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집에 없다
집이 집을 나갔다
안방이
제일 먼저 나갔다
안방이 안방을 나가자
출산이 밖으로 나갔다
윗목이 방을 나가자
마루가 밖으로 나가자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마당이 마당 밖으로 나가자
잔치가 사라졌다
다 나갔다
돌잔치 집들이
결혼식 진갑잔치 팔순잔치
병든 이 늙은이
외로운 이가
다 집을 나갔다
그러는 사이
죽음이 집을 나갔다
죽음이 집 밖으로 나가 죽었다
집이 집을 나가자
죽음이 도처에서
저 혼자 죽어가기 시작했다
죽음이 살지 못하고
저 혼자 죽기 시작했다
- 이문재 시인 '집이 집에 없다'
집은 가족 공동체의 대소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던 곳이다. 예전엔 출산과 혼례와 장례가 모두 집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노동력과 십시일반의 부조는 동네 사람들의 몫이었다. 더불어 며칠 동안 그 집에서 먹고 놀았다. 그때 손님들은 대부분 걸어서 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왔다. 동네 조무래기들은 신이 나서 시키지도 않는 심부름을 자청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거지들도 한 몫을 요구했다. 큰집들은 일 년 내내 수시로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집 하면 북적북적이란 말이 떠오르는데, 요즘 집은 티브이 혼자 떠든다. 혹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무료하게 졸고 있다. 집에서 이루어지던 모든 대소사가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마당이었다. 마당이 없다는 것은 집의 공적(公的)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 집안의 무대가 없으니 배우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수시로 드나들던 관객도 뚝 끊겼다.
서로의 체온으로 데워가던 가족공동체와 더불어 마을공동체를 무너뜨린 것은 바로 아파트 문화이다. 주거공간의 혁명이라 불리는 아파트는 편리함을 앞세운 자본의 상품이다. 자본은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사각에 사람을 가두고 충분히 게으르도록 생활공간을 축약시켜 놓았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 새로운 집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유폐됐다. (이덕규 시인/시 전문 책방 구름공장 공장장)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덕규 시인(시 전문 책방 구름공장 공장장)입니다.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