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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의 전사 책 표지
ⓒ 이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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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전사 3>.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토론 전쟁에 휩싸였다. 바로 '필리버스터'라는 이름의 무제한 토론이 그것이다. 3월 2일 현재 시각을 기준으로 186시간 동안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필리버스터'라는 이름은 낯설다. 사전을 찾아보니, 원래는 스페인어로 '해적 사략선(私掠船)'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데 16세기에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단다. 1854년 미국 상원에서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 진행을 방해한 것을 가리키게 되면서 정치적 의미의 용어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던 고 김대중 대통령이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최장 기록은 1969년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10시간 15분 동안 발언한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의원 발언 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폐기됐으나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으로 살아나게 됐다. 다수당에 유리한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소수당에 유리한 필리버스터를 함께 도입한 것이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실시할 수 있고, 시작하면 의원 1인당 1회에 한해 토론자로 나설 수 있으며, 더 이상의 토론자가 없을 경우 무제한 토론은 종결된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을 원하거나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종결에 찬성해도 토론은 종결된다.

'필리버스터 정국'에 어울리는 책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라는 낯선 제도가 47년 만에 잠을 깨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국정원 강화법 또는 전국민 사찰법이라고도 불리는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을 둘러싼 야당의 저항이 국회 안에서 필리버스터로 이어지는 동안,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시민 방청객이 몰리고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회방송이 검색어에 떴으며 국회 밖에서는 '시민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토론 교육장이 됐다.

이 책, <토론의 전사 3>이 이토록 시의적절할 수가! 토론 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 온 저자의 혜안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유동걸 교사가 쓴 <토론의 전사> 시리즈는 모두 세 권으로 이뤄져 있다. 2012년에 1권 '디베이트의 길을 열다'가 나왔고, 2014년에 2권 '디베이트의 방법을 찾다'가 출간됐다. 그리고 올해 2016년 벽두에 '토론, 교실에서 꽃피우다'라는 부제를 달고 그 세 번째 권이 나옴으로써 <토론의 전사> 시리즈가 완간됐다. 2009년 '토론의 전사'라는 교사들의 토론 연구 모임을 꾸려 학교 현장에 토론 교육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 온 지 어언 7년 만에 거둔 성과다.

1권은 부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토론의 필요성이라는 화두를 잡고 토론의 철학과 토론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세 등을 다룬다. 1권이 일종의 입문서라면, 2권은 여러 가지 토론의 종류를 소개하면서 실제적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토론 방법들을 제시한 실전서였다. 1권은 토론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고, 2권은 특히 현장에서 토론 수업을 이끌어야 할 교사들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 책이랄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은 1권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 2권의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교실에서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과 고민들을 원활하게 해결해 토론이 꽃필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응용 방법과 절차들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토론 수업에서 많이 도입하는 디베이트 즉 대립 토론은 토론 역량을 키워 주고 정당한 승패를 익히게 하지만 편 가르기와 공격하기 속성이 강하다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협력 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협력 토론인 원탁 토론은 경청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배우기에 좋다.

이 책은 토론 교육의 현장인 교실에서 들려오는 교사들의 어려움의 호소에 대한 응답이자, 근래 논술에서 토론으로 그 중심점이 옮겨가고 있는 학교 현장의 인문학 교육 추세에 하나의 지침서가 될 만하다.

책의 1부는 일종의 서문 같은 역할을 한다. 토론 수업에 임하는 교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 또는 자세와 관련하여 고민, 용기, 지혜, 사랑, 질문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2부에서는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토론 연수 자리에서 교사들이 제기한 실제 문제들을 소개하고 교실에서 벌어지는 토론 수업의 다양한 양상들과 거기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3부는 토론대회라는 행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제 찾기부터 심사와 판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해 꼼꼼하게 지침을 주고 있다.

국회의원은 거수기가 아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가 각별한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토론 교육과 관련 없는 문외한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토론 수업을 고민하고 토론 대회 같은 학교 행사를 조직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라면 책의 내용에 여러 번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궁금하고 가려운 데를 콕콕 짚어 주는 듯하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이것이 유동걸 교사가 생각하는 토론의 필요성이자 토론의 힘이다. 이것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추천사에서는 "계몽에서 소통으로 패러다임이 변해 가는 시대에 토론은 민주주의와 학교 자치를 위한 거대한 뿌리"라고 표현한다. 또 김슬옹 워싱턴글로벌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질문과 토론이 세종대왕이 이끈 조선의 르네상스기의 바탕이 됐다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동력을 토론에서 찾고 있다.

즉 토론의 목적은 진리를 찾는 것이고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한 결론을 얻는 것이다. 토론은 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이고 혁신을 위한 도구이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다. 대한민국의 교실에서 토론이 민주 시민 교육의 바탕을 마련하고자 할 때, 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필리버스터라는 무제한 토론이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민주주의의 훼손에 맞서고 있다.

무제한 토론의 자리에서는 가장 평화롭고 정당한 방법으로 잘못된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논파하고, SNS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민들의 의견을 생중계함으로써 소통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수당의 무한 독주를 막기 위한 장치 필리버스터는 단순히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토론을 통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국회는 거수기가 아니다. 무제한 토론은 주장과 표결만 난무하는 대한민국 국회에 근거 제시, 설득과 경청, 입장을 바꾸는 용기를 가르치는 중이다.

토론은 단순한 입의 싸움이 아니라 눈과 귀의 싸움이라고 유동걸 교사는 지적한다. 상대에 주목하고 경청하라는 것이다. 또한 "당신의 생각은 언제나 완벽하고 옳은가?"라고 묻는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사례로 들며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에 충분히 설득당할 마음 자세를 갖는 것도 토론에 임하는 자세라고 말한다.

그리고 혼돈의 시대에 교실만은 토론을 통해서 차분히 사랑의 논리와 용기의 감수성을 배워 가기를 기원한다. 국회에서 무제한 토론에 응하는 대신 국회 밖에서 '국회 마비 OOO시간째'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여당의 모습은 왜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이 필요한지 설명이 필요 없게 한다.

지난 2월 25일 새누리당 박윤옥(왼쪽부터), 김정훈, 강기윤, 이현재 의원이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하는 동안 본회의장 입구에서 '국회 마비' 피켓팅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2월 25일 새누리당 박윤옥(왼쪽부터), 김정훈, 강기윤, 이현재 의원이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하는 동안 본회의장 입구에서 '국회 마비' 피켓팅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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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전사 3 - 토론, 교실에서 꽃피우다, 토론 교육 전문가 유동걸 선생님이 쉽게 풀어 쓴 토론의 모든 것

유동걸 지음, 한결하늘(2016)


태그:#토론, #필리버스터, #유동걸, #토론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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