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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6화 : '26세 여성의 남루한 팬티'가 알리바이 조작 증거? 편에서 이어집니다)



날이 밝았다. 아침 고향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손자만 있었다.



오전 7시경 이들 부부는 기상했다. 당시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는 부엌 냉장고 채소 칸에 있었다. 백희정은 전날(7월 4일)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안방에 들어갔다. 당시 아버지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했다. 백희정은 잠을 자던 아버지에게 "막걸리를 넣어놨다"고 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잠결에 얼핏이라도 들었다면, 아버지는 냉장고 야채칸 박스에 막걸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 열었던 피해자, 당시엔 막걸리 못 봤을까




 
검찰이 밝힌 7월 4일 상황
 검찰이 밝힌 7월 4일 상황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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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반경, 아침을 먹기 위해서 어머니는 부엌 냉장고 문을 열었을 것이다. 반찬을 먹고 나서 다시 냉장고를 열어 집어놨을 것이다. 손자가 우유를 찾자 어머니 최명자씨는 냉장고를 또 열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들 부부는 논으로 나가서 약 2시간 동안 농약을 쳤다. 그리고 오전 11시경 돌아와 샤워한 후, 점심을 먹었다. 이때도 최명자씨는 부엌냉장고를 열어봤을 것이다.



만약 야채칸을 봤다면 최명자씨가 제일 좋아하는 막걸리를 놓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명자씨 시선은 야채칸을 한 번도 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명자씨는 점심을 먹고 반찬을 다시 냉장고에 집어놨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 모두 낮잠을 잤다. 오후 3시쯤, 이들 부부와 손자는 봉고 트럭을 타고 땔감 나무를 줍고자 곡성으로 떠났다.




 
7월 5일 백경환, 최명자 부부의 일과
 7월 5일 백경환, 최명자 부부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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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경, 둘째 딸 부부가 막내아들을 데리러 순천에서 집으로 왔다. 저녁은 가족들이 모두 근처 식당에서 외식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명자씨만 둘째 딸 식구들과 함께 자가용으로 먼저 출발했다. 아버지는 씻고 나중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백희정씨 행적을 살펴보자. 당일 백희정은 오전 9시경 부산에서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백희정은 순천으로 가지 않고 경남 창원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6시 11분경, 경남 창원시 동읍 근방에서 백희정이 전화한 기록이 나왔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부산에서 순천행 버스에 승차하였음에도 순천으로 오지 아니하고 도중에 내려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산-창원 일대에서 배회하였다는 것"은 백희정씨가 집에 오기 싫은 사정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희정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창원으로 갔던 것이 아니다. 그냥 부산에서 만난 남자가 부산 사상터미널에 내려주자, 거기서 창원 버스를 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저녁에는 순천으로 돌아왔다. 순천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다시 고향 집으로 향했다.



경찰 진술로 추정한 부녀의 범행




 
귀가하는 백희정
 귀가하는 백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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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백희정씨는 형부 차와 마주쳤다. 당시 차 안에는 엄마, 둘째 언니 부부, 조카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백희정씨에게 '식당으로 오라'고 하고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그날 온 가족이 식당에 모여서 'KBS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식사했다. 순천 둘째 딸은 친정에 맡겼던 3살짜리 막내아들을 데리고 순천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막내아들은 싫다고 칭얼거렸고, 결국 다시 고향집에 맡기고 둘째 딸 부부는 순천으로 떠났다. 



사건 기록을 살펴본 전직 형사과장은 둘째 딸과 아버지의 경찰 진술만 놓고 보면 이들 부녀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어떤 진술일까?



아버지의 경찰 초기 진술을 들어보자.

20:00경, 사위, 작은 딸, 손주, 안식구와 함께 산골마을(가명)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에 있으니 막내딸이 순천에서 버스를 타고 식당 앞에 내려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고... - 백경환 경찰진술조서 2회. 2009.7.7.



그런데 둘째 딸은 경찰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씻고 식당으로 오겠다고 뒤에 출발하셨는데 저희들이 식당에 도착한 후 약 20~30분 정도 지나서 식당으로 혼자 오셨습니다. (중략) 백희정은 아버지가 식당에 오고 10분 정도 지나자 들어왔습니다. - 둘째 딸 경찰진술조서 2회. 2009.7.12 




 
한 전직 형사과장 의견
 한 전직 형사과장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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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진술을 보면, 가족들이 먼저 식당에 도착하고 나서 아버지가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백희정씨가 왔다. 전직 형사과장은 이때 부녀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그날 저녁 가족들 외식 분위기에서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오후 10시경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백희정은 조카와 함께 잤다. 백희정씨 자백에 따르면 당시 어머니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백희정은 잠을 자다가 이날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가 자는 거실을 지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백희정씨는 잠을 자는 아빠를 조용히 깨워 "새벽에 막걸리를 화단 앞에 가져다 놓을 테니 아빠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을 건넸다. 9월 2일 검찰 현장검증에서 수사관이 "아빠가 들은 것 같으냐"고 묻자 백희정은 "잠결에 들은 것 같다"고 했다.


백희정씨는 안방을 나와 거실을 지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가족들은 이 점을 납득하지 못했다. '1박 2일간 놀다가 왔으면 지쳤을 터인데 어떻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계에 알람을 맞춰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백희정씨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잠결에서 깨어난 백희정
 잠결에서 깨어난 백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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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 '사건 당일 재구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나흘간의 기억, #순천청산가리막걸리사건, #서형 ,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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