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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나루한강공원에서 폭우로 범람했던 물이 빠지자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이 일대를 정비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나루한강공원에서 폭우로 범람했던 물이 빠지자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이 일대를 정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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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누구나 기후 위기를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상 이변이라는 말이 더 보편적이었다. 기후라면 '변화'라는 말과 어울리고, 위기는 '생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때 자연스럽다. 곧, 기후 위기란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 생존의 위기'를 축약한 신조어인 셈이다.

지난 여름 기록적인 홍수와 태풍이 겹치면서 온 국민에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대론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도 기후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쓰레기가 계속 쌓인다 

"살다 살다 올해와 같은 날씨는 처음이다."

구순이 낼모레인 어머님께 새로운 입버릇이 생겼다. 지난겨울 철모르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황당해 하시더니, 최근 물난리와 태풍을 겪고는 전쟁통보다 더하다며 혀를 내두르셨다. 답답하다며 마스크 착용을 극구 꺼리시는 당신께선 몇 달째 바깥출입을 삼가고 계신다.

내가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긴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주위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주차장이 잠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장대비가 퍼붓던 당일 오전, 주차된 차량을 서둘러 옮기라는 관리사무소의 다급한 안내 방송이 쉬지 않고 나왔다.

우산도 없이 주차장을 분주히 오가는 이웃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주차장은 실내 수영장처럼 변해 있었고, 미처 옮기지 못한 몇 대의 차량은 물에 반쯤 잠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뒤편 옹벽 위에선 붉은 흙탕물이 쉴 새 없이 이면 도로로 흘러들고 있었다.

한바탕 물과의 전쟁을 치른 뒤에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코로나가 수그러들지 않아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긴장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만약 거리를 오가는 차량과 행인들의 분주함이나 소음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인 건 맞다.

올해 우리는 봄보다 따뜻한 겨울, 여름보다 더운 봄, 가을보다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대로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구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 6일 이른 아침, 찬 바람에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다. 흡사 초겨울 느낌이다.

진짜 위기라며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곤 있지만, 정작 무언가 실천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파트에는 매일 플라스틱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버려지는 스티로폼 상자는 집이라도 몇 채 지을 태세다. 물론, 감염병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는 탓이다.

오늘도 택배 트럭은 내용물보다 포장재의 부피가 더 큰 상자 꾸러미들을 아파트 관리실 앞에 토하듯 쏟아내고 간다. 이 와중에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한 배달 라이더들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식물을 집마다 나르느라 여념이 없다. 내일도 오늘만큼 쓰레기는 쌓일 것이다.

근무하는 학교도 물난리를 피하진 못했다. 지하 교실과 창고에 물이 들어차 종일 퍼내고 말려야 했다. 건물 벽과 바닥의 쾨쾨한 곰팡이 냄새까지 없애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름의 뜨겁고 쨍한 햇볕 한 번 쬐어보기도 전에 가을이 성큼 다가와 오히려 걱정스럽다.

기후 위기조차 사치? 
 
복도에 붙인 게시물 아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지만, 그들의 눈길을 붙잡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 복도에 붙인 게시물 아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지만, 그들의 눈길을 붙잡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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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도 고3 아이들은 매일 등교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둔 불안감은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힘이 세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유일하게 예외를 적용받고 있다. 감염병에도 그럴진대, 이 땅의 고3 아이들에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기대하는 건 아직 사치다.

수업 중 기후 위기에 대해 언급할라치면 말을 자르기 일쑤다. 수능이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는데,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고3에게 대학 입시는 가깝고, 기후 위기는 멀다. 한 아이의 말을 빌자면, 대학 입시는 '나의 문제'고, 기후 위기는 '남의 문제'라는 거다.

아마존과 동남아시아의 밀림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극한지 시베리아의 여름 기온이 섭씨 38도를 찍었다고 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호주와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에도 시큰둥할 뿐이다. 지구의 멸망보다 자신의 명문대 합격이 더 중요하다는 식이다.

"마스크를 쓰게 하는 것만도 벅찬데, 기후 위기는 무슨…"

아이들의 심드렁한 반응에 동료 교사들도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12년 동안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살아온 그들에게 기후 위기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용어라는 거다. 한 아이는 기후 위기조차 고3들에겐 수험용 지식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 외에는 고3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어차피 외부 활동이 거의 없는 고3에겐 점심시간 칸막이가 둘러쳐진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과 야간 자율학습이 없다는 점이 예년과 달라진 것의 전부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1년 뒤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교사라고 다를 건 없다. 역시나 마스크를 쓰는 것 말고는 똑같은 일상이다.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과 유례 없는 홍수와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를 절감했으면서도, 위기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도, 교사도, 머리와 가슴, 손발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대신 머지않아 백신이 개발될 것이라며, 어떻게든 그때까지만 견디면 된다고 말한다. 발전을 거듭해온 과학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아이들도 있다. 위기는 늘 기회가 되었고, 온갖 위기를 극복하면서 인류의 생존 능력은 더욱 커졌다고 눙치기도 했다.

지난해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렸을 때도 그랬다. 아이들 중에서 잿빛 미래를 우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인공 강우든, 미세먼지 흡입기든, 인류의 놀라운 과학 기술이 '도깨비방망이'가 돼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아이가 태반이었다.

고작 마스크 쓰는 걸 두고 벌이는 실랑이는 치기 어린 투정에 가깝다. 기후 위기의 징후는 뚜렷하지만,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마스크 쓰는 것조차 못 견뎌 하는 자신의 '편안한' 일상이 이웃을 아프게 하고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과의 결별이 필요하다. 사과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앉아 저절로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알다시피, 감염병의 확산과 홍수와 태풍이 서로 양상은 달라도 원인은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시위지만 수업의 연장 
 
등굣길 교문에서의 1인 시위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매일 아침 1시간 30분의 수고로움도 너끈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 등굣길 교문에서의 1인 시위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매일 아침 1시간 30분의 수고로움도 너끈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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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교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손수 제작한 피켓을 들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태워주는 학부모, 출근하는 동료 교사들을 맞이하고 있다. 비록 아침 시간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정면의 따가운 햇볕을 마주하는 건 만만치 않은 고역이다.

조금 불편하게 살자고 말 건네려는 뜻이니, 그 정도 수고는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고통이, 무심코 사용한 종이컵과 점심시간 배불리 먹은 고기반찬 때문이라는 걸 공감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시위가 아닌, 수업의 연장이라 여기고 있다.

피켓의 글귀도 요일마다 달리할 참이다. 무엇보다 글귀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짧고 선명하되, 지나치게 '꼰대스러워도' 안 되고, 보는 이에게 불쾌함을 주는 것도 피해야 한다. 사진이나 그림을 삽입하는 것도 좋지만,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첫 번째 피켓에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 인류에게 22세기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합시다!"라고. 수긍하는 이가 있다면, 오늘 하루 '뭐라도' 실천할 것이다. 하다못해 단 하루만이라도 종이컵을 안 쓰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교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첫날, 점심 메뉴로 돼지고기 수육에 보쌈김치, 순대, 된장국이 나왔다. 20년 넘게 채식을 해온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1년 365일 고기반찬으로 채워지는 아이들의 급식이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 든다.

타워 스테이크, 삼겹살 구이, 치킨 스테이크 파스타, 목살 필라프, 숯불 치밥 등 급식의 메인메뉴는 죄다 고기다. 고기가 없으면 아예 점심을 먹지 않는 아이들 때문이다. 학교에서 용의와 복장, 태도 등 모든 분야의 생활지도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급식 지도만은 예외인 셈이다.

"아마존 밀림이 죄다 불타도 살 수 있지만,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저흰 못 살아요."

목초지로 만들기 위해 하루에만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가까운 아마존이 불타고 있다는 뉴스에, 다수의 아이가 보인 반응이다. 아마존을 걱정하기에는 고기의 맛이 너무나 강렬하다는 거다. 아침마다 피켓을 드는 건, 결국 아이들의 식성 또한 교육의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기후 위기를 말이나 글이 아닌 몸으로 실감할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 확신한다. 의지가 부족해 실천을 미루고 있을 뿐, 고기 맛을 잊지 못하는 아이들과 종이컵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가슴 속에도 '그레타 툰베리'는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1인 시위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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