이가 그냥 전시물 번호를 직접 입력하는 게 빠르더라고요. 차라리 자주 바뀌지 않는 상설전시관에서라도 별도의 안정적인 음성정보 단말기를 제공한다거나, 전시물 정보를 관람 순서에 따라 점역하여 팜플렛 형태로 제공하는 것도 양질의 관람을 이어가는 데 좋을 것 같아요."


[불편한 박물관 ⑤] 인공지능 로봇 큐아이야, 길 안내는 직접 못하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안내 로봇 ‘큐아이’화장실 위치를 직접 안내해달라 요청했지만, 로봇은 움직이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안내 로봇 ‘큐아이’화장실 위치를 직접 안내해달라 요청했지만, 로봇은 움직이지 않았다.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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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관을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오는 길에 이응이가 인공지능 전시 안내 로봇 '큐아이'를 발견했다. 큐아이는 음성 인식부터 고개 까딱이기 등 일정 수준의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화장실로 안내해달라는 질문에 화장실의 위치만 LED 화면에 띄울 뿐 직접 길을 안내하지는 못한다. 순간 복잡한 인천공항에서 길 안내를 요청하면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하며 직접 길을 안내하던 똑똑한 로봇이 떠올랐다. 진슬씨는 말했다.

"시각장애인은 이 넓은 박물관에서 화장실을 찾는 것도 어렵거든요.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화장실을 막 물어보기도 좀 민망하고요. 그럴 때 인천공항 로봇처럼 직접 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로봇이 있다면 매우 편리할 것 같아요. 박물관 측에서도 인력 배치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도 엄마랑 박물관 오는 게 제일 좋아요"

상설전시관은 총 3개의 층, 7개의 전시실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두 모자가 하나의 전시관과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모든 전시관을 둘러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한옥 조립모형까지 구매했음에도 여전히 이응이는 아쉬운 듯 1층 전시관의 뗀석기 모형을 만지작거렸다. 진슬씨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이응이에게 엄마와 나들이 온 것이 어떤지 속내를 물었다. 이응이는 말했다.

"아쉽긴 해요.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조금 느린 엄마가 귀찮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엄마랑 박물관 오는 게 제일 좋아요. 왜냐하면, 엄마랑 이렇게 나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가고 싶은 곳을 다 데려다주시려고 해요. 덕분에 남들은 잘 못해보는 남도해양열차(S-train)나 서해금빛열차도 타봤고 평창 올림픽도, 패럴림픽도 가봤어요! 다른 애들이랑 이야기해보면 엄마, 아빠랑은 이런 걸 아직 해보지 않았더라고요."  
 
 이응이가 1층 전시관의 뗀석기 모형을 만지고 있다.
 이응이가 1층 전시관의 뗀석기 모형을 만지고 있다.
ⓒ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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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 이전 15주년을 맞아 '국립박물관 2030 미래전략'을 발표했다. 이 중 핵심 전략과제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박물관'을 내세웠다. 특히 이를 구현하기 위해 문화 취약계층 맞춤형 서비스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밝히지 않은 상태다.

박물관은 이 기준에 맞춰 3D 프린팅 기법을 활용해보는 게 어떨까. 현재 통합문화정보사이트 '문화포털'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재 및 민속 생활용품을 3D 프린팅 출력이 가능한 도면으로 제공하고 있다. 각 도면 안에는 문화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활용 방법까지 기재돼있어 해당 문화재를 생동감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만약 이를 활용해 실제 '반가사유상'의 구현이 가능하다면, 시각장애인의 박물관 접근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더 나아가, 3D 프린팅 기술을 바탕으로 전용 체험 전시관을 구상한다면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두'가 양질의 관람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박물관에서 단순히 움집에 들어가 보거나 그릇 퍼즐을 맞춰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물 전시를 통해 실제 크기의 금관이나 불상을 만져보는 것이다.

박물관은 진슬씨와 이응이에게 특별한 공간이다. 단순히 역사를 알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아니다. 시각장애 엄마가 한창 뛰어놀 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과 소통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모두를 포용하려는 국립중앙박물관은 과연 어떻게 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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