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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을 정도로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잠이 깬 평범한 아침이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곱만 간신히 뗀 채 집을 나섰다. 오늘 따라 내가 일찍 나온 건지 아니면 너무 늦게 나온 건지 길거리에서 수업가기 바빠야 하는 대학생들이 하나도 없다. 지나다니는 차 하나 없는 낯선 풍경에 문득 떠올랐다. '아 오늘부터 추석이구나!'

귀성길로 떠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 곁에 내가 일하는 편의점이 자리잡고 있다. 평소같았으면 수업 전에 음료수를 사는 사람, 간단한 끼니거리를 사는 손님들에 분주했을텐데 야간근무를 했던 점장님이 여유롭게 맞아준다. 그 여유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정산할 돈도 얼마 없어 금방 교대를 끝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여유로운 편의점에서 왠지모를 낯선느낌을 받으며 민족대명절에 함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마지막 명절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고서부터 무지막지하게 들이닥치는 등록금에 생활비만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일하고있는 편의점은 5인 미만 사업장이다. 아르바이트생 몇 명이서 교대하면서 근무시간에는 혼자서 매장을 책임져야 했다.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것이 별로 없다. 명절에 일하는 것도, 이전의 평일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명절 즈음만 되면 이 때 만큼은 휴식이라는 생각에 한 껏 들떠서 서로에게 안부차 묻듯 '이번 명절에 어디 가냐?' 라는 물음을 주고 받았다. 그 질문에 출근으로 대답하면서부터 언젠가부터 명절에도 출근이 당연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고 남들 다 쉬는 명절에 일하는만큼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쯤되니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주휴수당이니 휴일수당이니 받지도 못하는 내 신세가 안타까웠다.

법도 법이지만 사용주와 아르바이트의 관계에서 사실 수당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당연한 나의 권리지만 아르바이트들의 삶은 법의 영역 밖에 있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대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괜히 수당이야기를 꺼냈다가 눈 밖에 나서 해고라도 되면 결국 나만 더 큰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한다고 해도 몇 개월이 걸리는 법적 절차에 결국에는 갑을병정 중 병이나 정쯤에 해당되는 아르바이트생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나는 직접 체험했다.

이러니 수당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는 힘들다. '그래도 명절인데'하는 마음으로 사장님께 조심스레, 쉴수 있는지 물어보자 '명절이라 편의점은 장사도 안되는데 나도 가게 문 닫아버리고 싶다'고 한탄하신다.

무슨 얘긴지 들어보니, 본사와의 계약에서 365일 문을 열어야만 하는 강제조항이 있어, 장사가 안되는 날도 문을 열지 않으면 매출이 떨어진 것에 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내용이 정확히 '벌금'인지는 직접 본게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사장님 역시 '본사'와의 계약에서 '을'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본인의 의사나 매출손익과는 상관없이 문을 열도록 강제하는 본사와의 계약은, 모두의 명절을 편의점 알바의 평범한 하루로 만드는 사장님을 낳는다. 명절의 반납은 알바가 하고 매출이 떨어지는 건 사장님이 감당하는데, 본사에서 감당하는 건 도대체 뭔지. 이러나 저러나 결국,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명절은 주머니도 마음도 마냥 풍성하지만은 않은 평범한 날이다


태그:#편의점, #아르바이트, #청년, #추석,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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