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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애플(Apple)이 드디어 신제품을 내놨다. 지난 9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신사옥의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애플은 신형 아이폰 XS와 XS 맥스(Max), XR 3종과 애플워치 4시리즈의 존재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512GB의 저장 용량, 역대 최대 화면 크기, 고기능 프로세서 칩 등 전반적인 기술적 진화를 달성했지만 '기존에 볼 수 없던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 혁신적인 면이 있기는 하다. 신제품엔 '역대 최고 출시가'가 책정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아이폰"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박한 평가가 나왔다. 미국 유력 IT매체 <더버지>는 "전작과 비교해 골드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거의 다를 게 없다"고 표현했다.

결벽증적 공간이던 애플 스토어의 변신
 
 애플이 공개한 신제품, 아이폰 XS와 아이폰 XS 맥스
 애플이 공개한 신제품, 아이폰 XS와 아이폰 XS 맥스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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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쇠락한 기업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CEO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죽음을 기점으로 팀 쿡(Tim Cook)이 그 공백을 메워가고 있다. 이에 따라 애플이란 기업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부분도 있지만, '혁신'으로 대표되던 기업 이미지가 '세계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으로 퇴색됐다는 평도 나온다.

잡스가 제품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독하게 체크하던 '절대군주' 시절과 비교할 때, 지금의 아이폰은 '완벽주의'에서 해방된 여파로 방향타를 상실한 느낌마저 준다. 애플의 혁신성과 치밀한 디자인을 그리워하는 마니아 중 실망한 사람들은 자발적 안티로 돌변해 신제품 공개 행사마다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잡스의 또 다른 유산인 애플 스토어는 제품에 비해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세워지는 애플 스토어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공간에서 구현하는 구심점 역할을 맡는, 오프라인 전략의 핵심 기지다. 애플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면서 애플 스토어 역시 그 노선이 변했다. 가뜩이나 꼼꼼하고 불같은 열정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니아들이 회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스토어에 대해선 사실상 '무플'이라니. 이 부분은 아예 포기해버린 것일까?

아마 공간과 건축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인지라 사람들의 안줏거리로 쉽게 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까닭이 그것뿐인가? '잡스 이후 망조를 탄다'는 평까지 듣는 제품과 달리, 애플 스토어는 전문가들의 연이은 호평을 받고 있다. 이 놀라운 현상의 저변에는 본사 인하우스 디자인팀과 유통팀, 외부의 건축 사무소가 힘을 합쳐 새롭게 디자인을 혁신하는 노력이 존재한다.

잡스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애플 스토어는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의 투명한 유리 큐브 혹은 원기둥 형태였다.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그의 완벽주의와 참견이 그대로 반영된, 잡스 뇌에 떠다니는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재현물이었다. 하지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상황이 달라졌다. 결정적인 기점을 따지자면 아마 2014년이 되리라 생각한다.
 
 Apple Fifth Avenue
 Apple Fifth Avenue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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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 Pudong
 Apple Pudong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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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 세계 애플 스토어를 실제 건축물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던 건축사무소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뉴욕 5번가의 역사적인 유리 큐브와 상하이 푸동의 유리 실린더를 만든 '보린 크윈스키 잭슨(Bohlin Cywinsky Jackson)' 대신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도넛 모양의 신사옥인 '애플 파크(Apple Park)'을 만든 바로 그곳이다.

영국의 기사 작위를 수훈한 거장,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이끄는 이 건축사무소는 하이 테크놀로지를 적절히 활용해 미래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의 건축물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곳이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영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남작
 프리츠커상을 받은 영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 남작
ⓒ Foster +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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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부적으로는 공석이던 유통 부문 수석 부사장에 안젤라 아렌트(Angela Ahrendts)가 깜짝 발탁되며 이목을 끌었다. 영국의 유서 깊은 럭셔리 패션 하우스인 버버리의 CEO를 맡아 디지털 경영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그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자유롭게 오가는 파격적인 행보로 쇠락하던 버버리의 매출을 급상승시킨 바 있다. 안젤라 아렌트는 현재 시가 총액 1조 달러에 진입한 전무후무한 초대형 기업, 애플에서 여성으로서는 가장 높은 위치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버버리의 CEO 자리를 박차고 애플로 온 안젤라 아렌트
 버버리의 CEO 자리를 박차고 애플로 온 안젤라 아렌트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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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맡은 역할은 애플 스토어와 엮인 오프라인 경험 디자인을 진화시키는 일이다. 그 결실은 2016년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매장 리뉴얼이 촉발한 애플 스토어 2.0의 등장, 작년 5월 론칭한 크리에이티브 교육 프로그램인 '투데이 앳 애플(Today At Apple)',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타운스퀘어(Town Square)'라는 새로운 스토어 개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애플의 디자인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 애플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가 이끄는 인하우스 디자인팀은 살아생전 애플 스토어의 공간 디자인 특허까지 등록하며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오롯이 고집했던 잡스와는 사뭇 다르게 유연한 협력 체제를 허용하며 애플 스토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애플의 디자인 혁신에서 빠질 수 없는 조너선 아이브
 애플의 디자인 혁신에서 빠질 수 없는 조너선 아이브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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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주력 제품이 명확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라면 유독 애플 스토어만큼은 자신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 안젤라 아렌트, 조너선 아이브란 세 존재가 서로 힘을 합쳐 힘차게 나아가는 장면은 당당한 삼두마차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런 애플 스토어 디자인의 진화 양상은 작년과 올해 유독 두드러진다. 아시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the greenest city)라는 싱가포르에 처음 진출한 애플 스토어는 입구에 성년의 나무를 심고, 매장 안에는 나무가 뿌리내린 화분을 데려왔다(애플 스토어 2.0의 특징이기도 하다). 밀라노에 오픈한 애플 스토어는 전통적인 이탈리안 광장인 피아짜를 마련하고 유리 벽으로 수직 폭포를 배치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대나무, 석재, 종이... 잡스의 '단순함'을 넘어선 건물
 
 Apple Orchard Road
 Apple Orchard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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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 Piazza Liberty
 Apple Piazza Liberty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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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 개장한 애플 스토어는 투명한 유리 벽 혹은 회색 톤 금속으로 마감하던 매장 파사드에 석재와 유리를 결합해 불투명한 느낌을 부여했다.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던 잡스가 무덤에서 다시 기어올라와서 이렇게 외칠 느낌이다. "애매한 건 죄악이야!!" 이에 비하면 1층 천장을 네모지게 뚫어 중정을 만든 후 2층 천장에 닿을락 말락 높이의 긴 대나무를 심은 건 그리 파격도 아닐 테다. 아, 근데 이것도 놀랄 일이긴 하지.
 
 Apple Cotai Central
 Apple Cotai 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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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 Cotai Central
 Apple Cotai 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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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인 지난 8월 24일 정식 오픈한 일본의 문화 도시, 교토의 애플 스토어는 이런 디자인 진화가 극에 달한 느낌이다. 교토의 중심가이자 수많은 전통 건물로 둘러싸인 신조도리에 자리 잡은 애플 스토어는 마카오 매장처럼 불투명한 파사드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등에서 영감을 받아 특유의 격자 비례를 외관에 적용했고 그 마감재로는 종이를 사용했다.
 
 Apple Kyoto
 Apple Kyoto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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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종교처럼 받들던 플랫한 벽면이 아니라 불룩이는 부피감이 연상되는 불투명한 종이 파사드라니. 그라데이션 효과가 여실히 보이는 정면의 모습을 애플 스토어의 상징과도 같은 뉴욕 5번가 매장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과연 일본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도, 교토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특수한 예에 속할까?
 
 애플 스토어 교토 개점을 축하하는 그래픽 디자인. 일본 전통미를 그대로 살렸다
 애플 스토어 교토 개점을 축하하는 그래픽 디자인. 일본 전통미를 그대로 살렸다
ⓒ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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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매장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염두에 둘 때, 이제 애플은 로컬의 특징과 맥락을 적극적으로 공간에 접목하는 방식이 애플 스토어의 새로운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란 사실을 조용히 천명하는 중이다.

날카로울 정도로 세련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뽐내던 잡스의 '디자인'은 이제 더 이상 도시에 늘어나지 않는다. 대신 장소와 도시를 이해하고 지역성과 연계한 보다 더 조화로운 '건축'이 생성되고 있다. 애플 스토어 2.0을 적용한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들은 진보된 경험 디자인을 통해 애플의 브랜드와 제품을 접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함께 한다.

인하우스 팀이 적절히 톤앤매너를 조절한 덕에 마치 파도의 리듬을 타듯 세계 곳곳에 자연스레 증식하는 애플 스토어의 모습을 지켜보자면 오랜만에 애플이란 이름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던 경험이 되살아난다.

애플이 잡스의 죽음 이후 그 독창성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 손 위의 제품만 골똘히 노려보지 말고 시야를 세계로 넓히길 바란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지구 어느 곳에서 애플 스토어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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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건축, 예술, 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harry.jun.writer@gmail.com www.huffingtonpost.kr/harry-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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