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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임금, 최장시간 노동까지. 이후 방송작가들은 방송작가 유니온을 통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방송작가의 노동 환경과 법제도 개선에 나서고자 합니다. 방송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방송계는 어땠을까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기자의 말

방송작가의 삶
 방송작가의 삶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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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준다는 모기업 사원이었다. '꿈을 좇으려거든 대기업에서 받는 복지와 임금이 더 맞지 않겠느냐'는 조언이 난무했지만 퇴사를 결심했다. 내 꿈은 방송작가였다.

초봉 3천만 원. 신입사원이었지만 대기업 초봉치고 높은 연봉은 아니었다. 재직 당시 수습 기간은 160만 원의 임금을, 이후론 180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물론 세후이며 상여금은 별도로 두 달마다, 성과급은 반년마다 들어왔다. 명절 보너스도 있었다.

당연히 4대 보험 대상자였고 13월의 월급인 연말정산은 두둑이 들어왔다. 직원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 식사는 세 가지 이상의 메뉴가 나왔다. 이것도 당연히 무료였다. 나열하기도 숨찬 수많은 복지 혜택은 내게 당연했다. 나는 대기업에 재직 중인 사원이었으니까. 모두 방송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뒤 방송아카데미를 찾았다. 수강생의 최종 목표는 하나로 수렴한다. '취업'. 하지만 현직 작가로 구성된 강사진은 말한다. 본사만 찾지 말라, 봉급 따지지 말라, 외주 제작사에서 낮은 봉급을 받고 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견뎌야 한다.

방송아카데미를 수강하며 막내 작가로 수행해야 할 뚜렷한 업무도 파악하지 못한 내가 배운 것은 한 가지였다. '더럽고 치사해도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 방송작가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다. 방송작가로서 얻을 수 있던 즐거움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방송을 만들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여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즐거움.

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작가로 일을 시작하며 그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직접 아이템을 찾고, 출연자를 섭외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자막을 적고. 내 손으로 만들어낸 방송이 전파를 탔다. 선배의 칭찬과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오는 반응에 일희일비했다. 즐거움은 끝도 모르고 부풀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고통이 즐거움을 앞섰다.

매일 밤샘 근무했지만 월급은 고작 100만 원... 즐거움 앞선 고통

막내 작가는 월급으로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3개월간은 수습 기간이라는 명목으로 80만 원을 받았다. 기본업무는 필수, 밤샘은 기본, 주말 내내 작성해야 할 프리뷰는 덤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모기업이었다면 추가 수당을 요구할 수 있는 업무량이었지만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모기업에서조차 눈치를 보며 수당을 올리는 일이 빈번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방송작가들은 눈치 볼 기회조차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야근수당이라니. 밤샘업무는 방송작가의 '덕목'이 아니던가. 막내 작가는 감히 이 '덕목'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 꿈에 취한 어린양은 생각했다. '이는 당연한 처우이며 더럽고 치사해도 견뎌야 하는 현실'이라고.

수습 기간이 지난 이후에야 온전한 월급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와중에 3.3%의 세금도 내야 했지만, 월급이 100만 원으로 올랐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폭력적인 노동 착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알게 된 것이다. 원래 그렇다. 모두가 그렇다. 방송작가는 원래 모두가 그렇다.

상여금, 성과급은 들어본 적도 없다. 방송작가는 노동에 대한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부가가치는 물론이요, 실제 노동 가치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식대는 당연하다는 듯 제공되지 않는다. 막내의 끼니를 책임질 선배가 부재할 경우 식비 지출은 고스란히 막내의 몫이다. 삼시 세끼 다양한 메뉴가 무료로 제공되던 모기업에서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근무하는 제작사의 회계 장부가 궁금해졌다. 과연 이곳에 복리후생비라는 계정과목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열정페이 당연한 사회지만... '100만 원 작가'로 남지 않을 겁니다

방송작가 유니온
 방송작가 유니온
ⓒ 방송작가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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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만큼 돌려받는 것은 당연하다. 열정페이가 만연한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련의 모든 것'들은 실은 아주 당연하다. 방송작가 유니온은 이 당연한 권리를 찾고자 한다. 단순무식하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장 실질적이며 합당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작가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시도엔 결과가 따를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100만 원짜리 작가로 남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에 한해 중복 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방송작가, #방송작가유니온, #언론노조, #막내작가,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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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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