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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뷰(artiview) 프로젝트>는 문화예술단체 'Art&Culture Story 문밖세상'의 비영리사업으로, '예술가, 그리고 삶 : 예술로 살다'라는 주제로 예술가로의 길을 선택한 이들의 삶의 방식과 작업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돈걱정, 집걱정, 작업걱정, 세상걱정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자기 뜻을 펼치고 있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 기자말

따스한 봄날의 제주를 기대하며 내디딘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난 3월 중순, 꽃샘추위가 선사한 칼날 같은 바람이 작가를 만나러 가는 내내 뺨에 스쳤기 때문이다. 변덕이 죽 끓 듯하다는 제주의 날씨를 작가는 어떻게 이겨내며, 혼자 맨손으로 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마중 나온 작가와 함께 애월에 위치한 유수암 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온갖 궁금증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작업 현장에 도착하자 예상과 다른 외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분명 집을 짓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집이 아니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내에 따라 내부로 들어서자 건물의 몸통이 된 목재들이 남긴 톱밥 먼지가 자욱했다.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는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건네 오는 작가의 모습에서 정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완성되지 않은 공간에서 먼지 섞인 싸늘한 실내의 공기를 커피 한 잔으로 달래며 대화는 시작됐다.

3층 건물을 맨손으로 짓고 있는 남자

제주에서 2년째 집을 짓고 있는 조각가 정성웅
 제주에서 2년째 집을 짓고 있는 조각가 정성웅
ⓒ 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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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 그리고 제주로 이주하는 것이 유행인 요즘, 어쩌면 정성웅 작가의 제주 정착기는 별로 흥미롭지 못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제주를 선택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먼저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왜 하필 제주인가요? 이주는 언제 했나요?
"굉장히 많아요. 제주에 작가들이. 많이 알려졌듯이 근 몇 년 사이에 30, 40대 작가들이 제주로 많이 내려왔어요. 제가 제주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 전에도 이미 제주에는 많은 작가들이 있었죠. 그때도 제주로 오는 거에 별로 관심 없다가 언젠가 다시 방문을 했는데, '아 이젠 내려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모르겠어요. 꼭 제주여야 하는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제주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게 2012년도였어요.

홍성에 있던 집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그걸 판 돈으로 제주에 땅을 사서 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모든 작가들이 다 똑같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상과 꿈만을 좇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저 역시 다르지 않았고요. 이제 나이도 있고 부모님이 제주에 계시기도 해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제 욕심만 부리기엔 이젠 한계가 온 거에요. 그렇다고 다시 다른 일을 하거나 작품 활동을 놓는 건 절대 못하겠고, 결국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제주에서 맨손으로 2년째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그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집의 규모가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너무 큰, 예상 밖의 건물이었다. 무려 3층이나 됐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렇게 큰 건물을 혼자서 짓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초지종이 궁금해졌다.

- 집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크다. 어떻게 된 건가요?
"처음에는 집을 굉장히 작게 구상을 했어요. 단층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이 안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넣으려고 하다 보니 공간이 점점 커지게 됐고 결국 3층에 옥탑까지 올라가게 된 거죠. 그래서 짓는 기간 역시 예상과 다르게 점점 더 길어져서 2년을 넘기게 됐고요."

- 필요한 것들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죠?
"오롯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갤러리만을 운영하게 되면, 수입원이 없어져 생활이 힘들어지죠. 그래서 1층에는 갤러리 겸 차를 파는 공간과 작업실을 만들고, 2층에는 주거 공간, 3층에는 숙박 시설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규모가 커진 거예요. 하지만 차를 판다고는 해도 전문 카페는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해요. 그리고 1층의 한쪽 공간에는 작업실을 마련해둘 예정이죠.

그러니까 1층에서는 수입이 전혀 나질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2층 역시 주거 공간이다 보니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3층엔 수입원이 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계획한 거죠. 하지만 막상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면 거기에 시간을 많이 뺏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구상한 방법은, 아예 '테라스 하우스'를 만들어 버리기로 한 거죠. 즉, 3층을 통째로 빌려주는 콘셉트인 거예요. 그런 것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 짓다 보니 이렇게 규모가 커지게 된 거죠."

- 혼자서 집을 짓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자재를 나르는 것, 누가 잡아줄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목조건축으로 짓고 있어서 나무 자재가 많이 드는데, 이 집에 들어가는 것들은 보통 성인 남자 혼자서는 다 들 수 있는 무게이기는 해요. 나무 하나의 길이가 6미터쯤 되고, 무게는 약 20킬로 정도예요. 혼자서 드는 건 무리가 없지만, 건물이 3층이다 보니 자제를 들고 오르내리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2년 넘게 이러고 있으니까 백만 번도 넘게 오르락 내리락했을 거예요.

한 번은 위에서 떨어져서 살짝 다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제주의 날씨예요. 바람이 너무 심하거나 비가 오거나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중단해야만 하거든요. 작업 기간이 길어진 것에 가장 큰 몫을 한 게 제주의 날씨인 셈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 변화무쌍한 날씨에 적응하는 수밖에. 이게 바로 제주니까요."

건물의 외관, 집이라더니 3층 건물
 건물의 외관, 집이라더니 3층 건물
ⓒ 정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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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외벽에 보이는 'MOOTO'는 무슨 뜻인가요?
"영어로 보면 '무토'라고 읽히고 제 이름의 자음 모음을 풀어서 쓴 형태라고 보시면 돼요. 좀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대문자 'MO'는 '성', 'OTO'는 '웅'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오랫동안 써오던 서명입니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나다 들렀는데 구경을 좀 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문턱에 선 작가는 지금은 인터뷰 중이니 다음에 다시 들러주시라는 인사를 건네곤 자리로 돌아왔다. 왠지 그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 지금처럼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나요?
"네. 간혹 구경을 오곤 하죠. 점점 소문이 나서 조금 전처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들르는 분들이 있어요. 모르는 분들이 자꾸만 들어와서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혼자다 보니 안내를 할 수가 없어서 아예 문을 잠그고 위에 올라가서 일을 하기도 해요. 이런 건물을 혼자 짓는다니까 다들 너무 신기해하기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더욱이 2년 동안 이러고 있으니까 의도치 않게 이 동네에서는 좀 유명해졌죠. 사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많았고, 사람들이 자꾸만 방송국에 제보를 하려고 해서 말리느라 진땀을 뺀 적도 여러 번이에요."

- 그러면 에피소드도 많겠네요?
"이 근처에 공사장이 많다 보니 인부들도 많아요. 얼마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뒤쪽에 있는 인부들이 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제 얼굴은 몰라도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거든요. 한 분이 '저 집 혼자 짓는데'라고 하자 옆 사람이 '아 말도 안 돼. 저걸 어떻게 혼자 지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먼저 얘기를 꺼낸 분이 '아 진짜야. 내기 할래? 내기해'라면서 서로 투닥거리더라고요. '그게 바로 저에요!'라고 하기도 뭐하고, 제 얘기를 하는 걸 바로 옆에서 듣는데 속으로 웃음이 나와서 혼났어요."

그런데 혼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이 과연 경험 없이도 가능한 일일까? 더욱이 모르는 내 눈에도 주먹구구로 짓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라서 가능한 일도 아니고, 조각을 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일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과거를 좀 더 파헤쳐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집을 짓기 이전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는가?
"학부를 졸업한 이후에는 돈 버는 일을 하기도 했고, 학위 공부도 하고 작품 활동도 했어요. 원래는 서울 태생이지만 제주로 오기 전에는 홍성에서 지냈었죠. 작업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밖에서 인테리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걸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그랬어요. 당시에 SBS에서 하던 '해결 돈이 보인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쪽박집을 대박집으로 바꿔주는 방송이었어요. 그때 인테리어를 몇 번 맡아서 진행했던 적도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는 추억이에요."

건물의 내부 모습 1
 건물의 내부 모습 1
ⓒ 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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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에서도 집을 직접 지어서 생활했나요?
"직장 생활할 때 모아놨던 돈을 탈탈 털어서 홍성에 작은 땅과 그 위에 다 쓰러져가는 집을 샀어요. 완전 폐가나 다름없는 곳이어서 인테리어를 했던 경험을 살려 집을 직접 고쳐서 살았죠. 집을 수리하는 8개월 동안은 마당에 텐트를 치고 살았어요. 텐트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집을 고친 거죠. 다 고친 후에 거길 주거 및 작업공간으로 쓰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죠."

- 그러면 집을 직접 짓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요?
"사실 제주에 와서 이 집을 짓기 이전에 먼저 지은 집이 있어요. 바로 이 옆에 있는 집인데, 그 집을 친구랑 저랑 둘이서 지었어요. 친구네 장인어른께서 목조건축을 하시는 분이라 가르쳐주시는 대로 배우면서 지었죠. 그 집을 짓는 게 끝나면 제 집도 둘이서 함께 짓기로 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안 좋은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집을 짓게 된 거죠.

그렇게 친구 장인어른께서 가르쳐주신 것과 책을 보면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제 집을 짓기 시작한 거예요. 친구네 집을 지으면서 터득한 방법 이외에 그때 했던 실수들을 보완해서 지금의 집을 짓고 있는 중이죠. 사실 경험 없이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전 이전에 인테리어를 한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일머리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건물의 내부 모습 2
 건물의 내부 모습 2
ⓒ 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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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째 집을 짓고 있으면,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죠?
"홍성에서 8개월에 걸쳐서 폐가를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고쳐놓았던 게 신의 한 수였어요. 그 집이 가치가 조금 올라서 거길 판 돈으로 제주로 내려올 수 있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내려와서 집을 짓다 보니 그 돈으로는 턱도 없는 게 현실이었어요. 그래서 사실상 지금 집은 빚으로 짓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나중에 완공이 되면 빨리 벌어서 차차 갚아나가야겠죠."

작가에게 생기는 첫 번째 궁금증, 당연히 작품 활동일 것이다. 제주로 오기 이전의 작업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금도 집 짓는 일 이외에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 제주로 오기 이전에는 주로 어떤 작업을 많이 했나요?
"대학 다닐 때는 퍼포먼스를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졸업을 한 이후에는 회화 작업도 하고 흙 작업도 했죠. 그동안 해왔던 작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달팽이 가슴'이라는 작품이에요. 민달팽이인데, 달팽이집 부분이 여성의 가슴 모양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 또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그런 것처럼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현실로 끄집어내어 입체로 표현한 게 가슴 형상이에요. 저는 그런 의미로 가슴과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간혹 동료 작가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죠."

- 지금은 집을 짓느라 작품 활동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전 이 집을 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짓고 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죠.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래서 혼자 집을 짓게 된 거지만, 작업하는 사람이다 보니 성격이 혼자서 하는 게 편하기도 해요. 대체로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야행성이 많고, 남이 있으면 작업을 못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저도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작업을 하고 그러다 보니 이게 익숙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써보니까 성에 안차기도 하고요. 그렇게 제 작업방식에 따라 이 집을 짓고 있기에 제 작품이나 다름없는 거죠."

- 완공 이후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요?
"아마 가슴과 관련된 조형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소재 거리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이젠 제주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들을 또 다른 형태의 작품들로 녹여내겠죠. 아직은 그게 어떤 결과로 드러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미래에 하게 될 작업보다는 현재 만들어나가고 있는 작품, 즉 이 집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이제 '진짜 제주 정착기'를 써 내려갈 차례

집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꿈꾸는 집이 완성된다면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질 터. 작가는 완공 이후에 어떠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을까? 앞으로의 삶을 위한 단계별 계획 중의 하나였을 집짓기. 그 목표가 달성된 이후의 작가의 삶, 즉 진짜 제주 정착기가 궁금해졌다.

- 집을 완공한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집이 완공된다면 주거, 작품 활동, 경제 활동의 삼박자가 이 공간에서 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 첫 번째는 제주 사람들 그리고 작가들과 함께 어우러져 진짜 제주살이, 마을살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 짓기에만 몰두하느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제주의 속 살결을 가끔씩 여행을 통해 느껴보고 싶다. 두 번째는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다. 집 짓는 것에만 몰두하느라 한동안 집중하지 못했던 개인 창작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나 이외의 다른 작가들과도 함께 어우러져 전시나 재밌는 일들을 벌여보고 싶다. 또한 1층 갤러리에서는 어머니께서 큐레이터 시절부터 소장해온 샤갈이나 운보 김기창의 작품 등 많지는 않지만 유명한 작가의 원작들을 상설전시를 통해 선보일 기회도 마련하고 싶다. 마지막 세 번째는 3층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즉 이 건물로 삶의 자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것들을 지속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부모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본 사람들. 세상에 나온 이래로 우리는 각자의 생이 다할 때까지 '자기 자신'이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나가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모두가 창작자이고, 예술가일지도 모를 일이며 고단하게만 느껴지는 우리네 삶이 곧 예술일지도 모른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 의지를, 예술적 삶에 대한 지향성을 그렇게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말쯤에 또 다시 제주를 찾아야겠다. 완성된 작품도 관람할 겸, 새롭게 펼쳐질 작가의 제주 정착기에 스토리를 더할 손님이 되어 다시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봐야겠다.

<조각가 정성웅(1973)>
- 원광대학교 조소과 졸업
- 한서대학교 예술대학원 수료
2001 7월전 한서갤러리
2002 동 전 한서갤러리
2002~2004 MOOTOart 대표
2004~2009 LG데코빌 근무
2009 대한민국 르네상스초대전 단원갤러리
2010 내포현대미술제 (사)한국미협 홍성지부
2010 (사) 한국미술협회 홍성지부 조각분과위원장
2011 당진사랑미술제 (사)한국미협 충남도지회
2011 (사)한국미술협회 홍성지부 사무국장
2012~현 제주활동.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Art&Culture Story 문밖세상' 대표입니다. 본 기사는 변희정의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서 동시 발행됩니다.



태그:#조각가 정성웅, #아티뷰 프로젝트, #예술가 인터뷰, #문밖세상, #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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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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