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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외부 전경
 박물관 외부 전경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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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헌 자연사 박물관'에서 '사과나무 숲 꿈의학교'를 만들었다니, 우석헌은 무엇이고 사과나무숲은 또 무엇인가.

이름만 보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석헌은 사람 이름 같았고, 사과나무숲은 주말 농장을 연상케 한다. '말로만 듣던 신비주의?', 이런 식으로 궁금하게 해서 사람을 꼬이게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일었다.

아이들이 한 활동은 정말 파격적이다. 돼지를 직접 해부했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돼지를 해부한 것일까. 돼지를 해부해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려 한 것일까. 수의사를 꿈꾸는 아이들일까?

이것이 사과나무숲 꿈의학교를 방문한, 아니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궁금한 게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를 방문한 것은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박물관이 있는 곳은 한적한 도로 주변 언덕이었다. 다행히 박물관 인근에 '풍양 초등학교'가 있어 그리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멋진 분이 지나가기에 혹시! 했는데, 역시 관장님이었네요."

이 말을 듣고 그는 여장부를 연상하게 하는 시원한 웃음을 던졌다. 한국희 교장(우석헌 자연사 박물관 관장)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만나자마자 '우석헌이 혹시 사람 이름이냐'고 묻자 그는 "한자 뜻풀이대로 어리석은 돌들의 집(愚石軒)"이라며 '풋' 하고 웃었다. 이 질문을 많이 받은 눈치였다. '사과나무숲'에서 사과(史科)도 역사와 과학이라는 의미의 한자였다. 사과나무숲은, 역사와 과학을 융합한 교육을 한다는 의미였다.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박물관은 아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점령했다고 해야 하나! 박물관 곳곳이 아이들로 붐볐는데 저마다 하는 게 달라 관찰만 해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고 생선을 냄비에 넣고 끓여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곡괭이로 땅을 파는 아이들도 있고, 스티로폼을 다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물고기 뼈를 분해새서 다시 맞추는 모습
 물고기 뼈를 분해새서 다시 맞추는 모습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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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선생님과 뱀 모형 배 만들기 팀원들
 김영진 선생님과 뱀 모형 배 만들기 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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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학교 하기 이전에 이미 괜찮은 학교밖 학교

"아이들은 팀별로 스스로 계획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박물관 전체를, 우리 직원들 사무실까지 모두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학습 주제가 '메카닉(구조, 역학)'인데, 아이들 상상력이 참 대단해요. 뱀처럼 생긴 배를 만드는 팀도 있고, 선사시대 인류가 살던 움집을 짓는 아이들도 있어요. 생선 골격을 탐구하는 팀도 있고요. 마을 축제를 기획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아이들이 작성한 희망 리스트대로 진행하는 것인데, 워낙 하고 싶은 게 다양하다 보니 재료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아이들이 하는 활동이 저마다 다른 이유다. 초·중·고생 52 명이 10여 개 팀으로 나뉘어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팀마다 전문 강사가 있었고 학부모로 구성한 드림 캐스터(Dream Caster)라는 학습 도우미도 있었다.

스티로폼을 다듬는 아이들은 뱀처럼 생긴 배 모형을 만드는 팀이었고, 땅을 파는 아이들은 움집(선사시대 가옥)을 짓는 팀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축제를 기획하는 팀이었고, 생선을 끓이는 아이들은 동물 진화 과정을 탐구하는 팀이었다. 생선뼈를 분해한 다음 다시 맞추며 진화 과정을 알아보는 것이다. 물론, 이미 죽은 생선이었다.

디자이너, 역사학자, 학예사 등 강사진은 무척 탄탄했다. 그 이유는 꿈의학교를 시작하기 이전에 박물관 자체가 이미 '학교 밖에 있는 꽤 괜찮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박물관에서는 과학, 수학, 역사, 예술이 융합한 프로그램인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했다. 2012년에는 '레지던시형 학생 인턴십'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기획, 설계, 디자인 등에 직접 참여해서 박물관 전시를 하는 무척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박물관에서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후손들 교육을 위해서 설립한 게 '우석헌 자연사 박물관'이니, 교육에 정성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물관 자체가 한 관장 부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해 놓은 '작품 '인데, 이들의 꿈이 '제대로 된 교육, 질 높은 교육'이라고 한다.

박물관에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알게 하는 화석과 광물 등이 10만 점가량 전시·보관돼 있다. 한 관장 남편이 수십 년간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것인데, 그는 화석과 광물을 모으기 위해 오지탐험도 불사했다고 한다. 박물관은 지난 2003년 개관했다.

이런 엄청난 자산이 한 관장에게 자부심을 안겨줬다. 특히 교육에 관한 자부심이 높았다. 제도권 교육과는 사뭇 다른 살아있는 교육(실물 교육), 자유로운 교육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이런 그에게 꿈의학교가 새로운 감동을 안겨 주었다.

화석, 광물 모으기 위해 오지탐험도 불사

한국희 관장
 한국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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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박물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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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학교(풍양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추천으로 꿈의학교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작년에 설명회에 참석했고요. 그 설명회 가서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바로 학생 스스로 정신이었어요.

자유롭게 한다지만 그래도 우린 커리큘럼(교과과정)은 있었는데, 꿈의학교는 그것조차도 아이들이 직접 짠다는 게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학생 스스로가 중요하다는, 그런 견해를 품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고요. 설명회에서, 교육은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됐어요."

돼지를 해부한 까닭은, 바로 학생 스스로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한 아이가 돼지를 해부하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기가 막혔죠. 이 수업을 어떤 시각으로 볼까 걱정되기도 했고요.그런데 아이들 의견이 '한번 해보자'하는 쪽으로 모였어요. 그래서 그래서 인도적인 측면까지 고려해 돼지를 기초로 한 여러 가지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죠.

돼지와 인간에 관한 민속을 조사한 아이들도 있고, 돼지를 주제로 뮤지컬을 만든 아이들도 있어요. 돼지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을 표현한 작품이었어요. 인도적인 차원에서 본 돼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인데, 돼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또 돼지 뼈로 장신구를 만들기도 했고요. 정말 별거 다 했어요. 해부를 원치 않는 아이는 해부 과정을 영상에 담는 일을 했고요.

물론, 살아있는 돼지를 잡아서 해부한 것은 아니고요, 시장에서 부위별로 사서 실습을 했어요. 경제 감각을 키우기 위해 실습 자재도 아이들이 직접 사게 했어요. 해부학자와 동물학자가 강사로 참여했고, 학부모 중에 수의사가 있어서 해부할 때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뼈로 장신구를 만들 때는 디자이너 도움을 받았고, 돼지와 관련한 민속을 연구할 때는 민속학자가 강사로 참여했어요."

이렇게 특별한 수업을 하면서 운영한 2015년 사과나무숲 꿈의학교 성과는 무엇일까?

"가장 큰 성과는 자신감이에요. 학부모들도 대부분 자신감을 꼽아요. '하기 싫어, 못 하겠어'하던 아이가 '한번 해 볼게요, 할 수 있어요' 하는 아이로 바뀐 것이죠. 또 자기 소질을 찾은 아이가 많아요. 영상 촬영을 하면서 그 일에 재미를 붙인 아이도 있고, 뼈 장신구를 만들면서 디자인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도 있어요.

직접 체험하면서 얻은 인문학 지식도 물론 큰 성과죠. 작년에 선사시대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이 빗살무늬토기도 직접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신석기 시대에 그 토기로 밥을 지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대부분 그저 무엇인가를 저장했던 토기인 줄로만 알고 있잖아요.

간혹 수능이나 학교 수업과 연관된 수업을 해 달라는 학부모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한테 '그걸 원하시면 꿈의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어요. 저는 수학,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자존감이 높아지면 나중에 수학, 영어도 더 잘할 수 있다고 봐요. 재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자꾸 못한다고 윽박지르면 점점 더 못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면 '잘한다, 잘한다'하니까 신이 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못하던 것도 잘하게 되는 거죠."

자존감 높으면, 수학·영어도 잘할 수 있어

해부 실습
 해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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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실습 재료인 돼지를 직접 구매하는 아이들
 시장에서 실습 재료인 돼지를 직접 구매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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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진행한 2015년 꿈의학교는 대성공이었다. 2016년 꿈의학교 입학 경쟁률이 3:1이 넘은 게 그 증거였다. 이 때문에 선발기준이 필요했다. 올해 학생 선발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학교 성적이나 외모 같은 게 아닌 '의지와 자발성'이었다. 이 말을 듣고 대학 입시와 회사 입사 시험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류 심사를 한 다음에 면접을 했는데, 중점적으로 본 게 하고자 하는 의지였어요. 자기 스스로 원해서 오지 않고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대답한 아이는 탈락했어요. '네가 잘하는 게 무엇이니?' 물은 다음에 그 자리에서 시켜보기도 했어요. 만약 '글쓰기를 잘한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무엇인가를 써보라고 하는 거죠. 느닷없이 시키니까 제대로 못 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 중에서도 '다시 한번 해볼게요'하고 의지를 보인 아이는 합격시켰어요.

서류에 자기소개서가 있었는데, 누군가 도와준 흔적이 있는 서류가 우선 탈락 대상이었어요. 좀 엉성해도 스스로 노력해서 쓴 흔적이 있는 서류가 우선 합격대상이었고요. 떨어진 아이 중에 울면서 하고 싶다고 전화한 아이가 있어서, 두 명 더 추가 합격시켰어요. 그래서 올해 인원이 52명이 된 거예요."

내친김에 '꿈의학교가 더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꿈의학교를 운영하는 분들이 '학생 스스로 정신'을 잘 이해해야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어 그는 "학부모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실패하더라도 간섭하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역사, 학교에서도 직접 몸 쓰면서 공부했으면"

움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이세인 학생(고2)
 움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이세인 학생(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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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축제 기획팀, 왼쪽이 인터뷰를 한  김민지 (여, 중3)
 마을 축제 기획팀, 왼쪽이 인터뷰를 한 김민지 (여, 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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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방향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지구와 인류의 역사다. 수업 과목은 모두 아이들 머리에서 나왔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을까! 이 궁금증은 박물관을 한 바퀴 휙 돌자마자 풀렸다. 아이들은 박물관 곳곳에 전시된 동물 화석과 광물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했다.

사과나무 숲 꿈의학교는 올해가 2년 차다. 경험이 쌓여서인지 아이들, 학부모, 강사 모두 꿈의학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 참여했다가 재미있어서 또 왔어요. 돼지 해부할 때 저는 사진을 찍었어요. 올해는 축제 팀이에요. 엄마 아빠 세대 추억을 되살리는 그런 축제를 만들고 있어요. 정해진 틀이 없다는 점, 그 틀을 우리가 짠다는 점이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이에요." - 김민지 (여, 중3)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다른 것을 배워서 좋아요. 특히 머리가 아니라 몸을 쓴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고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올해 또 왔어요. 선사시대를 직접 체험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움집을 짓기로 했어요. 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역사 공부 하면 좋겠어요." - 이세인(여, 고2)

"이곳 쌤(선생님)들은 아이들한테 접근하는 방법부터 달라요. 아이들 말을 경청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해 주는데, 그게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런 경험, 아마 쉽게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이지연(여, 사과나무숲 꿈의학교 학부모회장)

"현재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아이도 발생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다른 팀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게 힘들어요. 실패해도 괜찮아하고 기다려 주는 일요." - 김영진(남, 강사)


태그:#우석헌 자연사 박물관 ‘사과나무숲 꿈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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