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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면서 응급실을 몇 번 찾았다. 생명의 위협보다는 급한 처치를 위한 방문이었다. 열이 내리지 않는 아이 때문에, 장염으로 아픈 배를 낫기 위해, 그 시간에 문을 연 병원이 응급실뿐이어서 부득이한 방문이었다.

<만약은 없다> 책표지
 <만약은 없다>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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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상황은 나른할 때도 있었고, 교통사고 환자로 정신 없을 때도 있었다. 방문한 날의 상황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다. 내가 방문했던 어떤 날에도 사망한 환자는 없었다. 책 <만약은 없다>에서 나오는 급박한 상황은 다행스럽게 목격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에세이다. 응급실에 실려오는, 생명이 위중한 다양한 환자들을 살려내고, 또 살려내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의사의 제일 큰 의무는 환자를 살려내는 일이다. 빠르게 환자를 파악해서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고, 자살, 지병 등 심각한 상처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긴급하게 의사를 필요로 한다.

심하게 손상된 사람의 신체. 파이고, 찢어지고, 부러진 참혹한 상처는 마주보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은 눈을 돌린다. 분명 나와 같은 신체인데, 전혀 다른 형체의 것과 마주할 때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느낀다.

모두가 회피할 때 의사는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정면으로 보고 만지고 상처의 깊이를 파악해야 한다.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아픈 곳을 쑤시고 벌리고 소독약을 붓는다. 고도로 훈련된 의사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의사로서의 치료행위가 끝난 후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슬픔, 우울함, 가치관의 혼란으로 찾아왔다. 환자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의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가 있다.

환자에 따라서 살아있는 매 순간이 고통인 경우가 있다. 환자 자신과 가족들 모두 죽음을 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의사는 다시 살려내야 한다.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응급실 의사여서 다른 의사보다 고충과 애로사항이 더 많아 보였다.

의사의 역할과 사람의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인간적이었다. 의사로서, 사람으로서 느끼는 혼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하얀 가운을 입었을 때는 냉철하고 이성이 지배하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는 따뜻하고 타인의 고통을 아프게 느끼는 보통의 이웃이었다.

의사이기 때문에 하는 고민이 좋았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이었고,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꼈다.

책은 크게 '1부 죽음에 관하여, 2부 삶에 관하여'로 나뉘어 있다. 1부가 다소 우울한 이야기로 힘들었다면, 2부는 조금 가볍게 읽힌다. 신기한 에피소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될 듯한 사례가 나온다. 아픈 환자가 많은 곳에 웃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응급실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웃을 일이 생긴다.

책을 여전히 더디게 읽는데, 이 책은 금방 읽었다. 술술 읽을 내용은 아니지만 술술 읽힌다. 가독성이 뛰어나다. 젊고 유능한 의사에 따뜻한 마음도 가졌다. 저자에 대한 동영상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1:100 이란 퀴즈 프로에서 1등을 했다고 나온다.

똑똑하기까지 하다. 예능에도 강연프로에도 얼굴이 보인다. 말도 잘하고 웃음이 매력적인 미남형이었다. 좋은 걸 다 갖추었다. 거기에 글까지 맛깔 나게 잘 쓴다. 이건, 반칙이다.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문학동네(2016)


태그:#남궁인, #응급학과 의사, #만약은 없다, #죽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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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지만, 매번 바른생활의 삶.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게 뭔가는 아직도 찾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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