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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중국에서 닭살로, 일본은 새살로 부르며, 아랍권에서는 오리살로 통한다.
소름은 겨울에 흔히 일어나는, 보통은 피부 일부에 '닭살'을 동반하는 생리 현상이다.
 소름은 겨울에 흔히 일어나는, 보통은 피부 일부에 '닭살'을 동반하는 생리 현상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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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은 겨울에 흔히 일어나는, 보통은 피부 일부에 '닭살'을 동반하는 생리 현상이다. 하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도 소름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겠다. 국정농단 정국과 관련해 청문회에 나서는 국조특위 위원들이나 방청객, 분노를 쉬 억누르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던 사람들이라면 청문회 TV 중계 등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해 상당수 포유류들은 추위에 맞서기 위한 방편으로 소름이라는 생리 현상을 발달시켜온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 피부의 모공 주변 근육들이 수축하고, 이 경우 체모가 빳빳하게 일어선다. 일제히 치켜세워진 체모들은 피부 위로 일종의 단열층을 형성함으로써 차가운 외기로부터 피부, 나아가 신체의 보온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에 비해 체모가 형편없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해 버린 인간에게 소름은 추위 방어에 아주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인간에게 꼬리뼈가 소용 없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듯, 일부 생리학자들이 소름을 흔적 생리현상의 하나로 치부하는 이유이다.

한데 소름은 추위만이 아니라 분노, 공포, 환희 등의 극단적인 감정에도 종종 동반된다. 동물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고슴도치나 고양이가 천적을 만나거나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면 털을 쭈볏하고 세우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덩치가 곧 힘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일제히 털을 세우면 몸집이 그만큼 커 보이므로 적을 물리치거나 싸움을 피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인체 피부의 소름은 적들을 위협할 수도,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상대가 남달리 예민한데다 웬만하면 충돌을 회피하는 유형이라면, 소름을 동반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 경우 자리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뻔뻔하거나 호전적인 상대라면 닭살이 아무리 많이 돋은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소름은 생리적으로 에너지가 적잖게 드는 인체 반응이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동반하고 감정의 소모가 상당한 탓이다. 분노나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 뒤끝에 최소한 일시적이나마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관계 때 황홀경에서 소름이 돋는 사람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도 역시 적잖은 에너지가 소모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름을 닭살로 부르는 건, 예의 모공 부위가 수축해 돌기 같은 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생김새가 털을 벗겨낸 닭의 피부를 연상시킨다 해서 닭살로 불린다. 소름은 전신에 동시다발적으로 돋기보다는 인체 일부에 특히 도드라지는데, 팔뚝이나 허벅지 종아리 같은 부위에서 빈발한다.

소름은 인간에게 공통적인 현상이므로 인종에 차이가 있을 수 없는데, 속되게 불리는 이름만큼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과 중국에서 닭살로, 일본은 새살로 부르며, 아랍권에서는 오리살로 통한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지역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닭살로 불리지만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 중북부 지역에서는 '거위살'(goose bump)이라고 한다. 닭살과 거위살로 나눠 불리는 것은 인종 별 신체 특성에 따라 소름 돌기 하나하나의 크기가 달라서일 수도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흔히 접하는 조류가 닭이나 거위 등으로 다른 데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닭살이든 거위살이든 현대인들에게 소름은 가능한 피해야 할 생리현상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추위와 같은 물리적 스트레스든 분노 공포와 같은 정서적 스트레스든 심신의 건강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탓이다. 우스개 소리로 공공연한 장소에서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연인이나 부부 등의 행위를 일컬어 '닭살 돋게 한다'는 말을 하는데, 남들 닭살 돋게 하는 건 생리적으로 따지면 사소하나마 피해를 주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국민들의 소름을 유발한다면 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카페(cafe.daum.net/yourlot)에도 비슷한 글이 있습니다.



태그:#닭살, #소름, #생리, #국정농단, #오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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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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