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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미세먼지에는 삼겹살이 좋다는 항설이 떠돌았다. 지방은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 체내 독성물질이나 미세먼지 같은 이물질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삼겹살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물론, 아니다.

2008년 5월 31일에 용산 제4구역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면서 2009년 1월 19일, 남일당 건물에 망루가 세워졌고, 하루 만에 유례없는 강행 진압으로 여섯 명의 인명을 앗아간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검찰과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이 5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되기는 했지만, 용산참사의 진상은 아직도 규명되지 못한 상태이다. 개발 사업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용산개 방실이, 꽃피는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용산참사를 다룬 책들 용산개 방실이, 꽃피는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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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장더불어'에서 출간된 『용산개 방실이』에는 故 양회성 씨 가족의 사연이 나온다. 용산에서 번듯한 복집을 운영하고 있던 양회성 씨의 가게는 재개발이 논의되면서 문을 닫았고, 그는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반려견이었던 강아지 방실이는 양회성 씨가 세상을 떠나자, 시름시름 앓다가 같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가족들은 몇 년 전 숙대입구 역 근처에 일식집을 열었지만 불황으로 수익이 줄어들면서 가게 문을 닫았다고 한다. 최근에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재건축 현장 앞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가 호떡 가게를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용산역 2번 출구를 나와 쭉 걸어가면 바로 보인다.
▲ 신용산역 2번 출구 근방의 호떡집 신용산역 2번 출구를 나와 쭉 걸어가면 바로 보인다.
ⓒ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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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산 역 2번 출구를 나와 그곳을 찾았다.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염과 사건 현장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졌고,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호떡을 팔고 있는 포장마차 바로 뒤에는 '용산4구역 신축공사-용산 국제빌딩 주변 2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라는 푯말을 싸고 새로운 건물이 한창 건설 중이었다.

포장마차에는 '인사동 명물 호떡'이라고 조그맣게 붙은 천이 보였다. 길 건너 바로 앞에는 용산역 아이파크몰 정문이 자리잡고 있었고, 많은 차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새롭게 지은 고층 빌딩들 사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떡 가게 안에서 유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참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떡집
▲ 용산4구역의 현재 한참 새로운 건물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떡집
ⓒ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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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넣은 호떡은 식어있었다. 베어 물자 고소한 옥수수향이 느껴졌고, 들쩍지근한 설탕 시럽이 흘러 나왔다. 내가 아는 그 인사동 호떡 맛이었다. 인적이 많지 않아 식은 호떡의 온도가 안타까웠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도 그렇게 차갑게 식어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건 발생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용산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현장을 총지휘했던 책임자는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한 지역의 국회의원이 되고, 최근 당내의 지방자치위원장까지 맡았다.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 영화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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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이후 누군가는 그것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어 승승장구했고, 누군가는 터전에서 내쫓긴 채 더욱 빈곤층으로 내몰렸다.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에서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용산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의 철거민으로서 연대한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치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도 아닌데, 어쩌자고 용산의 현장까지 가서 힘을 보태려고 들다가 저 끔찍한 일을 당했을까. 사는 곳에서 내몰렸다는 절박함은 그만큼 비참하고 간절한 것일까.

 '연대'라는 말은 여전히 무겁고 어렵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도 있지만, 사실 비슷한 경험을 겪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기도 어렵다. 아니, 내가 속한 집단의 문제가 걸려있을 때조차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선은 현장에 종종 들러 호떡을 사먹고, 이렇게 글을 써서 알리는 정도라도 해보려고 한다. 미세먼지엔 삼겹살 대신 신용산 역에 잠깐 들러 호떡을 사먹자고.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용산참사10주년, #용산참사진상규명, #미세먼지엔호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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