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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마라도를 나오면서 '탈출했다'고 표현할 만큼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막상 세상을 향해 싸움판을 펼치려니 마라도를 이용해 먹어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마라도' 하면 '대한민국 최남단'과 '짜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줄 알았던 게다. '그 멀고 먼 섬에서, 그토록 유명한 짜장면집이 이곳 평택까지 오다니!' 하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계산은 신통치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도가 어디 있는 섬인지도 몰랐고(영화 <마파도>의 그 마파도냐고 묻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심지어는 마라도가 뭐냐고 묻는 사람조차 있었다. 이어도와 헷갈리는 사람 또한 더러 있었고, 그러니 그 정체 모를 섬이 짜장면으로 유명한지 어쩐지 알 턱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몇 해 전부터 마라도가 제주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에 포함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마라도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반반이었고, 아는 사람 중에 마라도 짜장면을 아는 사람이 또 반반이었다.

그래도 이름 덕을 보긴 봤다. 무슨 '반점'도 아니고, 무슨 '성'도 아니고, '짜장면'이라는 한 가지 메뉴를 타이틀로 뽑은 것도 모자라 저렇게 긴 서술형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내걸었으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았다. 초반 끗발의 이유가 가게 이름 때문이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가게 이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나름 육지에서는 '먹어주던' 이름이 제주로 다시 내려오면서 좀 민망해졌다. 거기다 제주에서도 한 번 더 망하고 결국 마라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돼 더 민망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짜장면 장사의 시작이 그곳이었으니, 숨길 수도, 덮을 수도 없는 역사 아니겠는가!

춘장에 캐러멜색소를 섞으면...

'마라도'나 '마라도 짜장면'에 대한 인지도가 반반이었던 것처럼 맛에 대한 반응도 반반이었다. 호불호가 분명했다. 짜장도 짬뽕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글에선 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는 평택에서 개업을 하면서부터 '까맣지 않은' 짜장을 팔았다. 어떤 손님은 짜장면이 '까맣지 않다'고 설명하니, '그럼 하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참 황당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런 '흑백논리'에 물든 손님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짜장면의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짜장면이 까맣지 않다고 하니, 그 반대되는 색인 하얀색밖에 떠올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짜장에 쓰이는 춘장은 중국식 된장이다. 한국식 된장은 콩으로만 만들고, 중국식 된장은 콩과 밀을 반반 섞는다. 그래서 원래 춘장은 된장색이다. 중국에 가 보라. 까만 춘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짜장면을 처음 본 사람은 "어? 된장인가?"라고 하고, 다 먹은 뒤 "된장으로 만드세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일명 '된장 짜장' '카레 짜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하기도 한다. 물론 춘장이 까매질 때도 있다. 된장을 몇 년 묵히면 거무튀튀해지듯이 춘장도 오래 숙성되면 그렇게 된다.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캐러멜색소 없는 우리 가게 춘장과 캐러멜색소가 들어간 춘장 비교 사진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캐러멜색소 없는 우리 가게 춘장과 캐러멜색소가 들어간 춘장 비교 사진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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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첨면장'이라고 부르는데, 검을수록 잘 숙성된 춘장이라는 인식이 퍼지자 이것을 돈벌이로 삼은 사람이 있다. 화교 왕송산이라는 사람이 그 장본인인데, 1948년에 춘장에 캐러멜과 MSG를 섞어서 '사자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대량 생산해 팔기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다가 2008년부터 대량 수입되기 시작한 유전자조작 콩이 춘장에도 들어갔을 것으로 보여진다. 국내산이라고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이 아닌 식자재는 무서워서 쓸 수가 없을 지경이다. 

위키백과에서 춘장을 찾아보면 초기에는 캐러멜을 넣어서 까맣게 만들었다고 나온다.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캐러멜이 아니라 캐러멜색소를 넣는다. '캐러멜'이나 '캐러멜색소'나 뭐가 다른가 싶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캐러멜은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당밀을 끓여서 만든 끈적한 시럽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산이다.

캐러멜색소는 당밀을 끓이는 과정에서 암모니아를 넣어서 만든다. 당밀 자체만으로는 색이 쉽게 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암모니아를 넣으면 당밀이 순식간에 까매진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화학물질이다. 그런데도 캐러멜색소는 천연첨가물로 분류돼 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다.

캐러멜색소는 광범위하게 쓰인다. 짜장, 흑설탕, 콜라, 산분해간장, 약밥, 족발, 찜 등 연황색에서부터 진한 까만색까지 먹음직스러운 색을 내는 데는 빠지지 않는다. 식용색소 중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안전성은? 화학첨가물이 안전할 리가 있겠는가. 경련을 유발하고, 백혈구를 파괴하고, 비타민 대사를 저해하고, 유전자에 손상을 가한다고 외국의 여러 학자들이 경고를 한다.

우리 부부는 안병수 선생의 책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에서 이러한 사실을 접하고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중에서도 춘장에 들어가는 캐러멜색소의 농도가 당연 최상위에 속한다.

60년 역사의 '까만 춘장 전성시대'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당밀만 끓여 만드는 캐러멜(왼쪽)과 암모니아 처리를 한 캐러멜색소 비교.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당밀만 끓여 만드는 캐러멜(왼쪽)과 암모니아 처리를 한 캐러멜색소 비교.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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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색소를 넣지 않은 춘장이 어디 있기라도 한 걸까. 우리는 놀랍게도 아주 쉽게 제대로 된 진짜 춘장을 찾아냈다. 평택에 오면서 마스코바도 설탕을 마라도까지 택배로 보내주던 두레생협을 애용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무(無) 캐러멜색소 춘장을 발견했다. 원재료는 모두 우리 콩과 우리 밀이었고, MSG 같은 첨가물도 전혀 넣지 않는 진짜배기 춘장이었다.

우리는 생산업체인 (주)한주에 전화를 걸어 대용량으로 만들어 보내줄 수 있으냐고 문의를 했고, 학교 납품용으로 만들다가 학생들이 까맣지 않아서 안 먹는다고 하는 바람에 생산을 중단했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해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고맙게도 (주)한주는 우리 가게를 위해 별도의 대용량 포장을 해서 준비해놨다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는 그것을 까만 춘장과 구별하기 위해 '황장'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해서 계획대로 황장 짜장이 평택에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보는 짜장 색깔에 놀랐으며, 춘장에도 MSG가 들어가지 않으며, 조리 과정에도 MSG가 들어가지 않으니, MSG 보충을 갈망하던 혀와 뇌가 겪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60년이 넘도록 단 한 번의 저항도, 걸림돌도 없이 까만 춘장의 시대가 대박 행진을 해왔으니,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뇌는 우리의 짜장을 짜장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색다른 색깔과 색다른 맛에 눈을 뜨고 감동해주고 맛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반이나 되었다는 게 오히려 더 놀라운 사실이라 할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황장을 써 오던 중 KBS 1TV의 <소비자고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왔다. 캐러멜색소를 고발하기 위해 캐러멜색소를 쓰지 않는 중식당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해 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캐러멜색소를 발암물질로 규정을 함으로써 이슈가 됐던 것인데, <소비자고발> 팀은 외신 보도 5개월 뒤에 찾아왔다.

가게 문을 닫기 한 달 전쯤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캐러멜색소가 '4-메틸이미다졸'이라는 발암물질이라며 사용을 엄격히 규제했다. 특히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중독시키는 코카콜라의 경우, 그 허용치를 대폭 낮춰버린 탓에 캘리포니아주의 코카콜라는 색이 그렇게 검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알아봐준 황장은 시중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까만 춘장이 발암물질이든 뭐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금지를 시키지 않는 이상 외식시장은 아무 일 없이 건재했다. 식약처는 캘리포니아 주의 발암물질 규정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동네 주지사만 별난 놈이 됐고, 그보다 더 이전부터 캐러멜색소의 유해성에 눈을 뜨고 세상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맞서 고투를 벌여온 우리 부부만 이상한 놈이 됐을 뿐이었다.

캐러멜색소에 익숙한 눈은 MSG에 길들여진 혀와 같다. 까맣지 않으면 아예 짜장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 어른들은 설명을 듣고 이해라도 하지만(물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어른들도 많다), 아이들은 그게 안 된다. 이해를 거부하는 어른이라도 일단 먹어는 보는데, 아이들은 도리질만 열심히 한다. 아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뚱하게 있으니, 의외의 맛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던 어른들마저 불편한 식사를 얼른 대충 끝내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아이가 먹지 않으니, 이런 집은 우리 가게와는 영원히 안녕이다.

철옹성 같은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다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캐러멜색소 없이 만든 우리 가게 짜장면
 2012년 8월에 방영된 KBS1의 <소비자고발> 화면 캡처. 캐러멜색소 없이 만든 우리 가게 짜장면
ⓒ 류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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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가족 외식을 오는 손님들을 보면 반가움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반갑다. 까만 춘장을 접하지 않을수록 우리 황장에 거부감이 없고, 당연히 맛있어 한다. 입이 짧아 뭐든지 잘 안 먹는 아이가 우리 짜장을 너무나 맛있게 받아먹는 광경 또한 종종 목격하는데, 그 엄마들의 놀라움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 게 보람이다. 자연의 맛은 자연이 알아본다. 화학의 때를 묻히지 않은 아이들이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줄 때의 그 감동 때문에 우리 부부가 이 힘든 장사를 접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 보호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을 보호하는 일에는 무심하다. 방치를 넘어 학대 수준이다. 스스로가 자연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스스로의 자연을 돌보지 못하면 오염된 환경도 사회도 구할 수가 없다.

비약인가?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그러나 너무나 생활과 밀착된 시스템의 문제이고, 그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식생활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독재적이고 폭력적이고 악의에 가득 찬 권력이 횡행할 수 있는 기반은 바로 이 먹거리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노예화의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의 민주시민이 어떻게 노예가 되어 가는지에 대해선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자.

몇 년의 세월이 흐르니, 우리 가게 말고도 황장을 쓰는 식당이 두어 곳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맙고 고무적인 일이다. 철옹성 같은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황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MSG에 대해서도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자연주의 식생활을 찾는 이들이라면 이런 식당에선 믿고 먹으면 된다. 여전히 캐러멜색소의 위세는 꺾일 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분들은 우리보다 덜 힘들게 장사를 이어갔으면 하고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짬뽕의 빨간색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제매거진 <이코노믹리뷰>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이야기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은 평택이 아니라 제주도 화순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연주의짜장면 , #착한식당, #NOMSG, #NONGMO,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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