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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명동의 한 골목.
 서울시 중구 명동의 한 골목.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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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없어도 무조건 전세 찾아봐. 월세는 돈을 못 모아. 한달에 50만 원씩 내면 니 월급에서 뭐가 남냐."

올해 초 직장인이 된 홍성은(27, 가명)씨는 요즘 모임 때마다 친구와 선배들에게 핀잔섞인 충고를 듣습니다. 힘들게 취업 문을 뚫고 서울에 있는 기업에 입사해 10개월가량을 열심히 일했지만 실제로 그간 쓴 생활비를 빼니 통장에는 별로 남은 돈이 없습니다.

원인은 주거비용입니다. 매달 세금을 떼고 홍씨의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약 180만 원. 이중 원룸 월세와 관리비, 공과금 등으로만 60여 만 원이 나갑니다. 대신 식비와 통신비, 교통비 등을 알뜰하게 아껴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50만 원 남기면 '대성공'입니다. 그렇게 올해에는 400만 원 정도를 모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일까 겁이 납니다.

홍씨는 "집 사는 건 상상도 못하겠고 대출 받아서 전세를 구하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데 부동산 두 달 뒤져도 매물이 없었다"면서 "요즘 서울에 집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말합니다. 그는 "내가 무슨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라며 말을 흐렸습니다. 

홍씨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풍경입니다. 올해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전·월세 가구의 슈바베 계수가 2010년 30.4%에서 2014년 34.5%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슈바베 계수란 가계의 총 소비지출에서 월세, 전세대출 이자, 주택 관련 대출 상환금 등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한 것입니다. 조사된 결과는 한국의 전·월세 가구들이 주거에만 수입의 1/3이상을 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통상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계수가 25%를 넘으면 빈곤층으로 분류됩니다. 

서초구 반포동 미도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미도아파트.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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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집 마련'의 벽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닿기 힘든 곳에 있습니다. 2015년 1분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1인 가구가 한달에 버는 돈은 246만 원, 평균 가계 지출은 180만 원입니다. 이들이 서울의 평균가격 아파트(4억9999만 원, 국민은행 '2015 주택가격 동향')를 사려면 평균 64년 11개월이 걸립니다.

같은 요령으로 계산했을 때 2인 가구는 39년 6개월, 4인 가구는 37년이 걸립니다. 왜 꼭 서울이어야 하느냐구요? 반값 정도인 경기도 지역 아파트(2억6051만 원)를 사도 4인가구 기준 20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심지어는 한 푼도 안 쓰고 수입을 모두 모아도 1인 가구가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면 17년 가까이 걸립니다.

더 오래 걸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를 보면 전체 취업자 2590만 명 중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전체의 36.4%입니다. 월급이 100만 원 미만인 사람도 11.9%나 됩니다.

앞으로는 더 오래 걸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가상승률 대비 실질임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지난해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나온 '임금없는 성장의 국제 비교' 보고서에는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조정한 실질임금 조사 결과가 담겨 있습니다.

1997~2002년에 19.4%, 2002~2007년에 17.6% 증가했던 실질임금이 2007~2012년에는 2.3% 하락했습니다. 생산성이 떨어져서 월급이 깎인 게 아닙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실질 노동생산성(실질 국내총생산(GDP)를 근로자 수로 나눈 값)은 9.8% 늘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들은 최근 유행처럼 거론되고 있는 '헬조선' 현상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헬조선'이란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갈수록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처지가 된다면 누구나 '사는 게 지옥같다'고 느낄만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착안해서 기획 기사들을 준비해봤습니다. 한국의 주거 비용, 주택 가격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요. 우선 지난 30년간 서울의 유명 아파트 시세 추이와 정부의 주택 정책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따져볼 예정입니다.

최근 평당 수천만 원에 분양되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적당한지에 대해서도 탐구합니다. 소비자들을 등치는 일부 건설사들의 '꼼수'도 소개합니다. 아울러 지금과 같은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처방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습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헬조선, #헬조선의 아파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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