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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위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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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학문과 철학이 압축된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일반인이 새겨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 자신이 책을 쓰는 까닭, 어떤 책을 읽고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식들에게 서재의 이름을 지은 뜻을 전한다. (박석무 편역, 앞의 책, 발췌)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음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을 읽어주고 내 책 한 부분이라도 베껴주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점점 거칠어져 한두 해 더 지나버리면 완전히 나의 뜻을 저버리고 보잘것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지난 여름은 앓다가 세월을 허송했다니 10월 이후로는 더 말하지 않겠다만, 그렇더라도 마음속에 조금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 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으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으냐.

꺼릴 것이 없는 것뿐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왼쪽 사진은 석탑에 새겨진 정약용의 저서 표지들. 오른쪽 사진은 <목민심서> 및 <경세유표> 부분을 가까이서 찍은 것. 다산유적지에 있다.
 왼쪽 사진은 석탑에 새겨진 정약용의 저서 표지들. 오른쪽 사진은 <목민심서> 및 <경세유표> 부분을 가까이서 찍은 것. 다산유적지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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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動容貌, 出辭氣, 正顔色)가 학문을 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곳인데, 이 세 가지도 못하면서 다른 일에 힘쓴다면,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고 재주가 있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다 할지라도 결국은 발꿈치를 땅에 붙이고 바로 설 수 없게 되어 어긋난 말씨, 잘못된 행동, 도적질, 대악(大惡), 이단(異端)이나 잡술(雜術) 등으로 흘러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三斯)로써 서재(書齋)의 이름으로 삼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난폭하고 거만한 것을 멀리하고 어긋난 것을 멀리하고 미더움을 가까이한다는 의미니라. 이제 너희의 덕성의 발전을 소원하여 삼사재(三斯齋)라는 것을 선물하니 당호로 삼고 삼사재기(三斯齋記)를 지어 다음 오는 편에 부쳐 보내라.

네가 양계(養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에도 품위있는 것과 비천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 농서(農書)를 잘 읽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살찌고 알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아야 하느니,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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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利)만 보고 의(義)를 보지 못하며 가축을 기를 줄만 알지 그 취미는 모르면서, 애쓰고 억지쓰면서 이웃의 채소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것은 서너 집 사는 산골의 못난 사람들이 하는 양계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무척 많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지금 우리 집안은 폐족이 되었고, 여러 일가들도 갈수록 더욱 쇠약해가고 있다. 옛날 우러러볼 만한 풍류나 문장들이 근자에 와서 삭막하게 되었으니, 너희들은 본래 우리 집안이 이렇구나 생각하고 선조들을 따라가려는 노력은 틀림없이 하지 않겠지.

그러나 끝을 보면 그 근본을 헤아릴 수 있고, 흐르는 물을 건너다보면 수원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 있으니, 우리 집안이 참으로 어떤 집안이었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너희가 힘을 합쳐 30년 전의 옛 모습을 만회해낼 수 있다면 너희야말로 참으로 효자가 되는 것이고 어여쁜 자손이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다산, #정약용평전, #정약용, #다산정약용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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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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