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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씨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는 다른 법이다. 겨울에나 입을 법한 두툼한 '잠바'에 가방을 메고 쉼터를 나서던 유디는 연신 싱글벙글거렸다.

"치료받고 올 때면 추워요."

겨울 잠바를 입은 이유를 말한 유디(32, 남)는 천진난만하게 웃음 지으며 열 손가락을 자기 얼굴 앞에서 들었다. 얼굴빛보다 하얀 손바닥을 펼쳐 보인 그는 새끼손가락과 검지를 굽히더니 감격에 겨운 듯이 말했다.

"80분 남았어요."
"80분?"
"20분씩 네 번 남았잖아요."

그렇다. 하루에 20분씩, 나흘이면 80분이다. 유디는 앞으로(10월 3일 기준) 80분만 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치료받고, 일주일 쉬고 다시 치료받는 것을 반복해 왔던 그였다.

공장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을 때 그는 앞이 깜깜했고 하늘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황이 절박한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눈이 퉁퉁 부어 앞을 볼 수가 없었고, 땅은 흔들렸다. 악성뇌종양 때문이었다. 처음 수술 받았을 때 완치는 될지, 치료는 언제 끝날지조차 가늠하지 못해 불안해하던 유디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손을 들어 표현한 것이었다.

2013년 6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유디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2년 11개월을 일했다. 1년 10개월 연장계약을 하고 휴가를 앞둔 지난 5월 갑자기 공장 바닥에 쓰러졌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잠시 어지럼증을 느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울에서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치료로 주사와 방사선치료를 받아온 지 벌써 다섯 달째다.

그동안 희망과 절망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교차하며 유디를 들었다 놨다 했다. 휴가를 계획할 때만 해도 그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유디는 발병 소식을 전할지를 두고 사촌 다디와 심각하게 의논한 뒤, 결국 사실대로 전했다. 유디는 자신이 결혼을 못할 수도 있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했고, 여자는 달리 말이 없었다.

이주노동자의 항암치료,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악성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한 쪽 눈이 부어 올랐다.
▲ 수술 직후 유디 악성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한 쪽 눈이 부어 올랐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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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사촌 다디가 씩씩거렸다. 어떤 암인지 조직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회사에서 유디에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치료받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언제 완치가 가능한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서 치료받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퇴사 처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것이었다.

유디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출국을 권하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휴가 기간 중에 결혼할 계획이었던 유디는 무엇보다 치료가 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국에 남겠다고 회사에 알렸다. 회사 측 말처럼 항암치료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그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의료기술이 뛰어난 한국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이라고 말이다.

유디의 바람과 달리 회사가 그를 퇴사 처리해 버렸다고 다디가 알려줬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귀국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휴가가 예정돼 있었지만, '아픈 사람이 다시 입국하겠나' 싶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얼마 후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어떻게 할지를 물었고, 한국인 보증이 없으면 입원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휴가와 결혼, 재입국을 꿈꾸던 유디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퇴사 처리를 해버렸다면 뜻하지 않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암치료 중인 그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결국 병상에 누워 고용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을 넣기로 결심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회사지만, 항암치료를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상담을 진행한 이주노동자쉼터에서 그 일로 회사에 연락했다. 회사에서는 유디가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준 덕택에 고용 계약을 당장 해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료보험 문제는 사측이 전액 납부하되, 유디가 본인 부담금을 사측에 내는 조건으로 유지하도록 해줬다. 그러면서 "일도 하지 않는 사람과 근로계약을 하고 있으면, 그만큼 외국인 고용을 못하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일을 못하는 사람 때문에 인력난을 겪기 싫다는 말이었다.

다디는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귀국해야 한다고 말한 회사가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유디는 건강해진다면 다시 그 회사에서 일할 거라며 자신의 편의를 봐 준 회사가 고맙다고 했다.

치료받는 동안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회사에서는 고용보험을 들지 않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회사에서는 비용절감 때문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병원비는 결혼 준비 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으로 충당했다. 간혹 친구들이 얼마씩 보태주기도 했고, 사촌 다디가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간병을 자처해 준 덕택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손가락을 굽힐 때 새끼손가락부터 굽힌다. 손가락을 새끼와 검지부터 굽혀보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지부터는 쉽다. 유디에게 남은 80분은 훨씬 수월한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수술 후유증으로 거의 감겼던 유디의 눈은 원래 모습을 거의 회복했고 볼살은 적당하게 붙었다. 항암치료가 곧 끝날 거라고 믿는 그의 소망이 이뤄질지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 봐야 안다. 유디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들과 사촌을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그는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걸 병상에 누워 배웠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방사선 치료 후 예후 관찰이 계속 필요한 상태다.



태그:#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뇌종양, #고용허가제, #고용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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