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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막 내부 모습. 이런 가격이라면 장바구니를 채우는 건 시간문제 같아 보입니다.
 프리막 내부 모습. 이런 가격이라면 장바구니를 채우는 건 시간문제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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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2유로(약 2600원), 청바지 9유로(1만1800원)... "어머 이건 사야 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곳, 유럽 최대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프리막(Primark)'이 독일 라이프치히에 들어왔습니다. 독일에서만 20번째 매장입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다음 달 방값도 겨우 마련하는 처지이기에 티셔츠 한 장 사러 가면 몇 번을 들었다 놨다가 결국 포기하곤 하거든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패스트패션은 주머니 사정이 궁한 학생과 시민 모두에게 유용한 시스템입니다.

"패스트패션 구입 대신 옷 교환하기" 행사를 알리는 페이스북 페이지
 "패스트패션 구입 대신 옷 교환하기" 행사를 알리는 페이스북 페이지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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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막이 간판을 내걸고 한창 공사 중일 때 독일 SNS에서는 흥미로운 이벤트 공지가 떴습니다. "Kleider tauschen statt Fast Faschion kaufen (패스트패션 사는 대신 옷 교환하기)"라는 행사입니다.

독일 그린피스 라이프치히 지부와 라이프치히 대학 내 커뮤니티인 'Oikos e.V'가 함께 기획했습니다. 행사는 꽤 도발적입니다. 프리막이 오픈하는 4월 7일, 프리막 바로 옆에 있는 광장에 터를 잡았습니다.

행사 게시판에는 시작도 하기 전에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좋은 취지라며 응원하는 글부터 한 브랜드를 겨냥하는 행사를 비판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왜 H&M 앞에서는 안 하느냐, H&M 앞에서도 ZARA 앞에서도 똑같이 해야 한다."
"누가 입었는지도 알 수 없는 옷을 바꿔 입을 바에는 싸고 시크한 새 옷을 사 입겠다."

프리막 옆에 벌어진 행사 "패스트패션은 쓰레기통을 위한 옷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문을 연 패스트패션 '프리막' 오픈날.
 독일 라이프치히에 문을 연 패스트패션 '프리막' 오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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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막 오픈 날, 문을 열기 3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프리막을 기다린 건 저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300여 명이 몰려 들어갔습니다.

2유로 하는 새 옷, 8유로(1만5천 원)면 살 수 있는 어여쁜 구두, 반짝이는 장신구부터 인테리어 용품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입구에 놓인 장바구니는 프리막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싼 가격에 이 옷 저 옷 집어 넣다 보면 거대한 장바구니가 가득 차는 건 일도 아닙니다. 라이프치히 시내에는 이제 프리막 종이가방을 든 이들을 사방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프리막 건물 건너편 광장에선 옷 바꾸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라이프치히 곳곳에서 대안 패션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패스트패션, 쓰레기통을 위한 옷"
"싸다, 하지만 사랑은 없다"

피켓을 들고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도 벌입니다. 주최 측이 마련한 박스 조각에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써서 자신의 의견을 나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옆에서는 반짇고리와 재봉틀을 두고 직접 옷을 수선하는 곳도 마련되었습니다. 프리막 안에서의 쇼핑도, 프리막 밖에서의 옷 나누기 행사도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삐이익" 쇼핑 방해하기 위해 화재경보기 누르기도

옷 교환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옷 교환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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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교환 행사 한 켠에는 직접 옷을 수선할 수 있는 곳도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옷 교환 행사 한 켠에는 직접 옷을 수선할 수 있는 곳도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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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익"

프리막에 갑자기 요란한 알람이 울렸습니다. 화재 경보입니다. 독일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 건물을 나와야 합니다. 4층짜리 거대한 건물에서 쇼핑하던 고객들과 직원들 수백 명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I ♥ Primark"이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직원 백여 명이 밖으로 나오자 분위기가 좀 쫄깃(?)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길래 옷 교환 행사에 대응해 프리막이 고용한 '용역'인 줄 알았습니다.

옷 바꾸기 행사를 여는 이들과 프리막 직원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서로를 노려(?)봤지만 다행히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화재 경보는 그린피스 활동가 중 한 명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당연히 벌금을 물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패스트패션, 쓰레기통을 위한 옷"
 "패스트패션, 쓰레기통을 위한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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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 업체들도 그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리막 홈페이지에는 옷이 왜 저렴한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환경이 열악하거나 질 나쁜 옷을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통 과정과 광고 비용을 줄여서 이런 가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진실인지) 알 수 없지요."

옷 바꾸기 행사를 기획한 그린피스 활동가 신디(Cindy)의 말입니다.

"우리는 프리막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패스트패션은 너무 싼 가격에 불필요한 소비를 낳고, 결국 쓰레기를 양산하는 그 흐름에 반대하는 겁니다. 패스트패션뿐 아니라 다른 대안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피켓을 적어 프리막 앞에 섰습니다. 프리막에 들어가려던 중년 여성은 바로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행사 소식을 듣고 "맞아요. 당신들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해요"라고 말하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독일어(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율리아나(Juliana)도 동료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습니다.

"옷 바꾸기 행사에 왔는데 아무나 피켓을 쓸 수 있다고 하길래 이렇게 하고 있어요. 제가 아는 한 사람은 두 달에 한 번씩 옷장을 정리하면서 수많은 옷을 버리거든요. 프리막의 트레이드 마크인 저 거대한 종이 가방, 정말 별로지 않나요."

이들이 든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너희들 정말로 더 필요한 거야?"

패스트패션,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싸고 질 나쁘지 않다"는 사람도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피켓을 써서 프리막 앞에 섰습니다. "너희들 정말로 더 필요한거야?"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피켓을 써서 프리막 앞에 섰습니다. "너희들 정말로 더 필요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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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막에 들어서는 이들은 불편함도 느낍니다. 어떤 손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별로 보기 편하진 않네요. 전 학생인데 여기 가격도 싸고 질도 나쁘지 않아요. 다 입어보고 사기 때문에 한 번 입고 안 입거나 하지 않고요.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생각이에요."

독일에서는 옷차림, 신경 안 쓰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평소 거적때기 같은 것만 입고 다니는 저도 한 번쯤은 새 옷을 사 입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프리막의 갈색 종이 가방을 들고나오는 일, 저 또한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프리막 오픈과 동시에 열린 옷 바꾸기 행사는 많은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피켓이나 구호로만 외치지 않고 직접 대안을 보여주는 생활 속의 작은 정치도 보입니다.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프리막은 건재하겠지만, 동시에 이 대안적인 삶도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피켓을 들었습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피켓을 들었습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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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패스트패션, #옷, #프리막,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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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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