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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편집자말]
사회적으로 '정상연애' '정상가족'이 강조되지만, 실제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정상연애' '정상가족'이 강조되지만, 실제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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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린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는 한 유튜브 채널을 잠깐 보게 됐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같이 만난 친구는 "이거 없으면 엄마들은 밥도 못 먹어" 했다. 예전에는 뽀로로를 틀어 주면 조용해졌지만, 요즘은 그 채널을 틀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채널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글로벌 유아교육 브랜드'를 표방한다는 업체의 유튜브 채널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는 '상어'를 의인화해 '상어 가족'을 노래로 소개하는 것이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나조차도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가 흥겹고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엄마 상어는 '예쁘고', 아빠 상어는 '힘이 세고', 할머니 상어는 '자상하고', 할아버지 상어는 '멋있다'니. 그것을 보는 아이들은 성별에 따라 어떤 캐릭터에 이입을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 여기게 될지, 또 어떤 삶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 못박아 생각하게 될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뭐든 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흘끗 보게 된 영상에도 공주님과 왕자님, 그리고 마녀가 등장했다. 여느 동화와 같은 내용이었다. 공주는 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뾰족한 구두를 신었다. 물론 잘록한 허리를 가진 몸매다. 하얀 피부에 속눈썹이 한올 한올 바짝 올라간 눈이 커다랗고 입술은 빨갛다. 모든 공주는 한 명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생애 첫 연애를 한 후 결혼한다. 그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덫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에겐 언젠가 반드시 '정상 연애'를 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연애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좋은 것'으로 가르쳐진다. 어릴 때는 동화, 커서는 드라마, 영화, 소설, 예능, 사실상 모든 미디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연애하는 일을 매우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멋진 일로 그린다. 하지만 연애만 하고 각자 갈 길 가서는 안 된다. 다음 미션은 결혼이다. 제대로 된 커플이라면 반드시 결혼에 골인해야 한다.

십대 초반쯤 생각도 없이 따라 부르던 가요가 있다. 당대 가장 잘생긴 남자 아이돌 그룹 중 하나가 뽀얀 조명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정말 로맨틱하다고 여긴 적도 있다. 노래는 이런 가사다.

"향긋한 모닝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주는 상큼한 입맞춤, 아직 달콤한 꿈에 흠뻑 취해서 '조금만 더' 그러겠지, 하얀 앞치마 입고 내 아침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 나의 삐뚤어진 넥타이까지도 모두 다 너의 몫일 거야."

이런 결혼생활이 실제로 펼쳐지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하루 7-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인은 수면 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니 아침잠은 너무 소중하고 달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침대에서 아침잠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향긋한 모닝커피'를 끓여 놓고, 하얀 앞치마를 입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리고 알람시계 대신 '입맞춤'으로 잠을 깨워주고, 넥타이를 제대로 못 매면 그걸 고쳐주기까지 해야 한다고? 이것이 로맨틱한 결혼 생활의 대표적 이미지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게 끝이 아니다. 티브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줄곧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좋은 한때를 보여주며 임신과 출산을 종용한다. 무수한 콘텐츠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분명 힘들지만, 일생을 걸고 해 볼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더욱 문제적인 사실은, 이 '정상 가족'에서 해야 하는 역할은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성별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이다.

막내와 나는 나이 터울이 많이 져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아주 가까이서 보며 육아에 동참해야 했다. 신생아는 빨갛고 쪼글쪼글하고 못생겼다. 머리카락도 별로 없다. 이 무렵의 아이는 어딜 봐도 성별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홍색 아기용품을 써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누군가는 '여자'로 길러진다. 또, 이 아기에게는 상어가족의 예쁜 엄마 상어와 자상한 할머니 상어, 그리고 무수한 동화의 아리따운 공주들이 역할 모델로서 주어진다. 이들에게 이때부터 벌써 각본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현실은 동화도,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다. 어른이 되면 그것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에서 성공적이고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해내는, 그러니까 완벽한 '정상 가족'을 이루고 있는 부부는 매우 드물다.

통계청에 따르면, 많은 부부들은 결혼으로서 인생의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다. 70년대 초 1만1600건 가량의 이혼이 이루어진 이후로, 이혼율은 2003년 들어 최고점(16만6600건)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6년에는 최고점의 3분의 2 수준인 10만7300건의 이혼이 있었지만, 2004년에서 2016년의 이혼율은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같은 시기 결혼 건수는 2003년 30만2500건, 2016년 28만1600건으로 기록된다. 즉, 결혼에 도전한 커플 수의 절반이 넘는 부부가 매해 결혼 생활 유지를 포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이상하다. 모두가 결혼해야 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있다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

예쁜 엄마, 자상한 할머니, 공주 같은 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들.
 예쁜 엄마, 자상한 할머니, 공주 같은 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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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연애'에 실패했다

나 역시 '정상 연애'에서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해 보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남자친구에게 들었던 말들 중 몇 가지는 너무 의아하여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내 친구들은 소개팅 한 여자와 정치적 성향부터 모든 사상이 맞지 않아도 외모만 마음에 들면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이 말이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고 본다. 많은 남성들은 여성에게 인간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여자가 좋아?"라는 말에 "나는 눈이 높지 않아서 치마만 두르면 오케이"라는 대답이 흔히 돌아온다. 즉, 여성으로 읽히는 몇 가지 기호들의 조합에 대부분의 남성들은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뭔가 크게 잘못돼 있었다.

게다가 이 사회는 마치 남성들의 옆자리에 빈 슬롯이 있고, 거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면 여성을 부품처럼 '끼워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남자가 여자를 만나서 섹스하고 있는지, 섹스해 온 여자들 중 결혼할 만한 여자는 찾았는지를 모두가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형들이, 친구들이, 때로는 부모님까지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나와 내 동생, 내 애인을 주축으로 하는 생활 공동체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시적으로 주거지를 공유하는 젊은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셋이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내 애인이 결혼해서 독립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내 동생이 결혼할 애인이 생기면 동생 쪽이 따로 독립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추측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균형추가 되어 관계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일대일의 관계를 파고들며 열심히 노력했던 옛 연애들에서의 관계 양상보다,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균형을 맞춰 나가는 관계는 훨씬 건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우리 셋이 평생 지속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기로 결심했을 만큼 만족스럽다.

물론 우리는 이 사회에서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인 표준어를 정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부를 중심으로 묶여 있지도 않고, 셋 모두가 친족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같은 정의에서,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혼인으로 묶여 있지도 않고,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다.

그래도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가 가족이라 생각한다.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주기적으로 생활의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세탁과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나눠서 하고, 함께 맛있는 걸 만들어서 먹고, 마트에서 맛있는 맥주를 함께 찾아 보고, 음식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 나서서 설거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을 생애 주기를 함께 계획하고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정의내렸을 때, 우리는 지금 서로의 미래에 대해 꽤 진지한 조언자, 조력자가 되어 함께 살아나갈 각오와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좀처럼 가족으로 여겨 주지 않는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덫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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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힘이 세고 제도의 보호는 누구나 필요하다

남들이 우리를 진정한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 가족으로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결심과 노력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환상 같은 것도 없다.

인간의 말보다 힘이 센 것이 서면 계약이고, 법적 구속과 제도의 보호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결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이렇게 하면 홀로 외롭게 늙어가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한 '정상 가족'의 울타리로 들어간다. 물론 우리는 결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이 답이 아니란 것을 알아 버렸다. 그럼에도 제도는 중요하다. 우리를 좀처럼 '가족' 취급해 주지 않는 현실에, '뭐 그런가보다' 하고 내버려둘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결혼이 주는 혜택은 꽤 많다. 가령, 주거 공간에 대한 혜택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월세방이다. 다행히 우리가 가진 보증금 안에서 채광도 통풍도 좋은 적절한 평수의 집을 구했지만, 언제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지 알 수 없다. 국가가 제공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어서 주택청약통장을 대학생 때부터 개설해 두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3자녀 이상의 '정상 가족' 세대주거나, 신혼부부가 되지 않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고용, 주거, 의료, 보험, 금융, 복지의 영역에서 가족 구성원이 함께 혜택을 받으려면 지금으로서는 꼭 결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 가족의 경조사를 사유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가족'의 경조사는 예외다. 주변의 비혼자들을 보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인을 할 보호자가 없다는 푸념은 흔하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꼭 한 해 전의 일이다.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는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우리 식구들은 눈을 번뜩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지지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제도는 우리에게 너무 필요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소모임 '풀하우스'에서 진행한 '파트너등록법' 캠페인 역시도 같은 취지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였고, 서명 운동을 열심히 홍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를 위한 제도는 없다. 그보다 먼저 2014년 10월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지 못한 선례도 있다. 우리는 조금, 아니, 많이 실망했다.

영화 <가족의 탄생>은 피 한방울 안 섞인 이들이 어떻게 '가족'으로 묶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 <가족의 탄생>은 피 한방울 안 섞인 이들이 어떻게 '가족'으로 묶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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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등록법? 기혼자들이 더 잘 이해할 걸"

지금도 나와 내 동생의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좀더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틈날 때마다 결혼을 권유한다. 정작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최근 그녀는 오랫동안 힘들었던 결혼 생활로부터 자신의 삶을 분리하고 잘 독립해 볼 마음을 먹는 중이다.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의 생각이 터무니 없지는 않다. 경험적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 안의 삶이 제도 밖에서 분투하는 삶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투쟁가의 삶이 마냥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우리가 이대로 행복할 수 있다고, 결혼한 것만큼 제도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불효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최근에는 조금 더 이 제도의 좋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보려고 마음 먹어 보기도 했다. 결혼 생활을 이미 오래 한 '어른'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나눌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화는 "너 애인이랑 결혼은 언제 하려고 하니?"란 흔한 질문으로 시작됐지만, 이윽고 이 분은 진지하게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형태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얼추 매듭지을 무렵에는 꽤 진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가 살고자 하는 삶의 형태를 미혼보다는 기혼자들이 더 잘 이해를 할 거야. 그 사람들은 결혼생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거든."

이 말을 듣자 나는 처음 결혼을 하지 않겠다 마음 먹었던 그때보다 조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파트너등록법은 우리에게뿐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법이란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들이 좀더 안전하게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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