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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엉겅퀴... 그중에서도 고려엉겅퀴입니다. 우리에게는 밥에 넣어 먹는 '곤드레나물'로 더 익숙합니다.
 엉겅퀴... 그중에서도 고려엉겅퀴입니다. 우리에게는 밥에 넣어 먹는 '곤드레나물'로 더 익숙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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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손님들과 악수하는 장면을 봅니다. 문 대통령의 눈은 악수하는 상대방의 눈을 정확히 바라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욱 커다랗게 보입니다. 입은 활짝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과 악수하는 상대방은 기분이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대통령이 오로지 내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고, 그러니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 준다는 느낌이 들어 감동까지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세워 놓고 악수하는 높은 분들의 자세를 보면 꼭 아쉬운 점이 나타나곤 합니다. 어느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면 짧으나마 손을 잡고 있는 시간에는 눈 역시 상대방의 눈을 바라봐야 하는데, 손은 상대방의 손을 잡고 있지만 눈이 먼저 상대방의 눈을 떠나 다음 사람에게 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앞 사람 손을 잡고 시선은 옆 사람에게

악수를 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시선이 상대방 눈에 머물지 못하고 다음 사람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악수하는 상대방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이고, 또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읽어 내려는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쉽게 얘기해서 상대방과 교감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니 악수하는 상대방을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삼귀마을에서 아랫삼승령까지 8km 고갯길을 트럭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합니다.
 삼귀마을에서 아랫삼승령까지 8km 고갯길을 트럭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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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춤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

산악회 버스에 오르며 먼저 탑승하여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저의 인사에 인사로 답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그분들과 눈을 맞추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 봅니다.

불과 2~3초의 짧은 시간이지만, 한 분에게 눈을 맞춘다는 것은 "당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느끼고 있고, 당신을 존중한다"는 뜻이 물씬 묻어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조금 서툴고 어색한 면도 없지 않지만, 눈 맞추는 훈련을 앞으로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결심 20 / 인사할 때, 악수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도록 하자.

뜰치재라는 고개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힘든 산행에서는 간식을 수시로 먹어 줘야 합니다.
 뜰치재라는 고개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힘든 산행에서는 간식을 수시로 먹어 줘야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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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영양읍 삼귀마을에 도착한 뒤 버스에서 내려 1톤 트럭 화물칸에 여남은 명씩 올라탑니다. 산행을 시작하는 아랫삼승령까지는 8㎞, 걸어 올라가기에는 꽤 먼 거리라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 트럭을 타고 고갯마루까지 올라갑니다. 당연히 비용은 지불합니다(트럭 화물칸에 사람이 타는 것은 사실은 불법이라 합니다).

아랫삼승령에서 산행을 시작해 허물어져 가는 정자를 지나 학산봉에 오릅니다. 학산봉에서 내려오면 '쉰섬재'라는 고개를 만납니다. 고개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쉰섬재는 쉰+섬+재, 입니다. 50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쉰'에 곡식을 세는 단위 '섬'과 고개를 뜻하는 '재'가 붙었습니다. 고개 주위에 조농사를 쉰 섬 정도 지을 수 있는 밭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쉰 섬 조농사를 지었던 쉰섬재

고갯마루에 잠시 서서 어디쯤 그런 밭이 있었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고개 왼쪽 영덕군 쪽은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밭은커녕 나무도 바로 서 있기 힘들 만큼 가파릅니다. 고개 오른쪽 영양군 쪽은 경사가 완만합니다. 조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옥수수나 감자 같은 밭농사는 충분히 지을 수 있을 만한 땅입니다. 동해 방향인 영덕군 쪽 경사면은 절벽처럼 가파르고, 내륙 방향인 영양군 쪽 경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산행 내내 관찰하게 됩니다.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여서 숲에 묻혀 버린 고개, 쉰섬재입니다. 조농사를 쉰 섬 정도 지을 만한 땅이 있어서 쉰섬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여서 숲에 묻혀 버린 고개, 쉰섬재입니다. 조농사를 쉰 섬 정도 지을 만한 땅이 있어서 쉰섬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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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섬재를 지나 옷재로 보이는 고갯마루에 도착합니다. 옷재라는 고개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옷재는 내륙인 영양 쪽에서 보면 완만하지만 바다 쪽인 영덕 쪽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높은 고개입니다. 옷재는 옛 지도에 보면 까마귀 오(烏) 자에 고개 현(峴) 자를 써서 '오현(烏峴)'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고개, 옷재

왜 까마귀고개가 됐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옛날에 영양현과 영해부를 이어 주던 이 고개는 영양 쪽에서 오를 때는 경사가 완만하지만 영해 쪽에서 오를 때는 아득하게 높은 고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현(烏峴)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고개 남쪽에 사람들이 울며 넘었다는 울치가 있지만, 이 오현이 지름길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넘나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지름길은 짧은 대신 험할 수밖에 없고, 고개를 넘는 이들에게는 아득하고 까마득하게 보여 넘기 전부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을 것입니다.

낙엽 속에서 자라는 애기낙엽버섯입니다. 낙엽을 썩혀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답니다.
 낙엽 속에서 자라는 애기낙엽버섯입니다. 낙엽을 썩혀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답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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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烏峴)에서 고개를 뜻하는 현(峴)은 순우리말로는 '재'이니 오현은 '오재'인데 이게 발음하다 보니 '옷재'가 됐습니다. 선인들이 수없이 넘나들면서 오솔길 모습이었을 옷재는 이름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길 자체는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묻혀 옛 모습을 찾기 힘듭니다. 봇짐 들쳐 메거나 지게를 지고 또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고갯길을 오르내리던 선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만 그려 볼 뿐입니다.

♤ 낙동정맥 20구간 종주
날짜 / 2017년 8월 26일 (토)
위치 / 경상북도 영양군, 영덕군
날씨 / 구름 한 조각 없이 화창했지만,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가 무척 더웠습니다.
산행 거리 / 16.7㎞
소요 시간 / 6시간 남짓
산행 코스(남진) / 아랫삼승령 → 학산봉 → 쉰섬재 → 옷재 → 독경산 → 창수령 → 울치 → 양구리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오늘 산행도 무척 힘이 듭니다. 산행을 한 주 건너뛰었고, 근래에 걷기 운동도 조금 소홀히 한 데다가 어제는 회사 직원들과 술자리도 가진 터라 오늘 산행이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힘이 듭니다. 날이 더워 연신 목이 말라 오지만 생수 네 병을 아껴 마시며 산을 오르내립니다.

차가운 물을 들이마시는 짧은 순간, 우리는 열반에 듭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쾌락의 극치입니다.
 차가운 물을 들이마시는 짧은 순간, 우리는 열반에 듭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쾌락의 극치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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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으로 독경산이 보입니다. 볼록 솟아난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뚝뚝 떨어지는 땀을 훔쳐 가며 한 발짝씩 봉우리를 향해 올라갑니다. 먼 옛날 이 산 근처에 있는 절에서 스님들이 경을 읽을 때 그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하여 독경산이라 불렀답니다. 오늘은 저벅저벅 산길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와 "하아~ 하아~" 하는 제 신음소리만 조용한 산속에 울려 퍼집니다.

저 앞으로 독경산이 보입니다. 경사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저 산...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저 앞으로 독경산이 보입니다. 경사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저 산...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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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간데없고 신음소리만 산에 가득

그나마 오늘은 예쁜 꽃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근래에 비가 좀 내렸기에 여기저기 꽃이 많이 피어났습니다. 요즘 눈에 자주 띄는 무리는 참취꽃과 며느리밥풀꽃입니다. 참취는 우리가 먹는 취나물입니다. 봄에 새로 돋아날 때 꺾어다가 데쳐서 들기름에 버무려 먹으면 고소한 향이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바로 그 나물입니다. 맛과 향이 뛰어나 '참' 자를 붙여 참취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참취꽃이 흔합니다. 봄에 꺾어서 나물로 먹는 취나물입니다.
 오늘은 참취꽃이 흔합니다. 봄에 꺾어서 나물로 먹는 취나물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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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흔한 꽃이 며느리밥풀꽃입니다. 분홍빛 꽃잎 속에 하얀 꽃술 두 개가 혀를 내밀 듯 쏙 내밀고 있습니다. 며느리밥풀꽃에는 머언 옛날 배고팠던 시절의 애환이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마음씨 착한 며느리와 성품이 고약한 시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뜸이 들고 나서 밥이 잘 됐는지 확인해 보려고 밥알 두 알을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한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쥐 잡듯이 다그쳤습니다. 버릇없이 밥을 먼저 먹었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꽃잎 사이로 밥풀 두 개를 내미는 며느리밥풀꽃입니다. 착한 며느리와 악한 시어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꽃잎 사이로 밥풀 두 개를 내미는 며느리밥풀꽃입니다. 착한 며느리와 악한 시어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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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밥풀꽃에 숨은 고부간 이야기

시어머니 구박에 시달리던 며느리는 일찍 생을 마감했습니다. 며느리가 묻힌 무덤 옆에는 분홍색 예쁜 꽃이 피어났습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꽃잎 속에 밥풀 두 알이 들어 있습니다. 며느리가 밥이 잘 됐는지 확인하려고 입에 넣었던 밥풀 두 개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며느리의 넋을 기리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이야기나 전설 속에는 우리가 살던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며느리밥풀꽃 이야기 속에도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모습, 배를 곯아야 했던 지독한 가난의 모습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가다바리버섯을 한 움큼 땄습니다. 돼지고기 볶을 때 함께 넣어서 볶으면 맛있다고 합니다.
 가다바리버섯을 한 움큼 땄습니다. 돼지고기 볶을 때 함께 넣어서 볶으면 맛있다고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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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던 일행 한 분이 잠시 멈추더니 "와~" 하면서 나무에서 버섯을 떼어 냅니다. 노란 버섯인데 양이 꽤 많습니다. 무슨 버섯이냐고 물으니 '가다바리버섯'이라고 합니다. '갖고 가다가 버리는 맛없는' 버섯이 아닌가 하고 잠시 짓궂은 생각을 해 보지만, 참나무에서 자라는 놈이고 돼지고기 볶을 때 함께 넣어서 볶으면 아주 맛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돌아옵니다. 가다바리버섯을 한 움큼 따서 배낭에 넣어 걸어가는 그분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입니다.

27개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낙동정맥 370km 종주 산행이 어느덧 종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스무 번째 산행... 12월 초에는 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27개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낙동정맥 370km 종주 산행이 어느덧 종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스무 번째 산행... 12월 초에는 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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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낙동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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