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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는 우리 결혼식의 주제였다. 결혼 첫 날, 공동체 식구들은 이렇게 집안 곳곳을 꾸며 주었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는 우리 결혼식의 주제였다. 결혼 첫 날, 공동체 식구들은 이렇게 집안 곳곳을 꾸며 주었다.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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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제 마흔이다. 공자는 마흔에 불혹의 경지에 올랐다는데 나는 아직 인생의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도 못했다. 1월 27일이 되면 이제야 결혼 1년을 채운 초보 신랑에 불과하다. 물론 덕분에 1년 동안 '신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풋풋한 느낌을 몸에 달고 살긴 했지만.

지겹도록 싸웠다

2년 넘게 연애를 했다. 아름다운 애인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로 가슴 뛰는 순간도 많았지만. 다시 하기는 싫다. 싸운 기억도 만만치 않게 많기 때문이다. 여자친구 집 앞에서. 편의점에서. 마을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식당에서. 동네 체육관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래도 사랑싸움인데.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불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싸운다는 건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니까. 그렇게 주구장창 싸우면서 하는 연애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

결혼 결정도 싸우다가 했다. 싸움의 시작은 별 거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 오가다 감정이 폭발했고 결국 한쪽의 헤어지자는 이야기에 상대도 동의했다. 작은 불꽃이 삽시간에 대형 산불로 번져 모든 걸 다 태워 버리려던 순간.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극적 화해를 이뤄냈다. 그리고는 결혼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8년 1월 27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1년 동안 싸웠던 순간은 손에 꼽는다. 살짝 격했던 순간도 없진 않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거의 싸우지 않았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겠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기적도 이보단 놀랍지 않으리라. 그렇게 치열하고 자주 싸웠던 건 꿈인가 싶을 정도로 평온한 결혼 생활이었다.

같이 살면 부딪칠 부분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왜 싸우지 않았을까. 걱정마시라. 1년 정도는 싸우지 말자고 휴전협정 같은 걸 한 건 아니니까. 극적으로 결혼을 결정하면서 서로가 많이 성숙한 것 같다. 내 입으로 자신 있게 말하려니 민망하긴 하지만. 뭐. 그런 것 같다. 아예 붙어 살면서 서로의 일상을 이해하는 면도 넓어졌다. 각자가 얼마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지 깊이 이해하니 싸울 일이 줄어 들었다.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려는데. 이건 좀 아쉽다. 이 놀라운 기적을 어찌 한 문단으로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논문 한 편도 모자랄 판이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지난 1년을 정리해 보기로.

시작은 창대하리라
 
 결혼준비위원회와 함께 찍은 사진은 지금도 우리를 지켜 봐 주고 있다.
 결혼준비위원회와 함께 찍은 사진은 지금도 우리를 지켜 봐 주고 있다.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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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작은 결혼식부터. 결혼식은 성대했다. 고급 호텔에서의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참여했던 이들로부터 끊임없는 칭찬을 들었다. 고향 교회의 목사님도 전화를 주셨다. 처음 전화를 받을 때는 당연히 누군지도 몰랐다. 다짜고짜 결혼식이 너무 좋았다고 잘 살거라는 덕담을 건네셨다. 무려 20년만의 통화였다. 부모님들도 하객들이 모두 칭찬 일색이었다고 싱글벙글 하셨다. 이 정도로 훌륭했나 싶어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결혼식이 조금 특별하긴 했다.

우리 부부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마을 공동체 그런 거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거기에 '신앙'이라는 단어가 추가된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에 모여 100여 명의 식구들이 한 마을에서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서 만났다. 공동체에서 오빠 동생으로 지내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까지 이른 거다.

결혼의 모든 과정은 공동체와 함께 했다. 결혼 날짜부터 결혼식장, 예식 순서, 뒷풀이, 신혼집 청소, 신혼 여행지 결정 등등 모든 과정을 공동체와 함께 상의하며 결정하고 실행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여기에 다 관여하기는 어려우니 다섯 명이 모여 결혼준비위원회(줄여서 결준위)를 꾸리고 이들이 전적으로 '우리의 결혼'에 참여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당사자인 부부가 내리지만, 모든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가장 좋은 결정이 무엇일지를 상의했다.
  
물론 결준위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결준위가 예식과 뒷풀이 등을 기획하고 100명이 넘는 공동체의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맡았다. 예식 사진부터 신부 들러리, 사회, 뒷풀이 공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음을 모은 100여 명이 손발로 움직였다. 그러니 창대하고 성대할 수밖에.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했던 결혼식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했던 결혼식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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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더 좋아 하신다

결혼의 과정을 다 쓰자면 책 한 권도 쓰겠지만 지금 이야기의 핵심이 그건 아니라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자. 지금 하고픈 이야기는 이렇게 공동체와 함께 결혼을 했는데, 놀랍게도 우리 부부 그리고 두 사람의 가족 관계가 더 끈끈해지더라는 거다. 흔히들 공동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동체는 전체만을 중시하느라 개인의 삶을 다 말살한다는 거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우리 결혼에서 두 사람만의 결정은 거의 없었다. 결준위를 비롯한 공동체 식구들과 상의해서 결정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부모님 의견이 반영된 건 거의 없었다. 아니. 부모님의 의견이 없었다. 우리에게 모든 걸 맡겨 달라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그렇게 진행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결혼식을 좋아하셨던 건 물론이고 이를 통해 우리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되셨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결혼 이후 우리는 부모님들과 시간을 가질 기회가 더 많아졌다. 난 스무살에 서울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그 이후 부모님과 한 번도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아들이 무심해서 그렇게 됐다. 그런데 싹싹한 며느리의 등장은 많은 걸 바꿨다. 아내의 현명한 조언으로 작년에는 처음으로 함께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그게 너무 좋으셨는지 올해 설에는 1박으로라도 여행을 가자고 여수에 펜션을 예약했단다.

솔직히 나도 공동체로 살면서 결혼을 하면 부모님과 관계가 더 소원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오히려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부모님과 관계만 그러하겠는가.
 
 부모님, 여동생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결혼 후 더욱 가까워진 가족들.
 부모님, 여동생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결혼 후 더욱 가까워진 가족들.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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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가 식구들과 함께. 무뚝뚝한 사위이자 형부를 기꺼이 사랑해주는 가족들.
 처가 식구들과 함께. 무뚝뚝한 사위이자 형부를 기꺼이 사랑해주는 가족들.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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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뻔 했던 우리를 끝까지 붙잡아 줬던 이들이 공동체 식구들이다. 이들은 결혼 이후에도 우리를 계속 응원하고 격려한다. 때로는 두 사람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배려도 해 준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에 삶을 내던졌음에도 개인적 관계가 깊어지는 놀라운 역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난 결혼 전 공동체의 미혼 남성들과 함께 살았다. 이걸 공동체방 생활이라 한다. 난 공동체방 장수생이었다. 같이 살던 형님, 친구들은 다 결혼했고 나만 남았다. 어미새를 바라보는 아기 새들과도 같은 거무튀튀한 남동생들과 함께. 한동안 큰형으로 남동생 3~4명과 같이 살았다.

20살에 자취를 시작했고 꼭 친구 1~2명과 같이 살았으니 공동생활에는 이골이 날 법도 하다. 그러나 공동체에 와서 맞닥뜨린 나의 현실은 참담했다. 내가 부지런하지도 않고 타인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건 더더욱 못한다는 사실. 더 중요한 건 머리로 알아도 몸의 습관을 바꿔내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 모든 면에서 처절히 부서지며 배웠다.

나를 거쳐 간 남자들만 30명은 족히 되는 것 같다. 그들과 총각 시절을 보냈다. 몸과 마음이 다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그 과정은 나에게 훈련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배우고 깨져야 누군가를 진정으로 만나고 사랑하는 게 가능하구나 싶다.

남자 한 트럭 만나봤자 이성이 아니지 않냐고? 연애 경험 많은 게 장땡이라고? 누군가를 깊이 만날 때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각보다 미미하다. 타인을 배려하고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기본 자세만 있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통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거기에서 나의 고집을 버리는 건 기본이고.

동지가 되어 간다

부부의 대화 중 상당수는 공동체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들의 흉을 보지는 않는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그런 이야기는 절대 금지다. 그렇더라도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생각을 놓고 상의하며 그 사람을 어떻게 도울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게 뒷담화와 상의의 절묘한 줄타기다.

나름 철칙이 있다. 밖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다른 이에게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있었거나 혹은 그런 판단이 든다면. 아내에게조차 절대 말하지 않는다. 뒤늦게 소식을 들으면 아내가 푸념을 많이 한다. 오빠가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 부부 사이에 숨길 이야기가 어디 있냐는 거다.

그렇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서 아내는 이렇게 고백했다.

"서운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오빠가 믿음직 해."

이렇게 관계에서의 철칙을 지키며 누군가를 돕기 위한 상의를 하고 살았다. 당연히. 둘만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우리의 결론을 다른 사람들과도 상의한다. 그리고 다양한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진다. 1년을 돌아보니 신혼집은 그 만남의 장소로 쓰였다.

남동생들이 와서 진로 고민도 털어 놓고 연애 상담도 해 주고. 그러다가 잘 풀리면 우리 연애하기로 했다며 인사하는 커플도 있고. 형님들과 삶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언니들과 차 한 잔과 함께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공동체에서 함께 일구고 있는 대안학교(난 그 학교 교사다)의 선생님,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부부의 정신적인 관계뿐 아니라 물리적 거처에도 함께하는 이들로 인해 북적북적했다. 이렇게 1년을 지내니, 요즘은 이런 고백이 절로 나온다. 이게 부부싸움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우린 이제 동지로 살아가는 것 같아."
    
신발 이야기

결혼 1주년을 맞이해서 뭘 할까 한 달 넘게 고민했다. 고민한 시간에 비해 결과물이 없어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걱정에 걱정이다.(눈치 빠른 분은 아셨겠다. 이 글이 그 고민의 일환이라는 거) 그런데 선물은 해결됐다. 마침 아내가 운동화가 필요했는데 그럼 내 것도 하나 사서 커플 운동화로 신고 다니기로 했다.

매장 가서 직접 신어 봤는데 마음에 드는 운동화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인터넷에서 주문하기로 했다. 아내가 주문을 했는데 막상 도착한 운동화가 소위 짝퉁이었다. 어째 좀 싸더라니. 택배를 먼저 받아서 그 사실을 확인한 아내는 내가 집에 올 때까지 전전긍긍했단다. 오빠가 또 대충 알아보고 샀다고 뭐라 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손수 커튼을 만드는 아내의 모습
 손수 커튼을 만드는 아내의 모습
ⓒ 조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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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예쁘고 장점이 너무 많지만 손재주도 참 좋다. 커튼도 직접 재봉질해서 달고 신발장도 부품만 사서 본인이 조립했다. 예쁘게 집을 꾸미는 것도 좋아해서 아기자기한 소품도 직접 만든다. 수업 준비한다고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을 위해 수제 쿠키, 핫케이크, 각종 과일 주스 등의 간식도 손수 만들어 준다. 써 놓고 보니 손재주가 좋다기보다 남편에게 헌신적인 아내로군.

다만 핸드폰이나 지갑, 가방 등을 아무데나 놓고 다니거나 일을 약간 헐렁하게 하는, 아주 작고 소소하고 미미하고 하찮은 단점이라 볼 수도 없고 말 할 가치조차 없는 그런 뭔가가 있긴 하다. 그래서 내가 가끔 자기 물건 잘 챙기고 뭘 해도 꼼꼼하게 생각하며 하라는 목숨 건 조언을 감히 아뢸 때가 있다. 그 조언을 기억하고 아내는 남편 눈치를 본 거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 조언 한마디에도 아내는 이렇게 애를 쓰는데. 난 아내를 위해 뭘 바꾸고 있나 싶었다. 뭐가 있나. 흠. 축구 보는 거 잠깐 눈치 봤었다. 결혼 초반엔 못 봤는데. 요즘 아시안컵은 기회 되면 눈치 안 보고 그냥 본다. 아이들에게 축구 가르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화려한 핑계를 대며.

이제 진짜 이 글을 쓴 이유를 말하려 한다.

결혼하고 1년을 살았다. 그동안 아내는 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했다. 연애할 때에 비해 싸움의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진짜 이유다. 아내는 이렇게 자기를 꺾으며 살고 있는데, 난 얼마나 반성하며 살았나 생각하니 좀. 많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이틀 전에 아내가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는 자장라면을 내가 굳이 먹겠다고 고집 부리다가 잠깐 싸웠던 일도 생각나고. 뭐. 그렇다.

지난 1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던 건, 순전히 아내와 공동체 식구들의 헌신과 응원 덕분이었다. 흠. 논문 수준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큰소리 쳤는데 이건 너무 당연한 결론이긴 하지만 원래 삶은 평범한 일상 속에 답이 있는 거니까. 어쨌든 그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짧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아내야. 미안하고 고맙다. 1년 같이 살아줘서. 너무 행복하게 지내줘서. 너무 고마워. 당신은 내 인생의 로또야. 인생에서 로또 한 번 맞았는데. 아이가 생기면 두 번째 로또 맞는 거다 싶네. 난 이미 한 번 맞은 로또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긴 해.어쨌든 두 번째 로또는 함께 기도하고 기다리자. 우리 삶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결혼 생활을 누려줬던 공동체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헤어지기 직전 붙잡아 주셨고 성대한 결혼식을 함께 해 주셨으며 1년 동안 저희 결혼 생활을 지켜 주셨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1년을 보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고작 결혼 생활 1년 하고 인생 다 아는 것처럼 글까지 써가며 으스대냐 하실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좀 민망하기도 하다. 다만. 감사 인사도 전하고 싶고. 뭐. 1주년에 뭐라도 해야겠기도 하고. 흠. 그렇다.

어쨌든 저희 부부의 1년을 지켜주셨던 모두에게 고개숙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태그:#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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