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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군인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사전투표하는 군인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군인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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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20대 청년들이 투표를 안 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일명 '20대 개새끼론'이다. 조금 오래된 이론인데 나는 최근에 알았다. 궁금해서 관련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니 이 이론을 반박하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자료를 찾던 도중 갑자기 투표하는 20대 청년(형, 누나)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왜 투표 안 하는 사람들 때문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어야 하지?'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1~2년 뒤에 나도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생긴다. 그런데 내 또래 친구들 중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왠지 미래에 20대 투표율이 0%에 가까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표율이 낮으면 나도 욕먹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개새끼론'에 대한 반박자료가 큰 위안이 됐다. 반박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았다. 어떤 자료는 기성세대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386'과 '꼰대'라는 표현이 글 여기저기서 보였다. '우리 아버지도 386인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개새끼론을 비판하는 내용은 공감이 갔지만 아버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개새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다. 그러나 이런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에게 진심을 담아서 개새끼라고 부르진 않을 것이다(개새끼! 는 너무 거친 표현 같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적응이 안 된다. 왜 하필 개새끼일까. 아래에 글을 쓸 때는 '개새끼론'을 '책임론'으로 순화해서 썼다).

나는 '20대 책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투표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음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으며 노인 자살률은 세계 1위이다. 이는 정치인이 실제로 투표율이 높은 연령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정치인이 투표율 높은 60대 이상 고령층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면 적어도 노인 문제 분야에서 '1위라는 불명예'를 얻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투표하는 유권자를 위해 일한다'거나 '정치인은 투표율이 낮은 연령층의 눈치를 안 본다'는 투표 독려 구호가 나에게는 유쾌한 내용이 될 수 없다. 나는 투표를 하고 싶어도 투표할 수가 없다. 선거권 연령인 만 19세보다 한 살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 구호가 사실이라면 투표율이 0%인 만 19세 미만 국민에게는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투표율이 높고 낮음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과 상관이 없다. 애초에 책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관하는 정치인에게 있다.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청렴하지 못하고, 세대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약속을 까먹거나(?) 깨트리는 정치인에게 있다. 정치인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라고 권력을 위임한 존재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안 하니까 지금 나라가 엉망이 된 것 아닌가?(물론 열심히 일하는 훌륭한 정치가도 있다. 하지만 그 수가 적을 것이다. 훌륭한 정치가가 무능한 정치인보다 수적으로 더 우세하다면 '헬조선'이라는 탄식과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어렵다.)

처음부터 정치인이 투표를 많이 한 연령층의 눈치를 본다는 전제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정치인은 투표하는 국민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 투표를 했든 안 했든, 투표권이 있든 없든, 영남 출신이든 호남 출신이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일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각 정당의 이념과 후보의 생각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은 반드시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나를 뽑지 않은 국민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노인을 위한 정치인, 청년을 위한 정치인, 호남을 위한 정치인, 영남을 위한 정치인, 유권자를 위한 정치인... 모두 필요 없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만 19세 미만 국민부터 60대 고령 국민까지 모두를 위해 봉사할 정치인이 필요하다.

'헬조선'은 투표율이 낮은 20대의 책임이 아니다. 투표하라고 훈계하는 기성세대의 책임도 아니다. 그러나 투표를 꼭 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투표는 유권자 자신의 권리이며 투쟁을 통해 어렵게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투표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오직 나만을 위한 권리다. 따라서 이 권리 행사는 나 이외에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간섭받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단순히 투표 여부만 놓고 봤을 때 그것은 자신이 가진 권리를 행사하느냐 안 하느냐 문제일 뿐이다. 단순히 투표를 하는 행위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투표용지 안에서 어떤 곳에 도장이 찍혀 있느냐 하는 문제다.

투표만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투표율이 높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운명은 다수 국민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다수 국민의 선택은 나의 한 표로 완성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시작은 단순하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면 항상 선택해왔던 대로,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물론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아서 항상 해왔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지하는 사람이 없거나 정치가 싫은 사람은 게으르고,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부도덕하고, 무능하고,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기가 했던 공약을 까먹거나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떨어트리러 투표장으로 가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정치가 조금 더 깨끗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늘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길 바란다. 투표장에 가서 우리가 위임한 권력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정치인들에게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길 희망한다.


태그:#총선,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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