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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민공동회 민족기록화, 만민공동회는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다. 고종에게 헌의 6조의 실천과 의회설치 약속을 받아내지만 고종과 근왕파 등 수구세력의 탄압으로 해산되고 만다.
 만민공동회 민족기록화, 만민공동회는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다. 고종에게 헌의 6조의 실천과 의회설치 약속을 받아내지만 고종과 근왕파 등 수구세력의 탄압으로 해산되고 만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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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조선의 정세는 거듭되는 외우내환으로 날로 위기의 고빗길로 치달았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국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이라는 먹잇감을 놓고 대결하고, 국내적으로는 종주국을 옮겨가면서 사대기득권을 놓지않으려는 수구파와 현상타파를 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는 개혁진보파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여전히 친러파가 국정을 농단하고, 이를 비판하는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고종은 한 때 서재필을 옹호하는 듯 했으나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러시아의 이권 침탈과 이에 놀아난 친러파 조정 대신들을 비판하면서 적대의식으로 바뀌어갔다.

독립협회는 러시아 공사 스페이에르가 부산의 절영도 조차를 거듭 요구하자 1898년 2월 27일 간부회의를 열어 이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또한 일본에 조차된 석탄고 기지를 회수할 것을 요구하는 등 국권수호를 위한 민중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 해 3월 10일 서울시민 1만여 명이 종로에 모였다. 당시 서울 시민의 17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2016~2017년 박근혜의 적폐와 수구세력의 국정농단을 성토하고자 광화문에 17회에 걸쳐 연일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촛불혁명보다 100년 훨씬 전의 일이다.
  
‘믿는 마음을 두루 갖게 하자’는 뜻의 보신각. 그 앞은 1898년 만민공동회로 붐볐고, 1919년에는 3.1 독립만세운동과 ‘한성정부’ 설립을 선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척화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보신각. ‘믿는 마음을 두루 갖게 하자’는 뜻의 보신각. 그 앞은 1898년 만민공동회로 붐볐고, 1919년에는 3.1 독립만세운동과 ‘한성정부’ 설립을 선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척화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보신각.
▲ ‘믿는 마음을 두루 갖게 하자’는 뜻의 보신각. 그 앞은 1898년 만민공동회로 붐볐고, 1919년에는 3.1 독립만세운동과 ‘한성정부’ 설립을 선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척화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보신각. ‘믿는 마음을 두루 갖게 하자’는 뜻의 보신각. 그 앞은 1898년 만민공동회로 붐볐고, 1919년에는 3.1 독립만세운동과 ‘한성정부’ 설립을 선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척화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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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란이나 혁명이 아닌 평시에 서울 중심가에 시민 1만여 명이 모인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것도 토론을 하거나 듣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서재필의 주선으로 주시경 등이 참여한 배제학당과 협성협회에서 시작한 토론문화가 마침내 만민공동회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민중들은 만민공동회에서 쌀장수 현덕호를 회장으로 선출한 데 이어 다수의 시민들이 연단에 올라 러시아의 이권 침탈정책을 규탄하면서, 정부가 나라의 자주독립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퇴거를 요구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밖으로는 열강의 침략과 이권침탈을 막아내고 안으로는 국정개혁을 통해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여러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고 토론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여 입법기관으로서의 의회를 개설하고 이를 통하여 민의가 언제나 국정에 반영되는 체제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둘째, 그들은 개혁파관료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자강개혁 내각을 수립하여 이 새 내각이 적극적으로 자강개혁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의회를 통하여 국민이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국정에 반영시킬 수 있으면 정부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고 단결하여 안으로는 자강을 실현하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막아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 그들은 이를 위해서 관민이 합석하여 국정개혁의 대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자강개혁내각으로부터 이 대원칙의 실천을 약속받아 보장시킨 다음 민중도 일치단결하여 이 자강개혁을 지지하고 일정기간 동안 관민이 대동단결하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자주독립을 지킬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주석 7)


민심을 얻은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의 결정에 따른 정기적인 집회(매주 토요일)와는 별도로 민중들이 스스로 여기저기서 집회를 열어 국가현안을 토론하고 외세의 침탈을 배격하면서 각종 탐관오리들의 수탈을 폭로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주시경은 협성회를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민력(民力)이 강화되어가자 러시아는 물론 친러 대신들과 고종황제, 심지어 일본까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활동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이다.

독립파의 목적은 견고한 정부를 형성하여 비정을 개혁하려고 하는데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궁정의 질서가 혼란하고 군권(君權) 남용의 폐행이 많음에 당하여서는 도저히 목적을 관철할 수 없다고 보고, 먼저 현임대신을 배척하여 연소유위(年少有爲)의 인재를 거하여 신정부를 조직함과 동시에, 중추원관제를 개혁하여 여기에  참정권을 주어서 정부와 서로 연합하여 정부의 지위를 견고히 하고, 상폐하(황제)에 대하여 강경한 태도를 집하여 그 군권을 억제하고 비정의 혁파를 여행하려고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주석 8)

일본은 장차 대한제국을 침략하여 속방화하려는 것이 목적인데, 조선이 근대적 입헌공화제 국가로 발전하려는 주장이 크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활동이 강화되어가면서 러시아와 친러 대신 그리고 고종과 일본정부까지 개화파의 존재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꼽았다.

조선사회의 모든 개혁활동의 중심에 서재필이 작용하고, 그에 의해 운영되고, 움직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공공연하게 서재필의 추방 소식이 나돌았다.

이 시기 주시경이 참여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전개한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서재필 추방 반대운동, ②생명과 재산의 자유권 수호운동, ③탐관오리의 규탄, ④러시아의 목포ㆍ진남포 항구매도 요구 반대, ⑤프랑스의 광산이권 요구 반대, ⑥정부의 해외 각종 이권 양여의 조사, ⑦무관학교 학생선발 부정 비판, ⑧의사양성학교 설립 주장, ⑨의병에 피살된 일본인에 대한 일본의 배상요구 저지와 이권요구 반대, ⑩황실호위 외인부대 창설 저지, ⑪노륙법 및 연죄법 부활 저지, ⑫7대신 규탄과 개혁내각 수립, ⑬민족상권 수호운동, ⑭언론과 집회의 자유권 수호운동, ⑮의회설립 운동 등이다.

만민공동회의 영향과 반향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4천년 동안 억눌리고 착취의 대상이었던 피지배 서민들이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면서, 권세가들을 드러내놓고 비판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지시 - 추종의 질서가 토론문화로 바뀌어 갔다. 정부는 한 때 엄청난 군중의 힘에 압도되어 고종이 돈례문까지 나와 만민공동회 대표에게 대정부 제안의 일부를 수용하겠다는 약조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주석
7> 신용하, 앞의 책, 378~379쪽.
8>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898년(명치 31년) 11월 8일조, (독립협회 대신배척 관련 상보).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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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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