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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이 죽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가 지난 11일자로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호소 시설은 변한 게 없고,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사회의 시선 역시 변한 게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주노동자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그간 가까이서 지켜봤던 피해자들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 기자 말

김훈은 그의 에세이 <바다의 기별>에서 '죽음은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다는 면에서 끝끝내 개별적이며,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고 봤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라는 면에서 죽음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정해진 일이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초연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훈의 말처럼 죽음이 과연 개별적일 수 있을까? 죽음의 개별성만을 강조한다면, 조국을 위해 혹은 무명의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것을 기릴 이유가 없다. 세월호 같은 참사를 사회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죽음의 개별성에 맞서 보편적 죽음을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러한 희생이 없기를 반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사인 경우에는 더더욱 개별적 죽음이라 해서 방관해서 안 된다. 그렇다고 매일을 슬픔 속에 잠겨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죽음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원인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그 가족과 이웃들을 위로하며 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재수 없었던 게 맞나요?

한국에 와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죽음은 보편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일상 중 하나다.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죽음이 있는가 하면, 같이 일하던 동료들마저 외면하는 죽음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의 죽음을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추모하는 경우는 드물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재수 없었던 것'이라고 치부될 뿐이다. 같은 죽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소름 돋도록 무서운 세상이다. 이래도 죽음을 개별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한편, 그런 죽음을 우발적으로 목격한 이들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스러졌다는 사실을 핑계로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는다. 사고사를 목격한 이주노동자들은 급하게 노동현장에 내몰리며 극심한 불안과 공포, 수면장애 등에 시달리며 흔히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다.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전남 나주의 한 복층유리 공장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고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품을 운송하려던 트럭 운전기사가 서두르다 생긴 일이었다. 공장 마당에 있던 복층유리 적재대 때문에 트럭 진입이 어렵다는 걸 안 운전기사는 급하다는 핑계로 지게차를 이용하여 유리 적재대를 옆으로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동료들보다 일찍 식사를 끝내고 적재대 아래에서 유리에 반사되는 볕을 즐기며 담배를 피우던 인도네시아 출신 산업연수생 까지만이 있었다. 하지만 트럭 기사는 그런 사실에도 개의치 않고 지게차를 몰았다.

트럭 기사는 지게차를 트럭처럼 급하게 몰아서 유리 적재대에 밀착시켰다. 지게차가 밀착되는 순간 유리 원판들이 반대쪽으로 넘어가면서 까지만을 덮치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막 점심을 끝냈던 두 명의 인도네시아 동료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또꼬와 후만이었다. 둘이 컨테이너로 만든 2층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면서 계단 위에서 이름을 부른 순간, 고개를 돌린 까지만은 유리 원판들에 깔렸다.

유리 원판을 쌓아둔 것으로 반대편에서 충격을 가하면 쉽게 넘어질 수 있다.
▲ 유리 적재대 유리 원판을 쌓아둔 것으로 반대편에서 충격을 가하면 쉽게 넘어질 수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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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울부짖으며 까지만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까지만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둘은 정신 나간 것처럼 울부짖고 헉헉거리다 구토를 하고 쓰러졌다. 회사에서는 까지만을 산재로 처리한다고 했다. 시신은 항공화물로 보내졌고, 사람들은 그 사건을 금세 잊었다. 회사에서는 유해송환이 끝나기 전부터 계속 일할 것을 요구했다. 좀 더 정확히는 눈앞에서 죽은 친구를 두고 회사는 그날 일하라고 했었다. 둘은 손을 내저었다.

친구가 죽는 순간 이름을 부르고, 두 눈 부릅뜨고 죽은 친구를 목격했던 두 사람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또꼬는 까지만이 유리원판 아래에서 손을 휘저으며 자신을 부르는 환영에 시달렸고, 후만은 자신이 유리원판에 깔리는 꿈을 자주 꿨다. 둘은 식욕을 잃었고, 적재대에 놓인 유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며 속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게 무리라는 걸 안 회사에서는 두 사람에게 공장 대신 배 밭에서 일하도록 일당 일을 주선했다. 추석이 끝나고 수확 끝물이라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밭 주인과 둘이 전부일 때가 많았다. 기계음이 들리지 않는 배 밭은 둘에게 잠시나마 숨 쉴 공간을 제공했다. 보름 넘게 배 밭에서 일하던 둘에게 회사는 공장에서 일하든지, 회사를 옮기든지 선택하라고 했다. 결국, 둘은 평생 한번 해 본 적 없는 용접 공장으로 회사를 옮겼다. 자동차용 가스통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용접을 배우고 적응할 만한 즈음, 둘은 비슷한 증상으로 다시 그만둬야 했다. 공장 마당에 적재된 가스통만 보면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나 한번은 겪고 지나가는 것이라며 둘이 유별나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두 사람은 친구를 조금이라도 빨리 부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고향에 돌아갔을 때 친구의 유족들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트라우마를 겪던 둘에게 처방전이라면 '살아보려는 의지'가 전부였다. 흔히 말하는 '코리안 드림을 이루어야 할 거 아니냐'는 비아냥 조의 다그침만이 그들에게 향한 위로의 전부였다. 둘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것을 극복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그저 불안감이 심해지면 회사를 그만두고, 옮기는 걸 반복하며 '이젠 다 나았다'고 말할 뿐이었다. 복층유리 공장을 그만둔 후, 2년쯤 지났을 때 또꼬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갔고, 후만은 혼자 트라우마와 싸우며 한국에 남았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 ②] - 이주노동자와 트라우마로 이어집니다.


태그:#이주노동자, #산재, #사고사,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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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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