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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 면담을 위해 국회에 도착하자 야당 의원들이 '퇴진' '검찰 조사'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야당 시위 속 박근혜 국회 방문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 면담을 위해 국회에 도착하자 야당 의원들이 '퇴진' '검찰 조사'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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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국회를 방문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겠단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이미 일방적으로 한 지명한 총리 후보는 철회하겠다는 것인지 말이 없다. 이 나라는 헌법상 대통령 중심제다. 어쨌거나 책임도 지지 않는 '청와대 관계자'가 흘리는 '총리에게 강력한 권한을 드린다는 뜻' 따위의 말은 아무런 법적 보장이 없다. 그런데 헌법에는 이런 말도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것도 맨 첫 줄에. 이것이 정치철학적 본질이며 민심은 대통령 퇴진, 2선 후퇴를 요구한다. 같은 법 내에서 조항과 조항이 충돌할 때 절충점을 찾으려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헌법 안에서"를 운운하는 것은 동어반복이고 물타기다. 우리는 내용적 법치주의를 지향하지 형식적 법치주의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난 9일 청와대 관계자들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 총리가 권한을 강력 행사할 수 있도록 확실히 보장하겠다"면서도 "헌법 안에서"라는 말을 강조했다. 최소 마지노선인 대통령 2선 후퇴조차 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또한 거국중립내각도 "헌법에 없는 언어"라면서도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청와대는 교묘하게 민심을 비껴가며 국민을 기만한다. 헌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려면, 박 대통령이 스스로 국민 앞에 모든 권한을 국회 추천 총리에게 이양하고 자신은 '서명 대통령' '의전 대통령'으로만 남을 것을 약속하면 된다. 총리가 만들어 올리는 서류에 서명만 하고 총리가 구성한 내각 각료들에게 임명장만 수여하면 문제가 아주 간단하게 풀린다.

이 경우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러한 '정치적 보장'을 전혀 안 한다. 10일에는 은근슬쩍 평상시 권한도 행사했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대통령 명의로 축전을 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고 변할 생각도 없다. 필자는 이제 야 3당이 청와대와 친박 패권 집단에게 관용을 거두고 기일을 정해두고 최후통첩을 해 압박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거국 내각, 정치 역학상 모범 답안이지만 시민들과 거리 두면 안 돼

필자는 지난 10월 27일 거국 내각이 정치 역학상 최소한의 타협점이라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거국 내각은 '최소' 타협점이다). 최대점은 대통령 하야, 최소점은 거국 내각으로 그 사이 어디에선가 정치권의 합의가 이루어지라는 전망이었다. 앞의 칼럼은 최순실이 '귀국하기 전' 썼다.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속된 말로 혐의가 '양파 까듯' 나오기 전이었다.

물론 지금도 거국 내국이 '정치 역학상으로는' 모범 답안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고 싶은 야권,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싶지만 4.13 총선 때처럼 분열로 역풍을 맞고 싶지는 않은 비박계, 어떻게든 박 대통령을 잔여 임기 동안 묶어두면서 회생을 도모하려는 친박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절충점이라고 판단한다.

친박계가 과욕을 부려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과 의리론, 야권 변질론 등을 호시탐탐 던지는 것만 빼고는 가장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변수를 낳는 것은 결국 자로 잰 계산이 아닌 감성이다. 의회 안에서 어떤 결과가 산출되든 의회 자체를 존속하게 하는 토대인 민심은 합리성의 영역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

자격 없는 자들이 국정을 농단했고 부와 권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요컨대 무임승차자들에 대한 격분이 민심을 움직인 에너지고 합리성으로 무장한 건 뒤따르는 수순이었다. 단지 '인터넷 여론'인 것이 아니다. 인터넷 여론에 불과했다면 박 대통령이 광주·호남 지지율 0%대라는 천지창조 이래 최초의 기록의 주인공이 됐을 리도 없고, 전체 지지율 5%까지 내려앉았을 리도 없으며, 콘크리트인 줄 알았던 60대 이상과 TK가 돌아섰을 리도 없다.

요컨대 국민들이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싫어졌다고 야권이 반사 이익을 받는 건 애초에 한계다. 다만 적어도 '저놈들 어떻게 좀 혼내줘봐라'라는 게 지금 상당수 국민의 도덕 감정인 것은 분명하다. 야권이 속 시원하게 긁어주며 점수 딸 수 있을 때, 정치의 언어를 자꾸 혼란스럽게 오염시키는 청와대를 못 끊어내는 것은 당위가 아닌 손익 분기점 관점에서 봐도 손해다.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와 거리를 둬서는 안 된다.

상충하는 민심 모두 충족하려면 '명분' 필요하다

12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릴 촛불 집회에 안철수, 박원순은 참석하고 문재인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개인 자격으로는 참가하고 싶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7일 사회 원로들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하야와 같은 급진적 움직임보다는 법적 절차에 따라달라는 신중론을 요청받았다.

실제로 평범한 기성세대 중에서도 대통령의 실정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대통령이 끌어내려지면 큰 혼란이 오고 휴전선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곰곰이 따져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군대란 정치 중립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다양한 논의가 있다고 경계 임무, 전투 준비 태세가 흔들린다면 그간 군 통수권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무능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그래도 문제는 감성이다. 더민주와 문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국민 중 일부에게 불안감을 줘 역풍을 맞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재 많이 수세에 몰려있지만 친박계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 진보좌파 변질론 등을 내세울 수 있다. 그들은 민심이 어디로 향하든 '변질됐다'는 식의 흑색선전을 일삼을 가능성이 있다. 12일에 <조선일보>가 촛불 집회를 어떤 워딩으로 규정지으며 여론 몰이를 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이런 생각은 해봐야 한다. 어쨌든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부, 여당에 화가 나 있는 일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복잡하고 상충하는 민심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일단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 야권 변질론부터 미리 끊어내고 청와대가 오염시킨 정치의 언어에서 본질을 구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야권이 박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기회를 줬으나 국민을 어떻게 기만했는지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고, 요구 조건을 분명하게 밝혀 24시간 안에 수용할지 답을 주라고 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기회를 줄 만큼 주고 인내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수용하지 않거나 또 국민을 기만하면 12일 촛불 집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는 더 거세질 것이고 야당은 그 명분을 보충해주는 임무라도 성공하게 된다.


태그:#박근혜, #청와대, #최순실, #이정현, #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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