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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편집자말]
패션지 그라치아에 실린 김태훈의 칼럼.
 패션지 그라치아에 실린 김태훈의 칼럼.
ⓒ 그라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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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나는_페미니스트다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유명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패션지 그라치아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당시 한국의 한 남성 청소년이 트위터에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라는 말을 남기고 IS에 합류하겠다고 터키로 떠난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싫었으면 IS로 떠났겠느냐"며 '잘못된' 페미니즘이 남성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발한 여성들은 그동안 감히 꺼내면 안 되는 이름, 마치 '볼드모트' 같은 존재였던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 '#나는_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냈다. 온라인에서 '꼴페미', '페미나치'라고 부르며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려던 세력에 대한 저항의 시작이었다.

개그 트리오 옹달샘(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의 장동민. 그는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
▲ 옹달샘 장동민 "경솔한 태도, 사죄드립니다" 개그 트리오 옹달샘(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의 장동민. 그는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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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설치고_말하고_생각하고

'페미 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개그맨 장동민이 남긴 전설적 어록이다. 방송과 팟캐스트 등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던 장동민은 JTBC <마녀사냥>에서 한혜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걸 다 갖췄다."

그러자 사람들은 장동민이 멋진 페미니즘 슬로건을 만들어줬다며 그를 '페미 요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는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라고도 번역됐다.

온라인 도서판매 업체 알라딘은 발빠르게 이 문구로 키링을 제작해 사은품으로 증정했다. '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라는 단체는 이 문구를 새긴 가방을 제작해 텀블벅에서 2천만 원이 넘는 후원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이 슬로건은 책으로까지 등장했다. 정희진 등 여성학자들은 2017년 1월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라는 제목의 페미니즘 입문서를 출판했다.

여성혐오의 아이콘이던 장동민의 말이 페미니즘의 슬로건으로 재탄생한, 그야말로 '전복'이다.

지난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지난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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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살아남았다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지게 한, 강남역 여성혐오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며 여성을 특정해 살해한 범인에게 언론은 '목사를 꿈꾸던'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줬다. 여성들은 '피해자의 꿈은 어디로 갔냐'며 분노했고, 동시에 일상적으로 느껴온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였고, 피해자가 살해당했을 때 나는 강남역에 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화장실에 가지 않아서,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밤길의 위협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상 속에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공포와 불안의 경험들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이것이 사회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여성단체 '페미몬스터즈'의 이지원 활동가는 <여성신문>과 인터뷰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용기 내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여성혐오와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메갈리아4의 티셔츠 프로젝트의 후원액은 1억 3천만 원이 넘었다.
 메갈리아4의 티셔츠 프로젝트의 후원액은 1억 3천만 원이 넘었다.
ⓒ 텀블벅 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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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GIRLS_Do_Not_Need_A_PRINCE

1억 3천 4백만 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올라온 '한 장의 페미니즘'에 들어온 후원금 액수다. 페미니즘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페이스북 '메갈리아4' 페이지 운영자가 매번 '메갈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페이지를 삭제하는 페이스북 코리아와 소송을 하기 위해 티셔츠를 제작해 모금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를 맡았던 김자연 씨가 이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했다. 그러자 '여자 일베'와 다름없는 '메갈' 티셔츠를 입었다며 비난이 솟구쳤고, 논란이 거듭된 후 성우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그러자 반동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티셔츠를 샀다.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생업까지 방해하는 행위과 과연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트위터에는 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몇몇은 넥슨 본사 앞에 가서 김자연 성우의 해고를 철회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16년 10월] #ㅇㅇ내_성폭력

시작은 '오타쿠_내_성폭력'이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만화, 게임, 코스프레 등의 서브컬처 문화 안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발했다. 이 해시태그는 문단으로, 미술계로, 문화계로 번졌다. 문창과 진학을 위해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문단의 특수성 때문에, 학생들은 성폭력을 당해도 고발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김현 시인이 문예지에 남성 문인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게재했고, 여기에 용기를 얻은 피해자들이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달고 고발을 이어갔다.

이 해시태그 운동은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의 폭발적인 분노는 현실을 변화시켰다. 어느 예고의 강사였던 한 시인은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승리의 경험들은 여성들의 고발이 수동적인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청년허브 대담회에서 "#ㅇㅇ내_성폭력" 해시태그에 대해 "개별 여성으로서 개별 가해자를 적시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집단으로서 이 문제를 이야기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혐오와 차별 문화라는 것을 고발하는 집단 지식 아카이빙의 시작이다"

미투
 미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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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MeToo, 나도 말한다

해시태그 운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지현 검사가 8년 전 성추행을 고발한 이후 한국에서도 이어지는 '#MeToo'의 물결도 #ㅇㅇ내_성폭력 해시태그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고은, 이윤택 등 문화계 거장부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유명 연예인, 각 대학의 교수, 직장 상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의 유명 정치인 등.

온갖 분야에서 '나도 고발한다'는 외침이 터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미투'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만의 작은 세계 안에서는 권력관계 때문에 문제라고 부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성폭력이라고 고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걸그룹 멤버 손나은씨가 들고 있었던 휴대폰 케이스에 적힌 문구 'Girls can do anything'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왕자는 필요 없다'고 외치던 여성들은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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