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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덕기 목사(1875-1914). 상동교회 제6대 목사.
 전덕기 목사(1875-1914). 상동교회 제6대 목사.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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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마수가 침략을 노골화한 1905년 을사늑변을 전후하여 한국에서 민족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 중에는 전덕기(全德基, 1875~1914) 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민족운동 지도자였다. 주시경은 그가 세운 상동청년학원에서 교사를 지내고 한글을 각별히 사랑했던 그와 더불어 민족운동과 한글운동을 하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찍 고아가 되어 어렵게 성장한 전덕기는 선교사 스크랜턴에게 세례를 받고(1895년) 스크랜턴 대부인이 서울 상동에 공옥여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상동교회에 엡윗 청년회를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전덕기는 이후 상동교회에 상동청년학원을 설립하고(1904년), 성경과 종교과목을 직접 가르쳤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1905년)

전덕기는 1906년 6월 상동청년학원에서 『가정잡지』발행을 주도하고 공옥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자 아이들에게 근대적 교육을 실시하였다. 여기서 주시경이 기자ㆍ강사ㆍ교사로서  참여한 것이다.

상동교회 공옥여학교, 청년학원에 주시경이 강사가 된 것은 우선 같은 교회 성도라는 점과 을사조약으로 주권 상실을 당한 그 비극의 시대에 우리 말ㆍ글ㆍ얼 사랑의 국어운동 및 교육으로의 구국운동, 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국어에 대한 이해심이 깊고 교양적인 인격으로 도와 줄 사람들은 기독교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만 해도 글삶, 말삶에 대한 사회 인식은 우리말이나 글을 업신 여기고 한문을 진서로 하는 최만리형 사대의식이 강할 때였다. 한글은 언문으로 너무 배우기 쉽고 익히기 쉽기 때문에 여자들이나 배워야 하는 여자글, 암글로 내팽개치던 한글 무시. 한자 중시 사상이 더욱 망국의 길을 재촉하고 있을 그런 때였다.

이런 국가의 위기가 닥쳐 올 때 전덕기의 기도와 후원을 받은 주시경은 우리 국어사랑, 국어 정신이 나라를 지키고 겨레를 살리는 길로 깊이 깨달은 것이다. (주석 10)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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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과 전덕기는 어렸을 적부터 이웃에서 함께 자랐고, 독립협회에서 같은 회원이었다. 두 사람은 연배와 역사의식ㆍ시국관이 비슷하여 쉽게 뜻을 함께할 수 있었다.

청년학원의 교사 주시경은 일찍이 전덕기 목사의 인격과 신앙적 감화를 본받아 온 가족이 상동 감리교회에 출석하였다. 주시경 선생이 전 목사보다 한 살 아래였기 때문에 한 형제같이 친하게 사귀였다. 전 목사의 사랑을 남달리 받은 주시경 선생은 마음껏 활동할 수 있었다. 상동교회 역시 주시경 선생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었기에 장안의 이름난 교회로 발전할 수 있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 교회의 성장 발전은 그 교회의 목회자와 그 중심의 중견 신도들의 공동체 의식에서 하나가 된 결과로서 곧 "성령이 도우심을 받게 될 때에 발전한다"라고 하지만, 상동 감리교회의 성령의 도우심이 임하게 된 것의 하나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의 단합된 사회봉사에서이다. (주석 11)<

 
 서울 남대문 근처에 있던 상동교회 옛 건물
 서울 남대문 근처에 있던 상동교회 옛 건물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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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청년학원에 모여든 주요 애국청년들은 다음과 같다.

김 구ㆍ이동휘ㆍ이동녕ㆍ이 준ㆍ노백린
안태국ㆍ남궁억ㆍ신채호ㆍ최광옥ㆍ차병수
이승훈ㆍ이상설ㆍ최남선ㆍ이상재ㆍ최재학
김진호ㆍ양기탁ㆍ주시경ㆍ이용태ㆍ윤치호
이회영ㆍ유일선ㆍ이필주ㆍ이승만 (주석 12)


청년학원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① 한글의 이치와 그 보급
 ② 국사 강의
 ③ 타 문화 강의
 ④ 건강론(체육)
 ⑤ 신문화의 수용과 전파
 ⑥ 지도자의 자기 수양
 ⑦ 종교 훈련

 그리고 담당 교사는 다음과 같이 배정하였다.

 ①의 '한글의 이치와 그 보급'은 주시경 선생
 ②의 '국사 강의'는 장도빈 선생과 최남선 선생
 ③ '타 문화 강의'는 남궁억 선생과 조성환 선생
 ④ '건강론'은 이필주 선생
 ⑤ '신문화의 수용과 전파'는 김동원 선생과 이예춘 선생, 그리고 이보라 선생
 ⑥ '지도자의 자기 수양'과 ⑦'종교 훈련'은 전덕기 목사 (주석 13)


주석
10> 오동춘, 「전덕기 목사의 국어정신과 나라사랑」, 『나라사랑』제97집, 317쪽, 외솔회, 1998.
11> 이응호, 「상동청년학원과 한글운동」, 『나라사랑』(제97집), 234쪽, 외솔회, 1998.
12> 앞의 책, 231~232쪽.
13> 앞의 책, 230~23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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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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