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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전시관을 견학 간 고려인 어린이들
 비무장지대(DMZ) 전시관을 견학 간 고려인 어린이들
ⓒ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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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정이요." 

소냐(가명)는 최근 들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다리니 그 사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여러 사정 중 얼핏 스쳐 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 쉬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나 봐요." 

나 또한 학교에 가지 않을 핑계 정도로 듣고 말았다. 하지만 대화가 비자와 생활 지원 등으로 옮겨가고 소냐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끄러움이 이내 밀려왔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2014년 조사이긴 하지만 국내 거주 고려인 중 62.5%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조사> 2014, 재외동포재단)

아프면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건강보험이 없는 까닭을 묻자 소냐가 '돈' 이야기를 꺼낸다. 

"70만 원이나 내야 한대요. 그 돈이 어디 있어요." 

소냐의 어머니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가 아니다. 소냐의 어머니뿐 아니라 파견 일용직으로 일하는 많은 고려인이 비슷한 상황이다. 지역 가입은 보험료가 높다. 게다가 입국한 지 꽤 지나 신청하면 가입 전 보험료가 소급되어 징수되어 첫 달 보험료에 합산되어 나온다.
      
소냐가 말한 70만 원이란 가입 첫 달에 내야 할 밀린 보험료인 듯하다. 무엇을 근거로 나온 액수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냐 가족에게는 큰돈이다. 2~3개월 치 월세와 맞먹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오전에 병원 갔다가 학교로 오라고 그랬어요." 

동네 의원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치료비의 70%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런 지원이 소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병원비만 있나. 약값도 부담이다. 담임교사에게 병원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게 구차하게 느껴졌다. 결국 소냐는 결석을 택했다.

소냐와 인터뷰를 앞두고 '오는 7월부터 한국에 6개월 이상 머무른 외국인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보험은 필요하지만 고려인들이 환영할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병원비 1~2만 원이 아까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소냐의 가족이 어떻게 매달 10만 원(평균보험료)가량의 돈을 낼 수 있을까. 가난할수록 작은 변화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외국인 및 재외국민의 건강보험 지역 가입을 위한 최소 체류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해 외국인 대상 보험 규제를 엄격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소득층 이주민에 대한 대책은 들려오지 않았다.

언어를 몰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선조들이 러시아로 간 이후 가혹한 역사는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몇 차례의 이주 끝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뿌리를 지탱해줄 많은 것들이 사라진 후였다. 

기반이 취약한 만큼 많은 지원이 필요했다. 반대로 말하면 지원 정책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이들의 삶을 해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소냐는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국말을 하지 못해 학교에 보내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종일 혼자였을 12살 아이를 상상해본다. 

"그때는 동네가 조용하고 깨끗했어요." 
 
광주 고려인마을 광주진료소 모습
 광주 고려인마을 광주진료소 모습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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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일터와 학교에 있을 시각, 소냐는 한적한 동네에서 무료한 시간을 견뎠다. 1년 뒤 학교에 들어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홀로 기다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이 되어 고려인지원센터를 스스로 찾을 때까지 소냐는 한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통역 봉사를 할 정도로 소냐의 한국어 능력은 수준급이다. 8년이 지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소냐에게 '한국은 살 만한 나라였냐'고 묻자 소냐는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유를 덧붙였다.

"일할 수 있으니까요."

일을 찾아 헤매다
 

나눈 이야기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 소재가 '일'이었다. 소냐는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았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공장에서 파견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혼자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제조업 일자리를 구하기도 했단다. 용감하다고 감탄했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 했을 시간이 그려졌다. 

공장 일은 고됐다. 출·퇴근용 승합차에 실려 공장에 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승합차에 실려 왔다. 

"말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제 옆에서 '쟤는 고려인이니까 돈을 덜 줘도 된다'고 그랬어요." 

소냐는 꿈이 '노무사'라고 했다. 노동에 관한 법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는지 돈을 모아 '인력사무소'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흔히 듣기 힘든 장래희망 직업이다. 이유를 물으니 '고려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소냐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돈'이다. 돈을 얻기 위해선 일을 구해야 했다. 이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비자 취득.' 

"제가 f-1(방문 동거 비자)이에요. 사실 이 비자로는 공장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어요. 제가 한국어를 할 수 있어서 공장에 갈 수 있었던 거예요." 

한국어 실력과 비자 취득. 한국어 교육은 지원이 늦었고 비자 문제는 소냐에게 늘 공포를 안겨줬다. 소냐는 고려인 4세로 현행법은 고려인 3세까지를 재외 동포로 인정한다. 소냐는 늘 성년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한숨을 돌릴 만한 소식이 있었다. 고려인 4세도 동포 자격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재외동포법 시행령)이 예고된 것이다.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소냐는 친척도 없는 우즈베키스탄에 혼자 가야 한다. 

소냐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체류 자격만이 아니었다. 졸업하기 전부터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생활의 안정이 부재했다.

터전을 마련하는 일
 

국내 체류 외국인이 2백만 명을 넘어선 것도 이미 몇 해 전. 결혼이민과 재외 동포 등 준 영구 이주자도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주는 당사자에게도, 이주를 받아들이는 장소에도 세대를 넘어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요 이주정책은 주로 '외국 인력 활용정책'에 맞춰져 있다. 인력정책으로 접근하면 결국 1차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이 우선되게 된다. 지원 정책도 그에 맞춰 제공된다.

단기노동력, 그러니까 일회용 노동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집단(이주노동자)에겐 가족 단위의 복지와 지원이 고려되지 않는다. 머물면 안 되는 존재라 여기니까. 이러한 이유로 다문화(결혼이주여성) 가족과 이주노동자 가족이 받는 지원 정책은 꽤 차이가 난다. 

소냐에겐 지원되지 않던 한글 교육이 다문화 가족에게는 방문 교육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지원된다. 보육 서비스, 주거 지원도 마찬가지다. 고려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는 이 지점에서 모순된다. 

한민족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을 조상들의 나라라 여기길 바란다. 이들이 한국 땅에서 살고 싶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이 따라와야 하는데 이는 저임금 외국인력 정책과 어긋난다. 저임금 3D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수가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들이다. 

몇 년 사이 고려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고려인지원센터가 안착하는 등 지원정책이 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폭넓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알다시피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외국인이건 동포건 국적이 무엇이건 사람의 체류를 허가했다면 그의 터전 또한 마련해야 한다. 그가 지낼 장소를 내어주어야 한다. 그 장소가 때론 가족이 된다. 가족 단위 생활 지원이 필요하다.

미래를 꿈꾸게 하는 제도

소냐는 공인노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같이 자리한 친구는 군인이 되고 싶단다. 이들 직업의 자격 요건이 그제야 떠올랐다. '공인'이 붙는 자격증을 외국 국적의 사람이 취득할 수 있을까. 

고려인 청소년들이 말해준 희망 직업들이 준 영주권에 가까운 체류자격을 필요로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소냐에게 시험 응시자격을 아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본 적 있는지 영주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돈(소득)이 그렇게 없어요." 

귀화나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한 최저 소득 기준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다. 2019년 기준으로는 약 3400만 원 정도다. 비자에 따라 4년 이상 근무처 변경이 없어야 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지만 고려인들은 이미 소득 기준에서 고개를 젓는다. 

구소련 지역 동포들의 문제가 알려진 후 체류 자격이 완화되고 있다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는다. 부모 세대에 부재했던 지원 정책은 빈곤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대물림을 끊는 것은 자립과 정착을 지원하는 제도일 것이다. 

f-1(방문 동거 비자)인 상태에서 f-4(재외동포비자)를 거쳐 f-5(영주권)에 도달하기까지 소냐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당장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대학 교육도, 취업도 불확실하다. 그런데도 다음 세대는 미래를 꿈꾼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꿈꾼다. 미래를 보지 않으면 무엇을 본단 말인가.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는 연해주 등지에서 이뤄진 고려인의 항일항쟁 역사를 대한민국 땅에 적어내리는 기록입니다. 낯선 땅에서 굴하지 않고 삶을 지켜낸 이들, 더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러나 이름 없이 잊힐 수밖에 없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작업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5만 명의 건립자가 되어주세요. - 고려인독립운동 국민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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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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