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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987년 평민당 대선후보로 유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1987년 평민당 대선후보로 유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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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서 국민의당 돌풍이 거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지역에서 8곳 중 7곳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8석 전체를 다 얻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중립적인 여론조사 전문가들 내에서도 호남 전체 28석 중에서 국민의당이 20석을 넘을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호남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민의당 돌풍은 하나의 명백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의 국민의당 돌풍을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나타난 평화민주당(약칭 평민당) 돌풍과 비교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민의당과 평민당을 동급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와 같은 비교가 매우 문제가 많다고 본다. 여기에는 2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볼 때 평화민주당 돌풍과 국민의당 돌풍을 동일시하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교는 김대중 지지층과 노무현 지지층, 친노 운동권과 호남을 분리하려는 보수 세력의 정치적 이간책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평민당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정당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평민당의 성격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평화민주당은 1987년 11월에 김대중이 주도하여 창당된 정당이다. 그 해 12월 실시된 13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평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지만 3등으로 낙선하였고 그 결과 평민당은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김대중은 재야 세력을 대거 영입하여 당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성공하였다. 그래서 1988년 4월에 실시된 13대 총선에서 호남 지역을 석권하고 서울에서 선전하여 제1야당이 되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1야당인 평민당은 정국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하자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이에 김대중은 1991년 4월 이우정, 신계륜 등이 이끄는 재야 세력인 신민주연합과 함께 신민주연합당(신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그 해 9월에는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했던 잔류 민주당의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등과 합당하였고 그 결과 민주당이 탄생하였다. 이렇게 해서 1987년 11월에 창당된 평민당은 1991년 일련의 외연 확장과정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민주당으로 진화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평민당의 정당사적,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평민당은 현재 민주당 계열 정당의 정체성 및 조직적 기반을 구축한 역사적인 정당이다. 먼저 정체성은 당명인 '평화민주'에서 핵심적으로 부각된다.

김대중이 민주화를 이끈 인물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인정받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분단모순 해소와 한국 민주화 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이 바로 정치적 라이벌인 김영삼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였다.

김대중이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3단계 통일론, 대중민주제체, 대중경제와 같은 내용을 대선 후보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당시 김대중은 당내 비주류였다. 그 뒤에 유신-5공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1961년 이후 분단모순 해소-민주화라는 양대 가치를 당 정체성의 전면으로 내세운 정당은 평민당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민당은 호남 + 운동권 + 영남민주화 세력이 결합한 정당

그리고 평민당은 현재 민주당 계열 정당의 조직적 기반을 구축한 정당이었다. 초기 평민당을 보면 김대중과 재야의 결합이라는 특성이 확인된다. 이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비타협적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세력인 재야의 공동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정당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재야는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형성된 시민사회운동 세력이다. 재야(在野)라는 한자어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야권에 속해 있지만 재야라고 하면 정치세력이 아닌 시민사회 세력인사들을 지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야는 민추협과도 다르다. 1984년 5월에 결성된 민추협은 기존 야권 정치인들이 관제야당인 민한당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그래서 민추협은 반(半) 그리고 준(準) 정치결사체 성격을 띤다. 이렇게 재야와 민추협이 결합하여 상층 단위에서 민주화 세력 지도부가 형성된 것이다.

재야는 선명성과 명분을 중시하며 비타협적 성향이 강했다. 그렇다보니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가장 큰 탄압을 받고 있던 김대중과 정서적, 인간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김대중이 분단모순 해소를 중시하기 때문에 재야는 정치적 지향점 측면에서도 김대중에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재야 세력 대부분이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하고, 그 뒤 13대 총선을 앞두고 평민당에 대거 합류하게 된 것이다. 재야의 합류는 그동안 시민사회 세력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비타협적 민주화 세력이 정치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뜻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평민당은 호남과 운동권이라는 민주당 계열 정당의 기본적 지지 기반을 구축한 정당이다. 또한 평민당은 중간에 신민당이라는 과도기적 단계를 거치기는 했지만 결국 1991년 9월에 잔류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서 민주당으로 질적인 도약을 했었다.

잔류민주당은 영남 민주화 세력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결국 평민당은 호남 + 운동권 + 영남 민주화 세력 등의 결합을 이뤄낸 것이다.

현재 민주당 계열 정당의 중심적 지지기반을 나눠 보면 호남, 운동권(광의의 친노에 해당), 영남민주화 세력(협의의 친노)이다. 그러므로 평민당은 재야를 비롯해서 영남지역 민주화 세력의 결합까지 이뤄낸 정당으로서 전국 정당화의 토대를 쌓은 정당이다. 평민당을 흔히 호남당이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평민당의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사실 평민당은 현재 민주당 계열 정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민주당 계열 정당은 1955년 결성된 민주당을 당의 뿌리로 인식한다. 그래서 작년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민주당 창당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맥락과 내용을 보면 1987년 결성된 평민당이 현재 민주당 계열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더 많다. 평민당은 그 정도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 대단한 정당이다. 그래서 평민당은 앞으로 학문적으로도 재평가를 받아야 할 정당으로 판단된다.

평민당과 국민의당이 다른 이유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7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진접 농협 앞에서 남양주을 표철수 후보 지원 유세에서 어린이를 안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7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진접 농협 앞에서 남양주을 표철수 후보 지원 유세에서 어린이를 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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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볼 때 국민의당이 그와 같은 위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선 노선 및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자신들이 낡은 진보라고 규정하여 극복의 대상으로 지목한 더민주와 대비된 뚜렷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제3당체제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낡은 진보를 대체하겠다는 당의 비전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당의 기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국민의당은 평민당이 구축해놓았던 기반 중에서 운동권과 영남민주화 세력을 제외한 호남의 지지에 근거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안철수 대표 외 당선자 배출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그리고 지지의 질적인 측면 역시 평민당과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현재 기존 야권의 주류인 친노 운동권 세력들의 한계에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이 그 대안으로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지 정도는 과거 평민당의 지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당시 평민당에 대한 지지는 적극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지금 호남에서의 국민의당 지지는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한 여론이 대안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수렴된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호남에서도 우세하기는 해도 절대적 수준은 아니며 그 여론이 수도권으로도 넘어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기반의 측면에서 보면 국민의당은 평민당과 비교하기 힘들다.

이렇게 볼 때 당의 정체성 및 비전 그리고 조직적 측면에서 볼 때 국민의당과 평민당은 비교대상이 못된다. 두 당의 위상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의 이간책 조심해야

그리고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 그 동안 호남은 평민당 이후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러므로 민주당 계열 정당의 한 뿌리인 국민의당를 지지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왜 이 시점에서 '평민당'이 호명되는 것일까?

그건 평민당이 김대중을 상징하는 정당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김대중이 여러 정당에 관여했지만 평민당은 김대중 색채가 가장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정당이다. 13대 대선에서 한복을 입고 유세를 하던 김대중 총재, 13대 총선 당시의 황색 돌풍 등 평민당은 김대중만의 색채가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민당을 국민의당과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어 더민주와 대립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김대중 지지층과 노무현 지지층을 분리시키고, 친노 운동권과 호남을 분리시키려는 보수세력의 의도에 결과적으로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부 종편을 위시한 보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친노-호남 사이의 분리를 시도하는 정치적 이간책을 오랜 기간 써왔다. 이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야당의 주류인 친노 운동권 세력들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보수 세력의 이간책에 부화뇌동하는 반노 세력들의 정치적 책임 역시 매우 크다.

지금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과 이데올로그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김대중의 평민당과 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한 매우 무리한 주장이며 명백한 견강부회다. 또한 이는 보수 세력의 정치적 노림수에 스스로 말려드는 것이다. 작은 그림이 아니라 큰 그림을 봐야만 한다.

필자는 평민당의 역사적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평민당의 역사적 위상과 비교하기 힘든 국민의당이 자신들의 위상을 평민당에 놓고 말하는 것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국민의당은 국민의당으로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평민당을 끌어들인다면 이는 김대중과 평민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밝혀둔다.

덧붙이는 글 |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국민의당, #평민당,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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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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