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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탄천. ⓒ 김종성
한강이 거느린 여러 동생 지류들 가운데 흥미로운 이름의 하천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법화산에서 발원해 성남시를 거치고 서울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가는 탄천(炭川)이다. 유로연장 35.6㎞로 상류에선 동막천, 하류에선 양재천을 품고 흐른다. 천변을 따라 수도권 전철역이 이어지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마련돼 있어 자전거 여행하기도 좋다.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이 하천은 한자어대로 숯과 관련이 있는 물길이었다. 옛날에는 순우리말로 '숯내', '검내'라고 불리기도 했다. 첫 번째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던 곳에서 군사들의 배식을 위해 연료로 숯을 많이 만들었고, 군사들에게 줄 냇물의 정수를 위해 숯을 물에 남겨두고 가서 물 색깔이 숯 색깔로 변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 때 강원도 등지에서 한강을 통해 목재와 땔감을 싣고 내려와 뚝섬에다 부렸는데, 이 땔감으로 숯을 만드는 곳이 바로 강변에 모여 있어 강줄기가 검게 변했다 해서 유래했다. 세 번째는 천변 동네 이름이다. 탄천은 경기도 성남시 탄리(炭里)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탄천은 절반이 넘는 약 25㎞ 구간이 성남시의 중심부에 걸쳐 있다.

탄리는 현재 성남시 태평동, 수진동, 신흥동 지역을 말하는데 개발 이전에 숯골, 독정이 등의 마을이 있었다. 실제로 성남시 수정구에서는 매년 숯골축제가 열린다. 다른 하천들처럼 탄천도 동네를 지나면서 지역에 따라 검내·검천·장장포·험천·원우천·장천이라고 불렸다.

겨울손님 철새와 텃새들이 어울려 사는 탄천

상류부터 하류까지 자전거 여행하기 좋은 탄천. ⓒ 김종성
철새에서 텃새가 되어가고 있는 노련한 물고기 사냥꾼 민물가마우지. ⓒ 김종성
자전거도로를 따라 한강 남단을 달리다 탄천이 한강과 만나는 합수부로 들어섰다. 서울전철 9호선 봉은사역에서도 가깝다. 1988년에 생겨난 올림픽주경기장과 내게 많은 추억을 전해준 잠실야구장을 바라보며 달리는데 천변에 웬 버스들이 주춤주춤 움직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하천가에 자리한 운전면허실기시험장이었다.

하천가에 있는 버스만큼이나 이채로웠던 건 물고기 사냥의 명수 민물가마우지 떼였다. 청둥오리, 왜가리, 백로 등도 보였지만 날개를 옆으로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언제 봐도 익살스러운 녀석이다. 물속으로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는 새라서 지상에 있을 땐 늘 날개를 양쪽으로 벌리고 말려야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원래 겨울철새였는데 먼 거리를 오고 가는 게 귀찮았던지, 몇 년 전부터 한강과 그 지천에 아예 자리를 잡고 사는 텃새가 되어가고 있다.

탄천은 지류인 양재천을 지나면서 반가운 여울을 보여줬다. '학여울'이란 이름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엔 학여울역이란 전철역도 있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다. 수심이 얕은 여울의 바닥은 굵은 조약돌이 깔려 있다. 그래서 여울에서는 물살이 조약돌에 부서지면서 경쾌한 소리가 난다. 1861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학탄(鶴灘)으로 소개되어 있다. 탄(灘)은 여울을 뜻한다.  

닭을 닮아 친근한 겨울 철새 물닭. ⓒ 김종성
물떼새를 닮은 작고 귀여운 철새들도 탄천을 찾아 왔다. ⓒ 김종성
탄천은 한강처럼 폭이 큰 하천이 아니라서 텃새는 물론 이맘때 멀리서 찾아오는 겨울 손님 철새들을 보기 좋은 하천이다. 지천인 양재천보다는 폭이 커서 새들이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듯싶다. 사람과의 거리가 적당하고 먹거리가 풍성해서인지 텃새와 철새들이 섞여 살고 있는데 사람과 달리 텃세부리는 모습을 볼 수 없어 기특했다.  

무엇보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다큐멘터리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너무 기뻤다. 닭을 닮아 이름 지어진 철새 물닭도 반갑고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원앙새나 청둥오리, 고방오리·흰뺨검둥오리·홍머리오리·흰죽지 등의 기러기목 오리과의 다양한 철새들 구경하느라 추운 줄도 모르고 천변을 지나갔다.

물떼새를 닮은 작고 귀여운 새들도 물가에 나왔는데 말똥말똥한 작은 눈이 쥐눈이 콩처럼 새까만 게 참 귀여웠다. 특히 날개 짓을 하며 물위를 빠르게 달리는 철새들의 놀음은 신기하기만 했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탄천에서 만난 야생 철새들은 활기차고 건강해보였다. AI 사태의 원인은 겨울 철새라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말이 무책임해 보였다. 비좁은 축사에서 햇빛 한 번 못보고 죽지 못해 살다가 '살처분'당한 오리와 닭들이 떠올랐다. 동물복지란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살아있는 생명을 2700만 마리나 죽여서 파묻는 건 정상이 아니다.    

오랜만에 흥미롭게 사진촬영을 즐겼다. 풍경사진도 좋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활기찬 동물들을 찍는 즐거움도 참 좋다. 겨울에도 활기차게 노니는 새들의 생명력이 내게 전해져 오는 듯해서다. 탄천은 형뻘인 한강에 비하면 야생의 분위기가 완연했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시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지 싶었다. 천변 중간 중간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들도 유난히 정겨웠다.  

경기도 성남시의 젖줄, 탄천

겨울이 오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고요한 휴식에 들어간 탄천. ⓒ 김종성
철새 구경을 하다 어느새 서울을 지나 경기도 성남시로 들어섰다. 탄천은 성남시의 한복판을 25km나 지나는 이 도시의 중요한 하천이다. 2002년까지 주변 지역의 난개발로 동식물이 거의 살 수 없을 정도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곳이었다. 하천은 숯내라는 이름처럼 온통 새까매졌다. 이후 성남시는 성남의 젖줄인 탄천을 지키기 위한 민관합동 위원회를 발족했고, 습지를 조성하는 등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주변 경관과 수질이 호전되었다.

당시 조성한 습지가 현재 수정구 태평동 탄천변에 있는 탄천생태습지공원이다. 탄천의 수질을 정화하기 위해 만든 인공습지다. 2만4000㎡로 큰 규모의 습지생태원은 18개 생태연못과 민물고기 학습 관찰대·억새·갈대 군락 등이 경관을 이뤄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더불어 봄엔 밀을 심고, 여름엔 유채꽃, 가을엔 코스모스를 심어 놓아 계절마다 축제를 하는 명소가 되었다.  

모란시장에서 처음 본 자라, 거북이와 달리 사납다. ⓒ 김종성
개·닭·오리 등 가축장이 남아있는 모란시장. ⓒ 김종성
탄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성남 모란시장이다. 탄천변에서 탄천IC 이정표를 따라 나오면 전철역 모란역과 함께 큰 장터가 나온다. 매 4일과 9일마다 열리는 닷새장으로  시장 주변에 밀집해 있는 많은 기름집들과 각종 건강원들로도 유명하다. 특히 개를 도축하고 고기를 파는 가축장이 있어 최근까지 문제가 되었다가, 올해 들어 해결점을 찾게 됐다. 내년 봄부터 개고기 취급업소를 철거하기로 했고, 성남시는 업종전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평양을 상징하는 모란이 시장이름이 된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남쪽으로 내려온 육군 대령 출신 김창숙은 재향 군인들과 천호동에 거주하던 많은 월남민들을 데리고 성남 지역으로 들어가 황무지 개간 사업을 벌였다. 성남이 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김창숙은 마을 이름에 어머니가 있는 평양을 상징하는 모란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시장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갑자기 탄천변 하늘 위로 군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면서 지나갔다. 놀란 여행자와 달리 탄천에 떠있는 오리와 새들은 비행기들이 내는 소음에 익숙한지 여유롭게 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인터넷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곳은 공군성남기지다. 공군기지는 탄천을 따라 한참을 이어졌다. 군용기뿐만 아니라 대통령 전용기나 외국 귀빈이 주로 이용하며 서울공항으로도 불린다고.

15개의 보로 수질 문제 발생하고 있는 탄천

보(洑)위에서 사이좋게 서있는 백로, 해오라기, 원앙새와 오리들. ⓒ 김종성
보옆에 물고기 통행을 위해 마련한 어도(魚道). ⓒ 김종성
탄천을 지나다보면 작은 댐인 보(洑)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보는 하천을 가로막아 쌓아올린 저수시설이다. 수위가 15m 이상이고 저수량이 300만 톤 이상인 대형 댐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로 분류된다. 탄천엔 다양한 종류의 보가 15개나 있다. 대부분의 보처럼 과거 농업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0년 말부터 분당과 용인에 계획도시가 만들어지면서 탄천 대부분 보들은 원래 목적을 상실하고 말았다. 처음 보들이 만들어졌을 때는 인근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개발로 인해 도시 내 농업지대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류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하천이라 그런지 물고기가 지나다닐 수 있게 어도(魚道)가 보 옆에 마련돼 있었는데, 잉어 같은 큰 물고기 외에 다른 어류들이 과연 저 어도를 통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더 이상 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보니 부유물질과 악취를 발생시켜 오히려 탄천의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것. 유속이 느려지면 자연스럽게 수온이 상승하고 녹조현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보로 인해 퇴적물들이 보 부근에 쌓이면서 하중도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콘크리트 보를 철거하고 자연하천으로 복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자연스런 상황이다.

탄천 상류에 모여 있는 중대백로들 모습이 눈부시다. ⓒ 김종성
탄천 상류 천변에 있는 보정동 카페거리. ⓒ 김종성
그래서였는지 성남지역 탄천 상류에 있는 어떤 보는 수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수문을 열어놓은 하천 주변 풍경은 다른 곳과 달랐다. 흐르는 물 사이로 모래톱이 드러나 있고, 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후 침식과 퇴적과정을 거치면서 새살이 돋듯 더욱 자연스러운 풍경이 움틀 것이다.

탄천 최상류가 흐르는 용인시로 들어서면서 하천은 소담하고 풋풋해져만 갔다. 늘 하얀 깃털을 유지하는 깔끔이 중대백로들이 떼로 모여 있는가 하면, 너구리 가족이 나타나니 가까이 가지 말아 달라는 현수막이 다 있었다. 하천의 소(못 沼) 구역엔 씨알 굵은 잉어들이 유유히 모여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골 하천변 같은 풍경속을 달리는데 탄천을 환하게 비추는 곳이 나타났다. 보정동 카페거리(용인시 기흥구)의 화려한 불빛이었다.

주택가 동네 골목 사이로 시장처럼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 있다. 탄천과 어우러진 골목에 외국의 자그마한 어느 마을에 온 듯 화려하고 이국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명불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탄천 최상류엔 분당선 전철 보정역이나 구성역이 가깝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한강탄천합수부 - 탄천 - 학여울 - 공군성남기지 - 탄천습지생태원 - 모란시장 - 보정동카페거리 - 분당선 구성역

덧붙이는 글 | * 지난 12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 sunnyk21.blog.me

태그:#탄천, #철새, #학여울, #모란시장, #보정동카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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