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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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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정부가 부동산을 시장에 맡깁니까. 부동산은 다른 물건과 달라요. 정부가 집 가진 사람, 집 없는 사람 둘다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개입해서 가치 중립적인 정책을 펴야해요."

'부동산은 시장에 맡겨두면 안 된다'는 도발적인 지적에 잠시 대화가 멎었다. 정부의 개입? 그럼 각종 부동산 규제를 질타하는, 신문지상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뭐란 말인가.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 미소를 띠며 "제가 지금 얘기하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세계 표준)'적인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정대영 송헌경제연구소장이다.

정 소장은 한국은행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한 '금융통'이다. 한은 금융안정분석국장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인재개발원 주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를 펴냈다. 최근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와 문제, 해결을 다룬 <한국경제 대안 찾기>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높은 부동산 가격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한다. 양극화, 일자리 부족, 자영업자 폐업 등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높은데도 정부는 계속 부동산 부양 정책을 쓰고 있다"면서 "시민들이 크게 경제 전체를 보고서 이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높은 부동산 가격, 사회 경쟁력 떨어뜨리고 있어"

- 책에서 '높은 부동산 가격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한 게 화제가 됐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거라고 본다. 집이 없으면 생존이 힘든데,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더라도 1년에 5000만원씩 오르는 서울 아파트 전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부부가 합쳐서 1억 연봉이어도 전세 오름폭을 못 맞춘다. 주거에 돈이 묶이니 가장 왕성한 소비를 해야 할 30대들이 소비도 안 한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 높은 임대료 때문에 폐업하는 자영업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장사하려면 임대료, 인건비, 원자재 비용 등이 들어간다. 여기서 원자재 비용은 뻔한 거고 임대료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인건비 깎고 사람 안 쓰고 하다가 떨어져 나가는 구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이유가 싼 인건비, 노사관계 등도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높아서 공장 짓기가 어려운 이유도 크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도 많다.
"결혼에도 당연히 집이 필요하니까. 집을 사려면 결혼을 미루게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집값과 집세를 확실히 안정시키지 않으면 무슨 출산장려 지원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이 취업, 그 다음이 집이다."

- 사람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도 문제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5년만에 최대폭 증가를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이미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급격한 충격으로 올지, 아니면 일본처럼 서서히 경제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올지 둘중에 하나다. 이미 일본처럼은 진행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최근 몇 년째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상태가 진행되고 있다. "

-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도 상당한 부담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를 많이 내야하니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소비 위축이 되면 내수가 줄고, 장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경제라는 게 사람이 예측을 못하는 충격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지금 1.5% 수준인 미국 금리가 2%를 넘기 시작하면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 가계부채 총액은 늘었지만 연체율은 낮고 큰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이 연체율이 낮은 이유는 제도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이자를 갚지를 못하면 다른 소득이나 재산으로 변제를 해야한다. 가령 시가 5억 원짜리 아파트로 3억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나 원리금을 못 갚으면 차압이 들어온다. 이걸 소구권이라고 한다.

미국같은 나라는 'non recourse'라고 해서 대출 대부분에 소구권이 없다. 내가 돈을 빌렸는데 갚기가 어렵다고 가정하자. 은행에 그렇다고 얘기하고 집키를 주면 은행이 그 집을 처분해서 돈을 알아서 가져간다."

- 한국은 더 악착같이 빚을 갚게되는 구조라는 얘긴가.
"그렇다. 미국은 경기가 나빠지면 연체율이 서서히 오른다. 반면 우리는 경기가 나빠져도 웬만해서는 연체율이 오르지 않는다. 갚다가 갚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채무자가 나자빠지는 구조기 때문이다. 그래나 한번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면 그때는 대응이 불가능할것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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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야당 국회의원들도 부동산 정책은 집가진 사람 위주"

- 지난 2008년 들어섰던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꾸준히 부동산 부양책을 쓰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로 반전되기도 했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만악의 근원인데 왜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인가.
"부동산 부양책을 쓰면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 소득도 소폭 늘고, 주택 가격이 오르거나 주택 거래가 늘어나면 부동산 중개업소, 이사, 내부 수리업 등이 활성화된다. 주택 건설도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이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부양책을 썼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 정치적인 이유란 어떤 것을 의미하나.
"정권이 부동산 부자, 하우스 푸어 등 자기 지지세력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정책을 짜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세입자 권리 운동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야당 정치인이나 그중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국회의원들조차도 지역구 세입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왜냐면 세입자들은 다음 선거때 나한테 투표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이건, 야당이건 기본적으로 부동산 정책은 집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경향이 강하다."

- 다른 나라도 한국과 비슷한가?
"경제 기초가 튼튼한 나라. 이를테면 독일 같은 곳은 인위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거의 하지 않는다."

-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좋아지겠지만 장기적인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면 집세도 오르고 세입자들은 더 많은 월세나 전세를 부담해야 하니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경제에서는 '공짜 점심'이 없다. 집값이 올라서 경기가 좋아진다면 그건 그만큼  세입자들의 소득이나 재산이 안보이게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 대신에 집 가진 사람들의 소득과 재산이 늘어난 것이다."

- 한국은 부동산 경기가 오르면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올라가나.
"집값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1%p 더 오르면 소비가 0.06% 늘어난다. 이만큼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집값이 오르면 집세도 오르지 않나. 전세가 1%p 오르면 소비는 0.15% 줄어든다. 월세는 1%p 오르면 소비가 0.15% 준다."

- 집값 오르는만큼 집세가 오르면 오히려 경제 성장에는 손해인건가.
"맞다. 집세가 안 올라야 효과가 있는건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최근 정부 부동산 부양책 쓰면서 전세가격이 폭등하지 않았나. 전체적으로는 경기가 더 나빠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그렇다면 정부는 부동산 부양책을 왜 쓰는건가.
"당장 눈앞에서는 건설투자도 생기고 하니까 나중에 나쁜 효과가 나타나는 것까지는 덜 고려하는 것 같다.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힘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이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장관으로 지명된 이준식 후보자가 아파트만 4채 보유하고 있고 40억 원대에 이르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화제가 되지 않았나."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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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진이, 집 없는이 모두 손해 안 보게 부동산 정책 짜야"

- 일각에서는 한국은 세계 주요도시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2013년 9월에 나온 KB 금융지주경영연구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집값 평균은 42만 4000달러다. 미국 뉴욕은 39만 4700달러, LA는 35만 5700달러다. 일본 동경은 35만 5000달러다. 일단 절대 수준으로도 서울은 집값이 높다. 또 미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소득이 두 배 이상 높은 나라다. 상대적인 수준으로도 높은 것이다. 집값 뿐만이 아니다. 한국 부동산 시가 총액이 8000조 이상인데 국민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보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시장 경제의 결과이니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시장이라면 수요-공급 법칙이 잘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택 등 부동산은 수요-공급 법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을 나눠서 생각해보자. 통상 일반적인 물건은 가격이 오르면 시장에 공급이 늘어나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줄어든다. 주택도 그럴 것 같나?"

- 가격이 오르는데 왜 벌써 집을 파나.
"맞다. 주택시장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집을 안 판다. 신규 주택 공급이 시장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3년이 걸린다. 수요 쪽에서는 더 극명하게 수요법칙이 적용이 안 된다. 보통 물건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어야 한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아파트를 안 사나?"

- 보통은 서로 사면서 추가 가격상승이 일어나지 않나.
"그렇다. 부동산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오히려 더 늘어난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줄어든다. 일반 물건은 재고가 적고 신규 물량이 많아서 대부분 신규 물량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부동산 시장은 재고(기존 주택)가 많은 시장이라 이렇다. 그래서 시장에만 맡기는 것은 별로 현명한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

- 그렇다면 어떤 부동산 정책이 바람직한 것인가.
"집 가진 사람과 집 없는 사람 모두 손해보지 않도록 가치 중립적인 정책을 펴야한다. 집값 상승률을 소비자 물가 상승률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 독일 같은 경우는 평균적으로 20~30년째 물가상승률보다 집값 상승률이 낮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안 한다. 사람들이 부동산 말고 다른 걸로 돈 벌 궁리를 해야 종국적으로는 나라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 배고프다고 아파트 벽 파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 좀 더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제안한다면.
"돈의 흐름은 냉정하다. 한국의 부자들이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그게 돈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단 정상적으로 과세를 해야한다. 부동산 시세 차익은 불로소득이니까 더 많이 과세를 해야한다. 더불어 집 가진 사람보다는 세입자에게 세금 지원을 해야 한다."


태그:#헬조선, #정대영, #아파트, #부동산, #송현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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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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