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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동대문구 전농동에는 배봉산이 있다. 그곳에는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보행약자도 편안하게 숲길을 산책할 수 있도록 목재바닥으로 무장애 숲길을 조성해 놓았다. 무릎이 아픈 나는 운동 삼아 천천히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매일 그곳에 간다.

8월 29일이었다. 노인 한 분이 엎드린 채로 산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위험해 보였다. 걱정스런 마음에 가까이 가보았다. 순간 나는 놀랐다.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강력한 태풍이라던 솔릭이 예상과는 달리 조용히 지나가고 8월 26일부터 전국적으로 장마 비 같은 비가 온 뒤였다.

"어르신 땅이 비에 젖어서 미끄러워요. 그러다 다치세요. 내려오세요" 하니 상관 말고 가라며 어린 나뭇가지를 잡고 의지하며 도토리를 계속 주웠다. "어르신, 여기에 도토리가 필요한 동물도 살고 있고, 어린나무까지 훼손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 내려오세요"를 반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알아서 한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도토리 줍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는 1인 배봉산 지킴이가 되어 도토리를 주워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아이고, 애국자 왔네"란 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러시면 "산림보호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다. 마트 가면 도토리묵 400g에 천원이면 산다"란 말까지 했다. 신고하든 말든 맘대로 하란다. 답답했다.

9월 4일 동대문구청 녹지과에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나와서 관리하기 힘들면 내가 볼 때만이라도 말하겠다. 산림보호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라도 달아달라고 민원을 냈다. 9월 7일 산 곳곳에 '우리 숲과 산을 아끼는 임(林)자, 임(林)자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되오!!' 라는 플래카드가 달렸다.

산에서 불사용 금지, 쓰레기 가져오기, 도토리, 산나물의 채취나 주워가는 것은 산림보호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나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지만 인식의 변화가 올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킴이 활동을 계속했다.

9월 14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도토리를 그것도 가까운 곳에 플래카드가 달린 곳에서 줍는 노인에게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몇몇 분들 중 "언니 좋은 일하네, 언니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라며 지나가는 분들이 계셨다. "한 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가 올 때까지 미약하지만 나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라고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비에 젖은 땅이 미끄러워 어린 나뭇가지를 잡고 도토리를 배낭 한가득 채워가던 할머니는 도토리묵을 밥상에 내놓으면서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이거 화학첨가제 하나도 안 들어간 묵이다. 내가 이 도토리 줍는데 허리 아파 고생했다. 그러니 많이 먹어라"하면서 그들만의 이기적인 행복한 밥상을 만들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한 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가 올 때까지 미약하지만 나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무릎이 아파 쉬고 있지만 빨리 좋아지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1인 배봉산 지킴이로 출근을 한다.

태그:##임(林)자 , ##산림보호, ##1인 배봉산 지킴이, ##인식의 변화가 올 때 까지, #함께, 같이,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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