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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임금, 최장시간 노동까지. 이후 방송작가들은 방송작가 유니온을 통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방송작가의 노동 환경과 법제도 개선에 나서고자 합니다. 방송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방송계는 어땠을까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기자의 말

방송작가의 삶은 고단하다
 방송작가의 삶은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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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막내 작가 시절에 다니던 외주 제작사는 그래도 출퇴근 시간이란 게 있었다. 출근 시간 오전 9시 30분, 퇴근 시간 오후 6시 30분. 면접 당시에 그런 게 있긴 있다고 했다.

메인 작가 1명, 막내 작가 2명인 시스템이었는데 30분, 50분짜리 ST(스튜디오)+VCR(녹화) 정보 프로그램과 30분짜리 ST+VCR 의학 프로그램을 작가 셋이서 맡아서 했다. 50분짜리 정보 프로그램은 7분쯤 되는 VCR 6개로 구성됐고, 분량을 줄이고 재편집해서 30분짜리 정보 프로그램에 방영했다. 참고로 3개 다 위클리였다. 다른 팀과 격주 제작 따윈 없었다. '이게 많은 건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절대로 메인 작가 1명, 막내 작가 2명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다.

입사하고 6개월간 내가 했던 업무를 일일이 적어보면 이렇다. 아이템 정리와 섭외, 전화 취재, 질의서 작성, 자료 정리, 출연자 일정, 촬영 일정 정리, 촬영 구성안 뽑기, 제작팀에 전달하기, 재연배우와 사례자 역할 섭외, 타임 체크, 프리뷰, 자막, 스튜디오 시간 잡기, 출연자 케어하기, 프롬프터 작업, 큐카드 만들기 등이다. 모든 막내 작가가 그렇듯 1인 다역을 도맡아서 했다. 거의 매일 해야 하는 기본 업무였다. 이렇게 잡다한 일들을 하다 보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퇴근 시간을 맞추려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는데, 일은 끝없이 쌓여 갔다. 퇴근 시간 맞추려고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안쓰러워하기보단 '어차피 퇴근 못 할 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할 일을 마쳤지만 눈칫밥 보며 퇴근 못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제시간에 퇴근하면 열심히 일 안 하는 아이가 된다고 할까.

녹화 날은 당연히 야근, 아니 밤샘이다. 50분짜리 정보 프로그램 녹화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대충 마무리 짓고 스튜디오로 가야 한다. 퇴근 시간이 맞물려 회사 차로 스튜디오까지 가는데 1시간 반이 걸린다. 지하철로는 1시간 남짓. 빨리 가서 프롬프터를 올려야 하기에 난 늘 지하철에 발을 올렸다. 교통비는 당연히 내 지갑에서 나간다. 

8시를 조금 넘겨 녹화가 끝나면 조연출과 PD는 녹화 영상을 받아서 회사에 가야 한다. 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자막 작업을 해야 했다. 차비를 아끼려 조연출, PD와 함께 녹화 영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보면 9시. 회사에 돌아가면 10시다. 그때부터 나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막차가 끊길까 싶어 자막과 전쟁을 치르고 하루를 마감한다.

밤 10시, 나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운 좋은 날엔 막차 끊기기 전에 타고 가고, 일이 쌓여 있거나 메인작가가 시킨 일이 많으면 새벽 2~3시쯤 끝나는데 회사에서 자는 게 더 났다. 작은 외주 제작사인지라 샤워 시설 따윈 없지만 찬물로 머리 감는 게 익숙해진 터.

괜히 집에 갔다가 늦잠 자서 출근 시간 9시 30분을 1분이라도 넘기면 20명이 넘는 직원들의 커피를 사야 했다. 편의점에서 천 원, 천오백 원하는 커피를 산다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던 나에겐 그것조차 큰 지출이었기에 그냥 회사 소파나 간이침대에서 자는 게 마음이 편했다.

퇴근했음에도 프리뷰 영상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는 밤이건 새벽이건 기다렸다가 바로 작업해서 넘겨야 한다. 그럴 때는 내 시간이 없다. 영상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5분 대기조'라고 할까. 주말에 못다 한 일을 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주 5일 근무제 따윈 작가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환경 다큐 2부작을 겸해서 했을 때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해외 자료 조사부터 국내 사례 조사, 촬영지, 전문가 섭외, 기존에 하던 업무도 많은데 '경험해봐야 한다'며 다큐까지 시켰다. 같이 일하던 막내 작가와 함께했지만 그래도 기존 업무량에서 플러스 알파가 되는 것이라 정말 힘들었다.

해외 촬영 전 국내 촬영을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프리뷰 양도 어마어마했다. 프리뷰어도 따로 구하지 않았다. 오직 막내 작가 두 사람의 몫이었다. 약 1000페이지의 프리뷰 노트와 함께했다. 어떤 외주 제작사는 프리뷰어 비용 아끼려고 막내 작가를 뽑는다고 한다. 다큐까지 했을 때는 정말 '폐인'처럼 살았다.

서브 작가가 됐을 때는 기본 업무에 촬영 구성안과 편집 구성안, 더빙 대본, 해당 아이템 스튜디오 대본까지 담당해야 했다. 나아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메인 작가와 막내 작가 사이에 껴서 일을 두 번씩 했다. 고작 10만 원 더 받는다는 것과 나를 따르는 막내 작가가 생겼다는 것. 야근, 밤샘이 조금 줄었다는 것. 그걸 위안으로 삼았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외주 제작사에서 50분짜리 정보 프로그램을 막내 작가와 나, 이렇게 둘이서 하고 있다. 운 좋게 빨리 메인 작가가 됐다. 매주 나가는 아이템은 8개. VCR 한 개에 5분 30초. 하루에 촬영은 두 개씩 잡혀 있다. 매일 촬영 구성안을 2개 이상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난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상주 작가다. 월요일엔 화요일 촬영 구성안 2개. 화요일엔 8개 아이템의 자막과 수요일 촬영 구성안 2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아이템 회의도 하고 취재도 함께한다. 그러다 보면 밤 9시는 금방 된다. 주말엔 녹화 대본을 쓰고, 8개 아이템의 더빙 대본을 쓴다. 그러다 보면 주말이 훌쩍 간다. 주말에 약속이라도 있으면 평일 하루 이틀은 새벽까지 일해야 한다. 야근, 주말 수당은 역시 없다.

마음 같아서는 대충 써서 금방 끝날 수도 있지만,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내가 구성한 글이 영상을 통해 전파를 타고 나가 몇 십 분 동안 사람들을 자리에 머물게 한다는 생각과 누군가는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방송 작가를 계속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이 된다는 느낌이 들면 정말 설레고 기쁘다.

가치 있는 일이지만... 5년째 첫 월급은 80만 원

그러나 억울한 건 역시 페이 문제다. 일한 만큼의 대가. 근로자라면 누구나 그 대가를 받는다. '방송 작가는 페이를 얼마나 받아야 타당한 걸까?'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공장에 가서 시간제로 일했거나 다른 알바를 했다면 지갑이 좀 두둑해졌을 수도 있는 오랜 근무 시간.

다른 직장인들은 한 달 열심히 일해 그 보상으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는다. 수당도 받겠지. 수당은 작가가 넘봐선 안 될 단어다. 예를 들어 월급이 아닌 주급으로 받는 작가는 주당 40만 원을 받았다면 특집이 잡히거나 한 주 재방을 갔을 때, 월 160만 원 받다가 월 120만 원을 받는다.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다. 그 일주일은 우리 작가에게 없는 일주일이던가? 그 노동 시간은 왜 쳐주질 않는단 말인가? 기획안을 쓰고 방송이 나가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방송이 나가야 돈을 줄 수 있다는 법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나는 막내 작가였을 당시, 모두 그렇듯 첫 월급이 80만 원이었다. 3개월 뒤 100만 원으로 올려줬는데, 실수령액은 97만9443원이었다. 다들 그렇게 받는다기에 돈을 받으면서 배우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에 그냥 입 다물고 일만 했다. 지금 막내 작가들도 그러하겠지.

5년이 지난 지금도 함께 일하는 막내는 아직 내가 막내 시절 받던 돈과 같다. 첫 월급 80만 원. 3개월 뒤 100만 원. 최저 임금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노동의 강도와 노동 시간을 따져봤을 때, 이게 과연 타당한 액수일까? 하루빨리 우리 방송 작가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에 한해 중복 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방송작가유니온, #야근, #프리뷰, #막내작가, #방송작가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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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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