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위기청소년에게 밥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소년희망공장' 2016년 성탄절 행사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박영하 운영위원장.
 위기청소년에게 밥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소년희망공장' 2016년 성탄절 행사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박영하 운영위원장.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요? 돈인가요? 화려함인가요? 부귀영화인가요? 세상은 그곳을 중심으로 삼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심은 아픈 사람들입니다. 삶이 외롭고 힘든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아픈 것은 세상의 중심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2일) 늦은 밤, (사)관악사회복지 박영하(54) 운영위원장이 들려준 말입니다. 낙성대 부근 옥탑방에 살고 있는데도 그의 눈빛은 왜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가난한 학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처연하게 들리지 않은 까닭은 인간의 길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밤하늘의 트럼펫 소리가 생각난 것은 삶의 전쟁터인 도시에서 욕망을 잠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영하 위원장은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신반포중학교와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도덕․윤리 교사로 24년간 재직한 뒤 서울대 인성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자 박영하꿈교육연구소 대표로 서울대, 춘천교대, 성신여대, 전남대 등에서 강의했거나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력으로만 보면 옥탑방에 거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삶의 파도가 그를 덮친 것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해서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지인들을 여러 차례 도왔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수입의 10%를 이웃 돕기에 선뜻 내놓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수입과 정년이 보장된 학교를 그만두고 세상의 교사가 됐기 때문입니다. 옥탑방에 살면서도 돈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부모에게 죄송합니다.

꿈이 없는 나라, 꿈꾸지 않는 사회, 꿈이 없는 학생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참여연대 마라톤회원들과 함께. 박영하 운영위원장은 왼쪽 끝.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참여연대 마라톤회원들과 함께. 박영하 운영위원장은 왼쪽 끝.
ⓒ 박영하

관련사진보기


서울여상 제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꿈샘'입니다. 그는 판에 박힌 윤리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행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 '선행록'을 쓰게 했습니다. 선행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내면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칭찬했더니 학생들은 선한 일을 도모했습니다. 만일 그의 수업이 재미없었다면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싫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꿈을 빼앗긴 제자들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하다, 봄날은 꿈꿀 때/ 내 몸에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꿈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김소월의 시 '꿈' 중에서)를 들려주고,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파블루 네루다의 <질문의 책> 중에서)를 읽어주면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도록 했습니다.

서울여상 윤리교사로 재직 당시, 제자들과 함께.
 서울여상 윤리교사로 재직 당시, 제자들과 함께.
ⓒ 박영하

관련사진보기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 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중략)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아무 꿈 없질 않나?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혹 아무 꿈(커 가는 꿈)

(김종진 작사․작곡, 봄여름가을 노래)

꿈의 노래를 들려주고, 꿈 영화를 보여주고, 꿈에 관한 책을 읽게 했습니다. 꿈 목록을 쓰게 하고 꿈 명함을 만들어 자신에게 선물하게 했습니다. 꿈 그림을 그리게 하고, 꿈 편지를 쓰게 하고, 꿈 연극을 하게 했고, 꿈의 직장을 탐방하게 했고, 롤 모델을 인터뷰하게 하면서 꿈 발표대회를 열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간디학교 교가) 가르쳤습니다. 꿈샘은 EBS TV '최고의 교사'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인간다운 꿈과 삶을 가르쳐야 할 교육이 학생들을 일류대와 판검사라는 욕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승자독식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교육이 인간의 꿈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보여주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참으라고요? 그런 미래는 부도수표나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당장 행복해야합니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꿈꿀 틈도 주지 않으면서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관악사회복지는 첫 사랑 같은 곳

관악사회복지 서로배움터가 기획한 '사랑과 평화의 실천가 묵자'를 강의하고 있는 저자 박영하 운영위원장.
 관악사회복지 서로배움터가 기획한 '사랑과 평화의 실천가 묵자'를 강의하고 있는 저자 박영하 운영위원장.
ⓒ 박영하

관련사진보기


그는 1998년 관악사회복지의 독거노인 반찬배달 학생모집 전단지를 보고 학생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행방불명 된 아들을 둔 할머니는 그를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맹인 할아버지는 찾아갈 때마다 눈뜬 사람들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는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폐지를 팔아 모은 돈으로 음료수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열무김치로 양푼 비빔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홀로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소풍을 갔습니다. 휠체어에 태우고, 지팡이를 부축하고, 업고 모시고 가서 멋진 공연을 보여드렸습니다. 옥빛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소풍에 나섰던 할머니와 거동이 불편했던 어르신은 "선생님과 학생들 때문에 외로움을 달랬다"는 따뜻한 말을 남기고 먼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오늘(지난 9월1일)이 저의 54번째 생일입니다. 저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시지만 저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분들은 삶이 고달픈 어르신들입니다. 제가 나눔의 기쁨과 겸손의 가치를 알고 행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이끌어준 모임이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일구는 희망의 숲'인 (사)관악사회복지가 그곳입니다. 저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대신 관악사회복지를 응원해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생일 축하 대신 관악사회복지 후원을 부탁했습니다. 20년간 가난한 어르신들을 섬긴 그는 화장실도 없는 무허가 주택에서 춥거나 덥게 사는 독거 어르신들과 함께 보낸 세월이 소중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어르신들을 도운 것 같지만 실은 타락할 수도 있었던 자신을 인간의 길로 인도해주신 은인들이 어르신들이었다고 고마워했습니다. 낮은 곳에서 희망의 숲을 일구는 관악사회복지는 첫 사랑 같은 곳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관악사회복지는 첫 사랑 같은 곳입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인연을 맺은 뒤, 이렇게 오랫동안 삶을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다보니 가족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부모형제와 가족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가족과 형제와 보내는 시간보다 활동가와 어르신과 마을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저에게 관악사회복지는 사랑의 공동체이고 활동가들은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들입니다."

가난한 운영위원장인 그는 자신이 펴낸 <묵자>(풀빛) 6쇄 인세를 최근에 기부했습니다. 이 책의 이전 인세 절반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획하고 15명의 저자와 공동 출판한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인문학>(풀빛) 5쇄 인세 전액을 공동 저자들에게 동의를 구해 관악사회복지에 기부했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는 그는 가난해도 여유 있게 사는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노하우를 조만간에 배워야겠습니다.

어느 소년원생의 꿈

박영하 운영위원장.
 박영하 운영위원장.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소년원입니다. 그는 2014년 9월부터 소년원생들에게 꿈 교육을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꿈을 꾸는 게 괴로운 아이들에게 꿈 교육이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꿈을 박탈당한 아이들, 꿈은커녕 생존에 쫓기다 죄를 지은 아이들, 불우한 환경에 분노하고 증오하는 아이들에게 꿈이 가당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소년원 아이들의 꿈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 벌어서 한 맺힌 가난을 부수는 게 꿈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돈도 꿈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꿈 교육을 싫어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이 없어도 좋으니 꿈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꿈시와 꿈노래, 꿈책과 꿈영상, 꿈연극과 뮤지컬을 읽어주고 들려주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슬슬 말했습니다. 사실은 꿈이 있었다고, 꿈이 있었는데 과연 이루어질까? 의심스러워서 못 밝혔는데 선생님과 수업하면서 꿈을 이루고 싶어졌다고…."

그는 꿈 교육의 효력은 소년원생 뿐 아니라 어르신들에게서도 증명됐다고 말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꿈 교육을 하자 "내가 무슨 꿈이 있어, 내일 죽는 게 꿈이야"라고 하거나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는 게 꿈이야"라고 하거나 "안 아팠으면 좋겠어!"라고 했는데 꿈 교육이 끝날 때쯤 "받기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누며 사는 게 꿈이야"라고 하거나 "건강을 회복해서 쓸모 있는 일을 하다 죽고 싶어"라고 하셨답니다.

"고아인 한 소년원생이 한식조리사가 꿈이라고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만나면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탈북 학생은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통일이 되면 만날지도 모를 엄마에게 엄마가 해주셨던 국수 맛을 그대로 재현해서 국수를 말아드리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가슴 아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형수 부탁받고 독거노인 어머니 생일상 차려준 '천사샘'

박영하 운영위원장과 홍선 운영위원.
 박영하 운영위원장과 홍선 운영위원.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꿈샘은 하모니카를 잘 붑니다. '하모니카 꿈샘'이란 애칭은 그래서 붙었습니다. 연해주 고려인 마을에 봉사하러 가서는 고향의 봄, 아리랑, 황성옛터 등을 연주해 드리면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고 왔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하모니카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세 사람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3화 주인공인 관악사회복지 운영위원 홍선(46)씨입니다. 홍선씨는 사랑의 힘으로 폐결핵에 걸린 남편(남일)의 병을 낫게 했을 뿐 아니라 20년 넘게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변치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홍선씨가 관악구청장이 되면 좋겠다"면서 "가난한 사람을 섬기는 마음뿐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일을 해낸 능력과 진가를 발휘한다면 관악구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적정기술로 소외된 이웃계층을 돕는 대학 교수이자 스타트업 CAC(Cardboard Art College) 김광일 대표입니다. 김 대표는 반지하, 고시원 거주자 등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기청정기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과학기술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는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분당영덕여고에서 명예퇴직 후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난주씨입니다. 이씨는 교사 시절, 제자들과 함께 분당 야탑동의 임대아파트 독거노인들에게 반찬 배달 봉사를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에게 편지를 받았답니다. 이 선생이 반찬 배달 봉사하는 아파트에 어머니가 살고 계신데 자신은 사형수라 해드릴 수 없으니 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려달라는 편지를 받고 생일상을 차려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이씨를 천사샘이라고 부릅니다.

꿈샘이 꿈꾸는 세 가지 꿈

지난 8월 19일 관악사회복지 확대운영위원회 비전워크숍을 마친 뒤 단체사진. 박영하 운영위원장은 오른쪽 하단 끝, 플래카드를 붙잡고 있다.
 지난 8월 19일 관악사회복지 확대운영위원회 비전워크숍을 마친 뒤 단체사진. 박영하 운영위원장은 오른쪽 하단 끝, 플래카드를 붙잡고 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그는 한 해 70~100회 정도 강연하는 인기 강사입니다. 하지만 '인기 강사'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인기라는 말의 함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연료를 받지만 돈에 팔려 다니는 강사는 아닙니다. 그는 떠돌이 강사가 아니라 꿈꾸는 강사입니다. 꿈을 잃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 주목적인 그에게는 세 가지의 꿈이 있습니다.

첫째 꿈은 재능과 수입의 10%를 이웃과 나누는 운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꿈을 빼앗는 나라에서 꿈을 나누는 나라로 변하길 소망합니다. 둘째 꿈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꿈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언젠가 꿈 보따리를 들고 그 나라로 갈 계획입니다. 셋째 꿈은 전국 소년원과 교도소를 돌면서 '흙수저'로 살아가는 담장 안 사람들에게 '꿈수저'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꿈의 불평등입니다. 흙수저로 태어나 흙수저로 인생을 마쳐야 하는 재소자와 소년원생들에게 꿈수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구치소와 교도소, 소년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들도 다 꿈이 있습니다. 다만, 꿈을 죽이고 살 뿐입니다."

그는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제6회 대한민국청소년행복올림피아드를 준비 중입니다. 평소에 꿈을 죽이고 사는 아이들이 꿈을 자랑할 수 있도록 만든 꿈의 제전입니다.

꿈샘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사)행복한교육실천모임 샘들과 함께 행복올림피아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꿈의 나래를 활짝 펼치는 꿈의 잔치가 되길 빕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www.youtube.com/watch?v=lVwLVojosyE&feature=youtu.be

동영상 = 서울여상 재직 당시, 수업시간에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는 박영하 선생님.



태그:#관악사회복지, #박영하 , #꿈, #소년원생, #사형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