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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쓴 다림줄 보수해 사용
"마을 전통 넘어 용인의 자존심"

 
향토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남사면 산정동줄다리기보존회 회원들.
 향토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남사면 산정동줄다리기보존회 회원들.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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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액운을 물리치고 주민 단합을 위해 매년 정월대보름마다 열렸던 우리 풍습 중 하나는 줄다리기다. 그중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 산정동줄다리기는 규모나 전통성 등에 비춰볼 때 용인 대표격으로 인정받았다. 

산정동줄다리기에 대한 정확한 시작은 기록된 바 없지만 마을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산정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돌고 아이들은 물론 건장한 사람들까지 하나 둘씩 죽어나가던 때에서 시작된다.

가뭄까지 들어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던 어느 날 기이하게 굽은 흰 지팡이를 짚고 흰 두루마리를 걸친 삿갓을 쓴 흰 수염의 도인이 촌장의 집에서 머물게 됐다. 도인은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짚을 굵게 엮은 다림줄을 만들어 정월대보름에 힘차게 당기면 이 마을의 모든 액운이 물러가고 예전처럼 평화로운 마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단다. 그 후 산정마을은 매년 줄다리기 행사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거치고, 해방 뒤에는 미신을 없앤다며 전통놀이를 제한했죠. 그래도 어떻게든 지켜왔는데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으니 힘에 부쳐 할 수가 있나요."

어느 순간 끊겨 10여년 동안 하지 못했던 줄다리기 행사는 지난해 산정동 이정훈 이장과 이찬재 노인회장 등 주민들의 노력으로 재현됐다. 전통에 따라 마을 뒷산에 보관 중이었던 줄다리기 줄은 신기하게도 조금 삭았을 뿐 멀쩡하게 보관돼 있었다.

산정동의 다림줄은 수백년 동안 쓰던 원줄을 그대로 보수하며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통풍이 잘 되도록 밤나무를 통째로 잘라 바닥에 얼기설기 깔고 두 개의 줄은 뱀이 똬리를 틀 듯 둥글게 말아 올린다. 그 위에 짚을 엮어 만든 몇 겹의 지붕을 덮어 보관한다. 산정동 다림줄은 수백년 마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의 산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꺼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멀쩡했어요. 인근에 쥐도 많은데 다림줄에 갈아먹은 흔적 하나 없고 썩은 곳도 없었죠. 덕분에 지난해 큰 힘 들이지 않고 보수해서 다시 썼어요."  

정월대보름 산정동줄다리기가 성대하게 열릴 때는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 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유명했다. 당기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니 다림줄 굵기도 점점 굵어져 아이 넷이서 줄을 안아야 잡힐 정도였다. 암줄과 수줄에 각 200여명 가량 인원이 함께 붙어 3일 내리 줄을 당긴 적도 있단다. 줄다리기가 끝나고 나면 동네 아낙들이 준비한 국밥, 막걸리를 풍성하게 나눠먹었다 하니 온 마을이 단합하는 대규모 축제였다고 볼 수 있다.

"액운을 물리치는 의미를 넘어 마을과 마을이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는 하나의 큰 축제였어요. 멀리 충청남도에서 장사꾼들이 소문을 듣고 60리를 걸어서 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산정동줄다리기보존회는 요즘 2월 8일로 예정된 정월대보름 줄다리기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인근 아파트단지 주민들도 줄다리기 준비와 당일 행사에 힘을 보탰는데 올해도 역시 도움을 주기로 했다. 수백년 전 온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줄다리기를 즐겼던 그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는 점에서 향토문화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도시가 발전하고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인의 뿌리를 알고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산정동 줄다리기는 단순히 마을 전통을 넘어서 용인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역에서도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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