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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가명· 67)씨 부부는 3월 18일을 잊을 수 없다. 김대현씨는 3월 18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날 이후,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씨는 5년 전, 폐렴 치료를 받았다. 증상은 올해와 비슷했다. 기침이 났고 약간의 열이 있었다. 5년 전 폐렴이 재발한 것이려니 했다. 김씨는 그날 병원에 갔다가 느닷없이 음압실로 가라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판독불가'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설마'했다.
 
 그의 확진 소식은 전주시를 술렁이게 했다. 김씨의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확진 소식은 전주시를 술렁이게 했다. 김씨의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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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압실에서 의료진들이 건네준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자신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밖에서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김씨 부부를 보았다. 김씨의 아내 조씨는 이때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날 두 번째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다. 3월 18일 밤 9시경이었다.

김씨는 전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전북의 10번째 확진자였다. 그의 확진 소식은 전주시를 술렁이게 했다. 김씨의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대구를 다녀온 적도, 교회를 나간 적도, 대구에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다. 방역당국은 감염경로를 알아내기 위해 샅샅이 조사했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김씨가 판정 받기 전 다녀왔다는 헬스장과 목욕탕은 곧바로 영업중단하고 소독에 들어갔다.
 
김씨의 식당은 전주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내 지인들 중에서도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람이 많았다. 좁은 전주바닥에 김씨네 식당 상호는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최근 다녀온 사람들의 신상도 들녘 봄불처럼 무섭게 퍼져갔다.

식당 전경이 티비 뉴스에 그대로 나갔고, 매스컴에서는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식당 상호를 내보냈다. 김씨 감염경로는 여전히 불투명했고 지역사회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김씨 관련된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이야기다.
 
그날 이후, 모든게 달라졌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코로나19 속보가 이어졌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코로나19 속보가 이어졌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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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씨 부부를 만난 것은 6월 2일. 식당은 고요했다. 여느때 같으면 점심 장사 준비로 분주할 법한데, 부부는 손을 놓고 함께 나를 마주했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 나는 잠시 망설였다. 뭐라고 인사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건강하시냐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게 무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도 코로나19 후유증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였다. 김씨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건강했다. 코로나 이야기를 꺼내자 아내 조씨가 한숨을 먼저 쉬었다. 아주 길고 낮은 한숨.
 
"3월 18일부터 하루에 약 백통씩 전화를 받았어요. '가게 망해버려라', '그냥 죽어버려라', '식재료를 대구에서 가져왔다는 걸 보았다'는 전화까지.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심지어는 '네 남편이 신천지랑 무슨 관계 있는 거 아니냐, 뒷조사 한번 해봐라'는 말까지 조씨는 들어야만 했다. 식당 주차장에 있는 트럭을 두고, 새벽마다 그 차를 몰고 대구에 갔다더라는 신고도 들어왔다. 김씨 부부는 알지도 못하는 근처 원룸 주민의 신고라 했다. 김씨네 부부가 판정 받기 전 미국에 다녀왔다는 뜬 소문도 붕붕 돌았다. 전주에서 20년, 진안에서 17년 동안 가게를 했다. 단골도 많았고 신뢰도 쌓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확진자 판정을 받은 뒤 가게 앞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조씨는 2주간 가게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2주간 먹은 음식이라곤 고작 밥 네 공기가 전부. 다행히 인심을 잃지 않아, 지인들이 식당 앞에 갈비탕이며 간식, 과일 등을 가져다놓긴 했지만 다 버려야했다.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체중 5kg이 날아갔다.
 
판정 후 약 2주간은 매일 보건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그들은 김씨의 감염경로를 밝히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렸다. 신용카드, 블랙박스, 휴대폰 사용내역... 모든 정보를 다 까발리고 탈탈 털었지만 시원스럽게 나온 것은 없었다. 목욕탕과 헬스장, 한 두 번 다녀온 마트가 김씨 동선의 전부였다.
 
"유서 쓰고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내 억울함 조금이나마 알아주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지금도 사람들 지나가면서 우리 가게 손가락질 하고 가요. '이 집이야, 이 집.' 사람들 눈 쳐다보기가 너무 무서워요."
 
조씨는 '억울함'이라 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씨는 판정을 받기 약 보름 전부터 경기도에서 내려온 외손주들과 한 방에서 함께 먹고 아이들을 끼고 잤다. 사실, 김씨가 양성 판정을 받은 뒤 가장 걱정되었던 것도 외손주들이었다. 다행히 딸 가족들은 음성판정을 받았다.
 
거짓말처럼, 나 홀로 코로나

아내가 장녀인 까닭에 식당에는 늘 스무명 가까운 처가 동생 식구들이 함께 식당 일을 도와주곤 했다. 2층 살림집에서는 아흔살에 가까운 장모와 처형, 처남들이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그들도 모두 2주간 자가격리를 했고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김씨 빼놓고 모두 음성판정이었다.

함께 밥 먹고 잠 자고 살 부비며 살았는데, 그 전파력 강하다는 코로나19에 김씨만 걸린 것이다. 김씨가 다녀갔다는 목욕탕, 헬스장, 마트, 하물며 확진 판정 전날 100명 가까운 단체손님을 받았다는 김씨의 식당인데 어디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김씨 홀로 걸린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코로나 아니다, 잘못 판정받았다'라고 말한단다. 김씨 부부는 지금도 확신한다. 자신들은 절대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니라고. 물론 그 진실 여부를 나는 알 수 없다. 확인해줄 수도 없다. 조씨는 보건소에 연락해서 억울함을 호소한뒤 환자 정보를 수정해줄 수 없냐고 물어봤지만, '절대 불가'라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모든 이름을 지배한 '확진자'라는 이름

그리하여 확진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헬스장에 가도, 한의원에 가도 사람들은 대놓고 물어본다. '확진자시네요?'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건강하세요?' 그 걱정은 김씨 자신을 위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냐라는 무언의 압력임을 김씨 부부는 느낀다. 모든 정보, 모든 이름에 '확진자'라는 이름이 앞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지배한다.
 
김씨는 4월 18일 영업을 재개했다. 4월 8일 퇴원하고 병원 측에서는 '당장 내일부터 가게를 운영해도 된다'고 했다. 김씨 부부는 그 대목도 미심쩍다고 했다. 확진자는 퇴원 후에도 보통 2주간 자가격리를 권하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알아서 2주간 자가격리한 뒤 18일 문을 열었다.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훨씬 더 처참했다. 매상은 곤두박질쳤다. 손님 없는 날이 이어졌다.
 
"지금은 어쩌다 가끔 오시는 손님들이 있어요. 그 분들 계산하고 나가면서 꼭 그래요. '사장님. 음식은 맛있는데 처음엔 찝찝했어'라고요."
 
위로한답시고 빈정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식당) 가도 괜찮아요?'
'식구들한테 옮아야되는데 안 옮은 거 보면 참 이상해. 그치?'

 
 부부는 '한 손님'을 위해 칼을 갈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김씨 부부는 일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부부는 "한 손님"을 위해 칼을 갈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김씨 부부는 일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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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김씨 부부의 소원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냥 잊히는 것. 더 이상 확진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이 너무 무섭더라고요. 코로나보다 그게 더 무서웠어요. 우리 가족은 모두 건강하고 우리는 확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설령 확진자라 해도 그렇게 까벌리면 안 된다는 것을요."
 
인터뷰를 마치고 김씨 부부는 그제야 장사 준비를 했다. 마침 그날 점심 예약 손님이 딱 한 건 있다고 했다. 그 '한 손님'을 위해 칼을 갈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김씨 부부는 일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잠시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외출했던 식구가 집에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 듯, 그리고 그 식구를 위해 손을 놀려 음식을 장만하는 자연스럽고 평범한 이 일상을 이제는 되찾고 싶다. '건강하세요?'라는 질문 대신 '오늘은 뭐가 맛있어요?'라고 인사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씨 부부는 실명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지만, 혹시 모르는 불이익을 우려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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