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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적당함에 대한 오해부터 풀자. 사전을 들췄다. '적당하다'의 뜻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형용사로서 '정도에 알맞다'와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동사로서 '꼭 들어맞다'는 의미가 담겼다. 적당하다와 비슷한 말도 보자면, 걸맞다, 좋다, 합당하다, 적합하다, 적절하다, 지당하다, 타당하다, 온당하다, 무던하다 등 긍정적인 말이 자매 행성처럼 떠돈다. 그러나 일상에서 흔히 쓰는 '적당(하다)'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적당함'을 오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화공방서울'이 지난 5월부터 연 '적당포럼'은 적당함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 적당하다. 대안적 실험을 하는 단체와 공동 이슈를 꺼내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매달 열리는 이 포럼은 5월과 6월, 서울혁신파크 입주단체인 '적정기업 ep coop'(이하 이피쿱),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이하 대안연구소)와 함께 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적당성

적당포럼 현장 모습
 적당포럼 현장 모습
ⓒ 비전화공방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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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의 봄밤. 서울혁신파크 참여동(21동)의 중정에 스무 명 남짓이 모였다. 이 자리에 이야기 손님으로 참석한 나는 모인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볶았다. 중정에 커피 향이 가득 찼다. 참여동에 있는 사람들도 궁금한 듯 기웃기웃했다. 비전화공방의 수동 로스팅 기구로 볶은 커피는 강, 중, 약 세 가지의 강도로 볶았다.

이피쿱은 커피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모인 협동조합이다. '적정기업'은 이피쿱을 소개하는 수식어다. 이 단어를 만든 나는 그 속에 적정한 노동, 적정한 이윤, 적정한 보수, 적정한 건강, 적정한 의사소통, 적정한 고민, 적정한 시행착오 등을 통해 최대 이윤이 아닌 일의 즐거움, 삶의 행복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그것은 질문이기도 했다. 교과서(경제학 혹은 경영학)는 기업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영학은 이윤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각종 방법(수단)을 말하지만 그 이윤이 '어떤' 이윤이며 '무엇이' 이윤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윤은 단순하게 자본의 증식이며 기업은 자본의 이윤만 추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향한 것일까. 우리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존립과 기업은 연결되지 않는 것일까.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되면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주어지는 것일까.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2015년 기준 2113시간)로 많다. OECD 회원국 평균(1766시간)은 물론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71시간)보다 902시간 길다. 과도한 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은 물론 다양한 불균형을 낳게 했다.

과잉이나 결핍이 아닌 '적당함' '적정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커피 한 잔에 담긴 적당함'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팁을 던졌다. 중요한 것은 적당함을 결정하는 주체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내가 어떤 커피 맛에 반응하고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커피를 얼마나 볶는지에 따라 신맛, 단맛, 쓴맛이 달리 표출된다. 자신에게 맞는 맛, 내 몸이 원하는 맛을 찾아가는 것이 적당함이 될 수 있다. 정도에 알맞고 나에게 들어맞는 것.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테이블을 나눠 각자 바라는 적당함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시간. 봄밤은 깊어졌고, 목련 나무 아래 켜진 불빛은 이야기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적당함은 '대충하자'와는 다른,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조화로운 상태라는 정의도 나왔다. 사회적으로 적당함의 품 혹은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적당하게 살기 위해선, 몸의 신호를 잘 듣고, 무엇을 포기하고 집중해야 하는지 잘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한 달 동안 적당하게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정했다. 한 팀은 하루 단식을 정했다. 단순히 주어진 것을 소비하지 않고 재료의 본질을 찾고 나에게 적당한 맛과 형태를 알아가는 기회로 단식을 선택한 것. 다른 팀은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당함을 넘어서는 순간이 무언가 결정하기 전 10분 이상 집중하는 시간을 갖자는 다짐을 했다. 나머지 한 팀은 '어, 그래' 운동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어, 그래"라는 말로 타인을 인정하는 것에서 적당함을 찾아보기로 한 것.

'열심히' 대신 '적당히'

적당포럼 현장 모습
 적당포럼 현장 모습
ⓒ 비전화공방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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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한다는 것일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부분 인민은, 금수저 은수저가 아니라면, 열심히 산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젠, 이 옛말이 틀린 시대다. 이 말은 '고생 끝에 병이 온다'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적당하게 하겠습니다"고 서로 말을 건네면 좋겠다. 적당은 대충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부터 내게 맞는, 우리에게 맞는 적당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6월의 적당포럼도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난달 30일, '도시와 시골, 그 사이 적당한 어딘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대안연구소와 함께 한 적당포럼. 삶의 적당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는 곳도 중요하다. 도시냐 시골이냐는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선택지다. 대안연구소는 높은 수준의 기술보다 지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적정기술을 알리고 다양한 교육과 워크숍, 실천을 하는 단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적당밴드가 음악으로 문을 열고 비전화공방에서 건축과 목공을 담당하는 단디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강화도, 남원 등지에서 이른바 '시골 생활'을 경험했다. 귀촌을 동경했던 그였지만 현실은 동경했던 모습과 달랐음을 토로했다.

"나는 시골에 내려갔지만 여전히 도시의 패러다임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만 시골에 있을 뿐이지 내 삶의 욕구는 굉장히 도시적이었다. 더우면 에어컨을 찾는 것처럼. 또 하나, 시골에서는 네트워크나 관계망이 충분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이 없으니 외로웠다. 그러다 서울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알게 됐고 다시 서울로 와서 같이 살게 됐고 6년째 살고 있다. 친구들과 '우리가 왜 시골로 가고자 했을까, 시골에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시의 삶, 시골의 삶,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양쪽을 오가며 살기로 했다."

도시와 시골,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적당포럼 현장모습
 적당포럼 현장모습
ⓒ 비전화공방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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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디는 도시의 삶을 부정하고 시골로 가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열어두고 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삶의 전제에 관계가 있음을 강조했다. 연결된 관계가 지역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진다면 도시와 시골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익숙한 삶을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강동하 대안연구소 연구원의 말도 그것을 증명했다. 수도권에 있는 대안학교 출신으로 경북 문경으로 귀촌한 부모를 따라갔으나 외로웠다. 그러나 다시 서울에 왔고 관악에서 또래들과 만나 커뮤니티를 일구는 재미를 만났다. 물론 도시에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기나영 대안연구소 연구원은 자립의 기술을 몸으로 습득하고 싶었다. 도시가 만든 시스템에서 자립하고 싶은 마음에 농사를 짓고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대안연구소를 택했다.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이었지만 쉬운 것은 아니었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삶의 전환은 고된 일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편한 걸 두고 납땜하랴, 페달을 돌리랴,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넉넉해진다. 이전에 다른 회사에서 사무실에 앉아서 했던 일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내 삶을 주관하고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느냐에 집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듣자니, 자연스레 생각했다.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 함께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의 삶)가 익숙하다. 원해서 태어나거나 살게 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스무 살 무렵까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삶은 도시가 아닌 것으로 생각했었던 이도 있었다. 도시와 시골이라는 이분법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도시와 시골의 삶이 마냥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 시골에서도 도시적 삶과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고, 도시에서도 시골이 가진 삶과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적당포럼 현장 모습
 적당포럼 현장 모습
ⓒ 비전화공방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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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삶의 전환이 필요하고 도래하고 있는 시기인 것은 아닐까. 도시와 시골을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도시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소비할 수 있다. 그래서 도시민들은 자립의 기술을 익히기보다 소비자로서 길들었다.

반면 시골은 도시보다 생활의 기술이나 자립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몸을 더 움직이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술이다. 그러니 도시에서도 몸을 움직여 자립의 기술을 익힐 수 있다면 시골의 삶을 도시에서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살고 싶은 삶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고, 나에게 적당한(맞는) 방식, 나에게 적당한(맞는) 속도를 찾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관계이며 공동체이다. 기 연구원의 말이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지금 적당포럼 같은 자리가 참 귀하다. 나는 지금, 책상 하나쯤은 쉽게 만들 수 있고 몸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것이 무척 재밌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좋다. 길을 가다 보면 이렇게 만나고 연결되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위로가 된다."

강신호 대안연구소 대표도 말을 거들었다.

"연구소를 만들기 전에 대기업에 다녔었다. 이때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편하기만 한 삶에서 전환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의식만 가져서는 안 된다. 내 역할을 찾고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꼭 기술자(엔지니어)가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태도, 노하우, 자세가 기술이 될 수도 있다. 갈등을 풀 수 있는 기술 등도 기술이다."

이날 적당포럼에 만난 '적당인'들도 한 달 동안 지키고 싶은 약속을 정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자고 다짐했다. 도시든, 시골이든 함께 사는 감각이 중요하니까. 공동체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에서 출발하면 되니까.

우리는 적당함을 이야기합니다

혁신파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중정에서 열린 적당포럼은 그렇게 좋았다. 그곳에서 또 다른 우주들과 만났다. 시와 음악이 있었고, 다양한 생의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바람과 사람이 있었다. 커피 한잔에 담긴 적당함, 도시와 시골 그 사이의 적당함이 중정에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있었다. 중정은 밤에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혼자여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적당하고 좋은 공간이자 성소.

날씨가 적당해서,
바람이 적당해서,
커피가 적당해서,
음악이 적당해서,
사람도 적당해서,
그렇게 적당하게 좋았다.

혼자 생각해봤다. 적당포럼의 카피는 이런 것이 어떨까.

"우리는 서울에서, 혁신파크에서 적당함을 이야기합니다."

덧붙이는 글 | 서울혁신파크 뉴스레터 <채널서울혁신파크> 2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서울혁신파크 블로그 http://s_innopark.blog.me/221059103069에서도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서울혁신파크, #적당포럼, #비전화공방, #이피쿱, #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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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혁신 플랫폼입니다.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곳으로 250여 혁신 그룹, 1300여 명의 혁신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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