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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멘붕'입니다, 멘붕. 미국의 언론들, 전문가들 그리고 우리도 다 틀렸습니다."

9일 오후 미국 대선결과 분석 인터뷰를 위해 <오마이뉴스>에 들어온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으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했다. 김 교수는 "오늘 아침에 트럼프 캠프 관계자가 '우리가 이기려면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도 자신들이 이길 줄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정치와 북미관계 전문가인 김 교수는 이같은 결과를 "미국의 진짜 주인이라고 자부하는 백인들의 복수"라고 진단했다. "경제가 어렵고 그 여파로 백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분노를 트럼프가 잘 치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트럼프 당선이후 한미관계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트럼프 당선이후 한미관계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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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다혈질'인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김 교수는 "정세 유동성이 커지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잘 접근하면 미국에 대한 설득이 쉬울 수도 있다"라고 예측했다. "한미동맹의 관성이 미국에서 변화가 오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간'문제도 거론했다. 국정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에 비해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안보라인과 대북정책을 정립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는 이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우리의 정치 리더십이 붕괴돼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정치 리더십을 안정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면서 "내년 봄 조기 대선'을 제안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왜 트럼프가 이겼다고 보나.                                           
"미국의 진짜 주인이라고 자부하는 백인들이 자기 나라를 뺏겼다고 보는 것 같다. 미국은 흔히 인종의 용광로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하지만 그건 미국이 자신감이 넘칠 때 얘기다.

지금은 무슬림과 이민자들과 흑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여성들이 도전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 같다. 오바마 개인의 인기가 높은 것과는 별개로, 흑인 대통령에 대한 역편향으로 이번에는 백인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물을 선호한 것 같다. 경제가 어렵고 그 여파로 백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분노를 트럼프가 잘 치고 들어갔다."

"진짜 미국 주인이라 자부하는 백인들의 상실감이 컸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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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같은 맥락 아닌가.
"신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한 것이다. 부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과실을 나누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잃었다. 중산층 붕괴하고 소득격차와 빈곤층이 확대됐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복지를 선택해야 하지만, 기존의 틀과 기존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운동 중에 '(클린턴과 오바마 등) 당신들 정치 엘리트들이 25년간 정권 잡고 있으면서 못 했는데, 4년 더 한다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게 잘 먹혀들었다. 기성질서를 따라가 봐야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복지를 부르짖은 샌더스의 길과 포퓰리즘에 호소한 우파 선동이라는 두 길에서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미국이 중산층을 복원시키지 못하면 2020년쯤에 히틀러가 등장할 거라고 했는데, 그보다 4년 빨라진 거다.

저도 이렇게 얘기하는 하고 있지만 사실 멘붕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히틀러 등장과 비슷하다. 다혈질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 핵무기 발사 버튼을 갖게 됐다. 미국의 주요 언론 중에서 <LA타임즈> 하나만 맞췄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후보로 계속 버티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너무 간과했다. 그런데 이런 트럼프 같은 인물의 등장은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 두테르테 등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됐다면 승리했을까.
"글쎄, 그래도 트럼프가 이기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상황은 백인들의 복수다. 여론조사에도 응하지 않으면서 아무 얘기도 않고 가만 있다가 확 터트린 것이다. 성추행과 탈세 등 온갖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트럼프가 후보로 살아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간과했다."

- 미국 경제도 이전보다는 좋아졌고, 오바마 현 대통령의 지지도도 56%로 굉장히 높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당선됐다.
"논리적이지 않다. 전반적인 상황은 그렇지만 하층 백인들은 '나는 좋은 게 없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단어들, 기독교적인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오바마의 지지도는 개인적 인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미국 민주주의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닌가. 내부 분열이 극심할 것 같다.
"미국이 내부의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거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 이민청 누리집이 다운됐다고 하더라(웃음).

미국이 자랑해온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는 불평등, 장기 저성장, 부채로 무너지고 있고, 민주주의도 훼손되고 있다. 미국에 대학을 안 가거나 못가는 사람이 70%가 넘었다. 2차 대전이후 전세계 이끌어온 미국의 가치와 원칙이 붕괴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잘난 체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설파했는데, 이제 그 말빨이 약해질 거다."

"북한·중국·러시아는 트럼프 원했다... 우리 하기에 따라 공간 창출 가능"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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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구의 당선을 바랐을까.
"당연히 트럼프였을 거다. 매파인 클린턴의 당선은 '오바마 3기'라고 봤을 거다. 오바마는 집권 중반 이후  (중국과) 신형대국 관계, 아시아 재균형, 미일동맹 강화를 중시했는데 이 모두가 북한에는 압박으로 작용했다. 반면 트럼프는 어쨌든 대화하겠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트럼프의 당선을 바랐다."

- 트럼프 당선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거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공화당과도 척을 지고 당선됐기 때문에 당분간은 당의 제어도 통하지 않을 거다. 또 협상에서 레버리지 갖기 위해 우선은 기존질서를 다 깰 거다. 한미 FTA 등 무역분야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바로 치고 나올 거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미동맹을 끊지 못할 것이고 한국 핵무장은 용인되지 않을 거다. 결국 공화당의 내부 견제가 작동할 거고, 의회 견제 등 미국의 시스템이 움직일 거다. 하지만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라는 점은 걸리는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에게 좀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이 당선했을 경우 대외 정책 정립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렸을 텐데, 트럼프는 외교안보라인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그리고 클린턴에 비해 북한 문제가 우선 순위에서 낮아질 거다. 이건 우리에게 좋은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불안하지만 시스템은 약하다.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잘 접근하면 미국에 대한 설득이 쉬울 수도 있다. 한미동맹의 관성이 미국에서 변화가 오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탄탄하게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문제 등 대미 레버리지를 다 써버렸고, 트럼프 쪽에 네트워크도 없다.

우리로서는 무너진 대통령 리더십을 빨리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최대한 우리를 뽑아 먹으려 할 거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내년 봄쯤 조기 대선을 통해 빨리 정치 리더십을 안정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넓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만 물러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 시스템을 회복해서 건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하면, 중산층이 몰락해서 양극화가 더 극단화되면 우리에게도 트럼프 현상이 강화되고 본격화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현상이 동종복제되면서, 선동가들이 득세해 북한과 전쟁하자는 얘기까지 나올 수 있다. 반공주의, 근본주의, 종북주의 이런 게 다 선동아닌가.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최순실 사태가 나온 것 아닌가."

"내·외치 분리 불가능... 대통령 23년만에 APEC불참, 이미 외치 안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트럼프 당선이후 한미관계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트럼프 당선이후 한미관계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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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박 대통령의 위기상황 타개책으로 내치(거국내각 총리)-외치(박 대통령) 분리론이 나온다. 이런 구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렇게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외치 영역이 더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간을 보면서 조금씩 내놓는 데 비해, 야당들은 협상 차원에서 내치와 외치를 분리하고 외치를 박 대통령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이 해외 어디를 간들 무시당하지 않겠나. 2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최순실 사건 때문에) 밀려서 못 가는 것인데 이것 자체가 이미 외치가 안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다.

지금으로서는 '예고 하야'가 대안이라고 본다. 총리가 과도내각을 맡아 내년 4월에 조기대선하기로 하고, 박 대통령은 그때까지는 의전 정도의 역할만 맡는 것이다."

-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이걸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할 거다. 한국 정부는 몰리게 되겠지만, 주한미군 존재가 미국에게도 이익이 크기 때문에 실제 철수시키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 요즘 북한이 좀 잠잠한 편인데, 미국 대선 이후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클린턴이 당선했으면 바로 움직였을 것이다. 기 싸움을 위해서도 핵실험 등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트럼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려 할 것 같다.

미국은 트럼프든 힐러리든 북한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 트럼프도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고립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이 왜 이렇게 남의 나라 일에 개입을 많이 하느냐는 거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미국은 기본적으로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 해본 뒤에 안 될 때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앞부분은 빼고 얘기하니까 미국이 대북 선제 타격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도되는 데 실제 그렇지 않다."


태그:#트럼프 대통령, #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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